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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Oct 18. 2017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

“육식이 인류문화에 미친 영향”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

--“육식이 인류문화에 미친 영향”(1)


                              강 일 송


오늘은 음식을 통한 인류역사의 변화와 음식이 문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전반적인 음식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서 보고, 그 첫 번째로 육식이 인류의 역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지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정기문교수는 서울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서양사학과에서 로마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현재 군산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많은 책들을 저술했습니다. “역사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다.”, “한국인을 위한 서양

사”, “역사를 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내 딸들을 위한 여성사”, “역사란 무엇인가” 등

여러 책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육식이 인류의 문명에 미친 영향을 먼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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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은 역사와 문화를 규정하는 제1요소다.


인간의 육체는 섭취한 영양을 통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재생산된다. 즉 우리가 날마다 먹는

음식이 몸속에서 소화 흡수되면서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음식은 역사 전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먹기 위한 삶을 저급하게 생각하는 풍조도 있지만 결코 그러한 삶을 저급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먹지만 그 맛을 즐기면서 먹기도 하고, 먹으면서 사랑, 우정과 같은

관계를 맺고, 거래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때로는 전쟁도 불사했으며

음식을 통해 계급과 성, 종족 등을 구별해왔다.


음식 가운데 단연 중요한 것은 물이다. 서양은 물 사정이 좋지 않았는데 이는 유럽의

중심부 연강수량이 500-750밀리미터로 많아야 우리나라의 2/3밖에 되지 않고, 석회질

지형이 많으며, 우물을 파기 어려워서 늘 식수가 부족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그 때문에 로마는 거대한 수도 시설을 만들었던 것이다.


또한 도시를 건설할 때도 동양에서는 우물을 쉽게 팔 수 있어서 대개 강의 북쪽에 사방

을 가로막는 성을 쌓고 그안에서 살 수 있었고, 유럽은 식수로 사용할 강물을 끼고 도시

를 건설해야 했다. 동양은 산성이 많은데, 유럽은 샘을 찾기 힘들어서 산성을 쌓을 수

없었다.


★ 인간, 육식을 통해 진화하다.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초식, 육식 모두 가능했지만 거의 초식으로 연명을 했다.

하지만 점차 육식의 비중을 높였는데, 호모 하빌리스가 도구를 만들어 사냥을 하면서

단백질 섭취가 늘어났고, 그 결과 뇌가 커졌다.


사냥을 위해 나무나 돌로 창과 도끼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변화시켰는데

털이 보온에는 유리하지만 땀의 배출을 방해하고, 오래 달리면 체온을 상승시킨다.

현존하는 모든 동물 가운데 인간이 가장 오래 달릴 수 있는데, 이는 털이 없어서 오래

달려도 체온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불의 사용이 약 80만 년 전부터 있었는데, 불은 동물과 맞설 때 유용한 무기가 되어

주었을 뿐 아니라 음식을 익혀먹게 해주었다. 밀, 쌀, 감자와 같은 음식은 자연 상태로는

거의 소화가 안 된다. 식물의 강한 세포벽을 깨지 않으면 그 속의 여러 영양소를 흡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식을 가열하면 나쁜 세균의 영향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씹기도 쉽고

소화도 훨씬 잘된다.


불에 익힌 음식을 먹으면서 인간은 치아가 작아지고 창자가 짧아졌으며 소화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 결과 창자를 유지하던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뇌에 투입할 수 있는

에너지가 늘어나 점차 뇌 용량이 커진 것이다. 따라서 육식, 그것도 고기를 불에 익혀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 다시 풀을 먹는 동물이 되다.


기원전 1만 년경 인간의 삶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른바 신석기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근동 지역과 아나톨리아에서 최초의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고, 동물들의 이동 경로에 야영지

를 설치하고 오랫동안 머물기 시작했다. 이 때 작물의 씨가 뿌려진 뒤 그 작물이 다시 자라

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농경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고기를 먹는 인간”에서 “풀을 먹는

인간”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농경 사회로 접어들면서 오히려 인류 사회는 궁핍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영양 부족에

시달렸으며 몸집이 작아졌고, 치아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농사를 짓느라 디스크탈출증,

관절염, 탈장 등 그 전까지 몰랐던 온갖 질병에 걸리게 되었다.

옥수수를 주식으로 먹는 사람들은 니코틴산이 부족해서 펠라그라병에 걸렸고, 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은 티아민이 부족해 각기병에 잘 걸렸다.

따라서 농경 사회로의 전환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 고기를 먹는 인간, 지배층


농경사회는 내부적으로 ‘고기를 먹는 인간’과 ‘풀을 먹는 인간’으로 나뉘었다.

18세기 이전 대다수의 농민은 풀이나 죽을 먹는 사람으로 비참하게 생활을 하였고, 소수의

지배층은 고기를 먹는 사람으로 배부름과 안락을 누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배층의 중요한 특징은 고기를 먹는 것 그것도 많이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14-15세 이후 서양의 고기 섭취량이 놀라울 정도로 증가했는데, 이는 첫째, 가축의

품종개량이 활발해졌고, 둘째 가축 사료의 재배가 크게 늘었으며, 세 번째는 유럽의 주변

지역에서 중심 지역으로 육류의 공급이 대폭 증가한 이유 때문이었다.


★ 육류 소비가 역사에 미친 영향


우선 평균수명이 늘어났다. 이는 인구의 증가를 가져왔고 또한 풍부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인력으로 유럽은 여러 전쟁을 치렀고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이루었다.

특히 여성의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났는데, 14세기 이전에는 남성의 평균 수명이 독일의

문헌을 보면 40세 전후, 여성은 30세 전후였다.


15세기가 넘어서자 여성이 더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단백질 섭취의 증가의

영향이 컸다. 여성은 생리, 출산, 육아를 통해 많은 철을 소비하고, 그 때문에 만성적으로

빈혈에 시달리기 쉽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철을 흡수해야 하는데, 식물성

음식에서 흡수하는 철은 너무 적기 때문에 육류 섭취를 통해 철을 보충해야 한다.

그런데 14세기 이전에는 여성들의 입에 들어갈 고기가 없었다.


★ 뒤처졌던 서양이 동양을 추월한 동력


왜 중국은 화약, 나침반, 제지술에서 나타나듯이 일찍부터 세계의 과학 기술 발전을 선도

했는데 왜 과학혁명을 이루지 못했을까. 어떤 학자는 이에 대한 여러 원인 중 근대초

서양인의 육식이 증가한 것도 있다고 한다.


먼저 육식의 증가는 칼로리 공급의 증가를 가져왔고, 그래 인해 건강이 개선되고 근력이

좋아졌다. 한마디로 힘이 세져서 사람들이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늘어난 가축 배설물로 비료생산량이 늘어 농업생산량이 늘어났다.


18-19세기 동양인이 서양을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서양인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꼽은

것은 고기를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다.

중국,한국,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예로부터 소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다.

약하기는 했지만 소고기에 대한 종교적 금기도 있었고, 소가 농사일에 사용되었기에 소를

잡아먹는 것은 생산량의 감소를 의미했다. 따라서 전근대 중국이나 일본에서 국가가

직접 소를 관리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소를 잡지 못하게 했다.


즉, 전근대 동아시아인들의 고기 단백질 섭취량은 형편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서양 따라잡기 운동을 메이지 유신이후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때 소고기 먹기

운동을 펼쳤다. 천황을 비롯한 지배층이 소고기를 먹는 시범을 거듭해서 보였고 이때

신문의 캐치프레이즈가 “소고기를 먹지 않는 자는 문명인이 아니다.”였다고 한다.

이후 일본의 고기 소비량이 크게 증가했고, 일본인의 평균키가 놀랄 만큼 커졌으며

체력 면에서도 서양인에 뒤지지 않는 일본인이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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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역사학자인 저자가 인류문화의 큰 흐름을 살펴보면서 음식이 미친 영향

을 이야기하였고, 특히 육식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명제는 "먹어야 사는 것" 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지요.  옷이나 집은 한번 구입하면 상당 기간 사용할 수가

있지만, 음식은 정기적으로 계속, 그리고 자주 공급을 해주어야 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그렇게나 많은 식당이 존재하는 이유가 되겠지요.


하지만 수십만 년전부터, 아니 그보다 더 전부터 모든 생명체는 이러한 음식물

을 차지하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하였습니다.  수렵 채취를 하던 시절, 도구가

발달하고 협력하여 사냥을 하면서 육류의 공급이 많아지자 단백질 섭취의 증가

로 뇌의 용량이 커지고 지능이 더욱 발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신석기 혁명 이후 농경문화가 되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농사지어 얻은 곡식만으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풍부한 칼로리와 영양 공급이

부족했고 이것은 서양은 14,15세기까지, 동양은 19세기까지도 이어집니다.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배층은 '고기를 풍부히 먹는 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만큼 육류의 공급을 받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쩌다 한번씩 고기를

먹을 수 있었고, 특히 여자들은 그마저도 먹기가 힘들었습니다.  사실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고 농사일까지 해야하는 여자들의 철분공급, 단백질 공급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지요.


서양이 먼저 육류의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일반 백성들도 고기를 풍족히 먹게

되었고, 이는 서양이 동양을 앞서게 되고 산업혁명을 이루는 그 원동력이 되었

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동양에 서양인들이 처음 등장하였던 시절에도 서양인은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

들이라고 묘사를 하였다 하지요.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고, 서양 따라잡기에 나선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육식의

중요성을 알고 육식을 하는 식문화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나라가 소고기 요리

의 가짓수가 탁월하게 많다고 하는데, 이는 농사일의 대부분을 해내는 소가

귀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역으로 얼마나 아쉬웠으면 버릴게 하나도 없이

그렇게 먹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서양의 발전, 산업혁명, 근대화 등을 이야기할 때 육식의 증가만이

이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저자의 생각처럼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다음에는 서양의 주식이었던 빵 이야기를 연이어 하려고 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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