안도현 산문집
<사람 사람> 안도현 산문집
--“시인의 옛 추억이 바스락거리는 글들”
강 일 송
오늘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나”
라는 유명한 시의 시인 안도현작가의 산문집을 보려고 합니다.
안도현(1961~)시인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후 “외롭고 높고
쓸쓸한” , “간절하게 참 철없이”, “북항” 등 10권의 시집이 있고,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연어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은 전주에 살고 있으며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시 창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의 산문 중 두 편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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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 예찬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게 라면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요즘처럼 라면이 흔하지도 않았기에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 라면은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아주 특별한 음식 중 하나였다. 그 무렵 라면 한 개 값은
20원이었다.
채소 위주의 생활을 영위해 오던 가난한 이 민족에게 6,70년대의 “육류 스프”라는 말은
뜨끈한 희망의 전언처럼 들리기도 했다. 평소에 자주 먹을 수 없는 소고깃국을 라면
국물을 통해 섭취할 수 있다는, 슬프지만 꽤 그럴 듯한 희망 말이다. 그래서 라면 국물을
떠먹으며 대리 만족에 이르고자 한 사람들 앞에 나중에 ‘쇠고기면’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도 나는 라면하고 같이 살았다. 밥을 해 먹기 싫은
게으른 자취생에게 라면은 부식이 아니라 훌륭한 주식이었다. 쌀은 떨어져도 라면 박스
만 비어 있지 않으면 걱정이 없었다. 연탄불이나 석유곤로에다 라면을 끓여본 사람은
안다. 양은 냄비의 손잡이에 숟가락을 끼우고 냄비를 나르다가 그만 부엌 바닥에 폭삭
냄비를 엎어 버렸을 때의 심정 말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인가. 나는 그것을 이렇게 패러디하고 싶었다.
퉁퉁 불은 라면을 먹어 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무릇 모든 음식이 그렇겠지만, 라면도 혼자서 먹는 것보다는 여럿이 둘러앉아 먹어야
제맛이 난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신 김치가 따라야 하고, 국물에는 식은 밥이
제격이다. 라면 국물 앞에서 뜨신 밥은 오히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어느 덧 세상이 변해서 라면의 품종은 무척 다양해졌다. 라면은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동경의 대상도 궁핍한 자취생의 허기를 채워 주는 고맙고 눈물겨운 음식도 아니다.
그렇기는 해도 라면의 시대가 간 것은 아니다. 라면은 여전히 씩씩하다.
홍수와 같은 재해를 입으면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게 라면이다. 실업과 노숙의 거리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도 라면이다. 겨울밤이 깊어 갈 때, 라면 한 그릇으로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아직 우리나라에는 많다.
★ 아들과 나
지금부터 삼십 년 전에, 어른들은 희망에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언젠가는 한 집에 한 대씩 사진기를 갖게 되는 날이 온단다. 언젠가는 집집마다 자가용을
타는 꿈의 마이카 시대가 온단다. 언젠가는 컴퓨터가 사람이 할 일을 대신하는 날이 온단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면서 전화를 거는 때가 온단다. 하고 말이지요.
한 백 년 후에나 올 것 같았던 그런 날이, 정말 그런 날이 소리도 없이 와 버렸습니다.
제 어릴 적의 미래가 제 아들에게는 현재가 되었습니다.
신작로를 달리던 저의 도락꾸는 아들에게 와서 트럭이 되었고 저의 버스는 아들에게로 와서
버스가 되었고, 저의 오라이는 아들에게 와서 출발이 되었고, 저의 뒤빠꾸는 아들에게 와서
후진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저는 고무신을 신고 다녔지만 아들은 축구화
를 신고 다닙니다. 저는 발가벗고 냇가에서 놀았습니다만, 아들은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서
놉니다. 저는 술래잡기로 시간을 보냈습니다만 아들은 스타크래프트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다면 저의 과거는 불행했고, 아들의 현재는 행복한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저의 대답은 ‘아니올시다.’입니다. 어른으로서 저는 어린 아들에게 들려줄
희망의 메시지를 아직 단 한 줄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 궁핍한 말줄임표 속에 들어갈
희망 같은 것 좀 없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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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안도현 시인의 수필집에서 2편을 보았습니다. 안시인은 사람냄새 나는 글을 잘 쓰는
작가입니다. 하필 오늘 수필집의 제목도 “사람 사람”이네요.
첫 번째 글은 라면 예찬글입니다. 우리의 아릿한 과거를 추억할 때 제일 많이 등장하는
소재가 “연탄불” 과 “라면”이 아닐까 합니다. 흔히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었고, 배고픈 고학생에겐 라면이 큰 벗이 되어 주었습니다.
어떤 이는 젊은 시절 힘들게 먹고 살 때 하도 라면을 많이 먹어서 오히려 나이들어서는
라면을 절대 안 먹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서양에는 “눈물 젖은 빵”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퉁퉁 불은 라면”이 그 대척점에 있습니다.
과거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라면은 “씩씩하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모든 재해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것이 라면이기에 아직도 그 효용성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두 번째 글은 아버지와 아들의 세대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진 기기들로 인해
삶의 방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과연 과거는 불행했고 현재는 행복한가 라는 질문을
저자는 던지고 있습니다. 답은 “아니오”이지요.
이는 재물의 유무, 명예의 유무, 권력의 유무에 의해 행복이 좌우되지 않음과 같은 말이
되겠습니다. 집집마다 카메라가 생기고 한 가정에 차가 2-3세대가 있는 요즈음, 또한
언제 어디서나 “애니콜”을 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
지만 궁극적인 만족이나 행복감은 가져다주지 않았음을 작가는 직시합니다.
더도 덜도 말고 이만큼만 좋았으면 하는 “한가위”를 앞둔 지금, 우리의 삶도 더도 덜도
말고 이만큼의 만족을 가지고 살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하루입니다.
풍성하고 평안한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