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김용택의 산문집

by 해헌 서재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김용택의 산문집”


강 일 송


오늘은 섬진강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토속적인 시인, 김용택시인의 산문집을 한번 같이

보려고 합니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고향의 냄새가 나고 사람 냄새가 나는 걸 느낍니다.


김용택(1948~)시인은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물두 살에 모교인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됩니다. 교사가 되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생각이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그것이 시가 되었다고 합니다.2008년 퇴직한 후 강연을 하고 글을 쓰며 지내는 데, 오늘은 그의 산문집 중 하나인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중, 2편을 골라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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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과 어머니


며칠 전 저녁밥을 먹기 전에 아내가 밥 위에 얹어 찐 감자를 접시에 담아 내놓았다.

쌀밥티가 하얗게 묻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감자를 먹으며 나는 배고프던 지난 시절로

생각이 달려갔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밥을 먹기 전에, 그러니까 밥상을 다 봐놓고 밥을 밥그릇에 담기 전에

먹을 것을 가득 담아 방으로 가져오셨다. 겨울철엔 언제나 고구마였고, 여름에는 보리밥

위에 감자를 얹어 쪄서 양푼 가득 내오셨다. 배가 고플 대로 고픈 우리들은 허겁지겁 먹어

치우지만 양이 차지 않아 늘 불만이었다. 그러고 나서 밥상이 들어오는데 밥이 입에

많이 들어갈 리 없었다. 양식을 아끼는 방법 중의 하나였지만 그나마 감자나 고구마로 대충

채운 뱃속을 밥으로 채울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가 말이다.


감자나 고구마, 무를 넣어 밥 해먹는 일은 여름철이나 겨울철 내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고구마가 떨어지면 어머니는 ‘지죽’을 끓여왔다. ‘지’는 전라도 말로 김치를 말한다.

지죽은 대게 싱건지와 쌀을 넣어 끓인 것으로 서양음식으로 치면 수프나 다름없다.

싱건지 건더기에 새파란 무 잎사귀와 하얀 무를 잘게 썰어 끓인 뒤 쌀을 몇줌만 넣어도

대여섯 식구의 한 끼는 거뜬히 해결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죽은 맛이 있었다.


어머니는 밥을 잘 하시는 도사였다. 동네에 밥을 많이 해야 하는 큰일이 있을 때 밥 당번은

꼭 어머니 차지였다. 한여름 모내기철에 큰 솥에다가 밥을 한다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

었다. 게다가 밥이 많아 물의 양을 잘 조절해야 할뿐더러 불을 어떻게 때느냐에 따라

그날 밥이 잘되고 못 되고가 판가름난다. 그러니 불을 때는 데 혼신의 힘과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불을 잘못 조절하면 밥이 끓고 넘는다든가 금세 타버려 탄내가 났다.


어머니의 밥짓는 솜씨는 매우 훌륭했다. 아무리 큰 솥에 많은 양의 밥을 해도 늘 맛있었다.

하얗게 솟아오르는 김 속에서 밥풀을 입에 넣어보며 “되얏다” 하시던 그 상기된 얼굴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환한 그 어머니의 얼굴과 소복하게 구멍이 송송 뚫린 봉곳한 밥을,

그 아름답고 기쁨에 넘친 모습을.


★ 그 산이 늘 거기 있었다.


나는 평생 두 개의 산을 바라보며 살았다. 하나는 내가 근무하는 물우리 초등학교 앞산이고

또 하나는 우리 마을 앞산이다. 나는 이 두 개의 산과 헤어져 살아본 적이 별로 없다.

교실에서 바라보는 산, 아, 나는 이 교실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릴 수가

있는가, 이 교실을 이리저리 옮기며 내 젊음을 다 보냈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늘 물우리

마을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강물이 보이고, 늘 오가는 강길이 보이고 길 끝쯤 진메마을

앞산이 보이는 것이다.


아침 학교에 와서 마을을 바라보면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70여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모여 줄을 서오던 모습은 이제 간 곳이 없다. 마을은 텅텅 비어 우중충하고 아침 등굣길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 뒷산의 밭들도 묵어가고 논은 아예 산이 된 지

오래다. 운동장과 벚나무숲에선 아침부터 꾀꼬리가 날아다니며 운다. 그 울음소리는 옛날

같은데 강 건너 마을은 적막하고 운동장엔 심심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느릿느릿

아이 둘이 걸어가고 있다.


아, 앞산! 달이 불끈 솟으면 검은 산이 되고 달이 이만큼 다가오면 훤한 산이 되고 별이

무수히 떠 있는 캄캄한 밤이면 소쩍새가 징허게 우는 곳, 오월이면 노란 꾀꼬리가 울며

날아다니고 긴긴 겨울밤이면 부엉부엉 부엉새가 잠자리를 뒤척이게 하는 곳. 가을이면

개옻나무가 제일 먼저 뻘겋게 단풍이 들고, 눈 주면 어느 곳에 무슨 나무가 있는지

금방 아는 산.


나는 저 산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도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행복하게 사는 데

저 산 말로 무엇이 더 필요하며, 살아가는 데 저 산을 아는 것 말고 무슨 공부가 더

필요할까. 저 산 하나면 나는 족한 것이다. 나는 저 산의 세계를 내 가슴에 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저 산을 49년째 바라보며 산다. 그래도 지금 저 산만 바라보면, 저 산만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다가 마루에 나가 앞산을 보다 왔다. 곧 달이 뜨고 개구리가 우라

지게 울어 내 잠을 흔들 것이다. 소쩍새 울고 밤꽃 피면 나는 그 밤꽃에 코피가 터질

것같이 어지럼증을 타며 강변을 배회할 것이다. 지금은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저 앞산, 눈을 감으면 이렇게 저렇게 다 그려지고 나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산, 그 산이 그렇게 거기 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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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인 김용택의 산문을 같이 보았습니다.

그의 글은 구수한 된장냄새가 나는 너무나 토속적인 글이지요.


첫 번째 글은 어린 시절 먹고 사는 게 힘들었던 시기 이야기입니다. 쌀이 부족하니

밥을 먹기 전에 찐 고구마와 감자를 미리 아이들한테 먹이고 밥을 주었던 과거

이야기입니다. 감자는 구황작물로 독일, 영국 등 유럽에서도 최소한의 기근을

면하게 해 주었던 감사한 작물입니다. 자식들을 이렇게 먹인 어머니 본인은

그나마 이마저도 제대로 드시기 힘들었겠지요.


그런 어머니가 그리운 작가는 밥 짓는 데 달인이었던 어머니를 추억합니다.

지금이야 기능이 뛰어난 전기밥솥이 많지만, 예전에는 큰 무쇠솥에 나무를 때어서

불조절을 해야 했으니, 거기다가 대량으로 동네잔치에서 지을 밥은 달인이 아니고

는 맛있는 밥을 짓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어머니는 뛰어난 솜씨를 가진 분이었고, 수십 년이 흘렀어도

"되얏어." 하고 만족하며 얼굴의 땀을 훔치시던 어머니가 작가는 무척이나

보고싶고 그립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마을에 있는 자그마한 산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마을앞산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 교실에서 바라보는 앞산입니다. 그는 49년째 이 산들을 바라보

고 살아왔고 그러면서 청춘을 보냈습니다. 동네에 아이들이 많아서 줄을 이어서

등교하던 모습은 이제 사라지고 없지만, 학교 운동장과 꾀꼬리의 울음 소리는

여전합니다.


작가는 두 앞산의 구석구석을 꿰차고 있습니다. 어느 쯤에 어떤 나무가 나있고

밤에는 소쩍새가 징허게 울고, 부엉이가 부엉부엉거리며 오월에는 꾀꼬리가

울어대는 그곳. 그에게 앞산은 하나의 구원의 공간입니다. 더 무슨 행복이 있겠

느냐고까지 그는 말합니다.

그에게 그 산들은 고향 그 자체이고, 그가 살아온 삶 그 자체일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고향에서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은 아닌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소중한 것이 그곳에 아직 남아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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