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거리를 둔다>
--“거리라는 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훌륭한 해결책이다”
강 일 송
오늘은 일본의 유명한 노작가인 소노 아야쿄(1931~)의 에세이집을 하나 보려고 합니다.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이러한 불행을 딛고 소설가로서
훌륭하게 성장합니다. 50대에 이르러 중심성망막염으로 실명 직전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회복한 그는 우리에게 많은 지혜로운 말을 전해줍니다.
주요작품으로는 1972년에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사랑받는 초장기 베스트셀러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 을 비롯하여 “나이듦의 지혜”, “긍정적으로 사는 즐거움” 등등 수많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삶의 아픔을 딛고 선 자만이 할 수 있는 그의 말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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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좋았고, 때론 나빴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지내온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시간과 운이 없었던 날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음에 동감하게 되었다. 어차피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과 함께 한 세월들이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해서 부와 권력과 행복이 뒤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게으르고 머리가
나쁘다고 해서 밑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 소소한 발견의 재미를 알아나가는 것도
지혜라고 해야겠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인생은 좋았고, 때론 나빴다.
★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지혜
나이가 들고부터는 큰 방향을 정하고 나면 사소한 일들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고작 저녁 찬거리 정도다.
인간이 자신의 운명 중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가 20세기 종반에
지금의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 운명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미의식”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기
전까지 막연하게 흘러가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저항하기 보다는 당당하게,
그리고 묵묵히 주변 사람들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고 싶다.
★ 타인은 나를 모른다.
사람들은 남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소문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실상은 아무런 사정도 알지
못한다는 게 진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아주 가까운 주변 사람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부모님에 대해서도,
자녀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아내를 모르고 아내는 남편을
모른다. 하물며 한 지붕 아래 살지도 않는 타인의 실상을 무슨 수로 알아낸단 말인가.
그런데도 인간은 예사로 타인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댄다.
신문과 주간지를 채우는 대부분의 기사는 기자가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 관한 이야기다.
★ 매사 적절한 때가 있는 법
매사 때가 있다. 3년쯤 후에 만났더라면 인연이 닿아 결혼했을지도 모르는 상대를 조금
일찍 만나 이루어지지 못할 때가 있다. 같은 매화나무에서 자랐더라도 덜 익은 열매는
먹지 못한다.
또한 인간은 하루아침에 지혜로워질 수는 없다. 사람은 오랜 세월 헤매야 하며,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고 때로는 어리석음에 정열을 불태우다가 끝내는 자신에게 필요한 최선의
선택을 내리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눈이 내리고 새싹이 움트고 작렬하는 태양이 시들어 비로소 단풍이 빛나는 가을이 찾아
오는 것과 하나도 다름이 없는 이치다.
★ 떨어지길 잘했다고 말할 날이 온다.
이를테면, 입사 시험 결과 낙방했다면, 합격한 친구를 부러워하기 보다는 떨어지길 잘했다
라고 속편히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믿고 다음 단계를 준비할 때 새로운 길이
펼쳐진다. 최선보다는 차선으로 성공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게 그 증거다.
“대기업에 가고 싶었지. 하지만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실패했어. 어쩔 수 없이 지방의
중소기업에 입사했는데 세월이 지나니 어느새 내가 사장이 돼 있더라고.” 라고 말이다.
인간에겐 운명이 강제로 부과된다. 우리가 바꿀 수 없으므로 운명이다. 또 억지로 바꿔
본들 부자연스럽고 아름답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감수하고 그 운명을
토양삼아 인생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운명을 초월하는 인간의
위대함이다.
★ 약간의 거리를 둔다.
우리 어머니는 후쿠이 현 시골에서 몰락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자랐다. 한마디로
평범한 시골사람이다. 그런 분이었지만 학문의 세계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몇 가지
감각적인 지혜를 내게 남겨주셨다.
먼저 집에 관한 것이다. 어머니는 방마다 문은 두 군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통풍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철칙처럼 지키며 내가 살 집을 설계했다.
어머니는 집 주변 환경도 공기가 잘 통하는 곳이 좋다고 하셨다. 통풍이 나쁘면 집이 썩고,
그 집에 사는 사람도 병에 걸린다고 믿으셨다.
그 믿음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 서로에게 어느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 생긴다. 어머니 말씀처럼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듯싶다.
★ 떨어져 있을 때 상처받지 않는다.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 자녀는 철저하게 타인이다. 타인 중에 특별히 친한 타인이다.
★ 칭찬받는 삶은 지친다. 사람들의 칭찬이 있은 뒤로 계속해서 그에 버금가는 요구가
뒤따른다. 오히려 처음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사람은 약간의 친절과 베풂에도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게 된다.
★ 결점을 보여주면 편안해진다. 결점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이상하게도 친구들이
늘어난다. 사람들은 나의 장점에만 호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결점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 칭찬받든 야단맞든 본질은 그대로다.
긴장이란 일반적으로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생겨난다.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칭찬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칭찬받는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또한 비방받았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훼손되는 일은 없다.
★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반반이다.
인간은 잔인할 정도로 서로 닮아 있다. 저 사람은 백퍼센트 좋은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든지,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판단이 옳았던 적은 없다.
판단에는 확대 생산된 부정확한 선입관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세계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반반이다. 사람들 모습 속에도 절반의 악과
절반의 교활함이 감춰져 있음을 나는 비난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반쯤 교활한 인간
에게 어김없이 그만큼의 교활하지 않은 인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옳지 않아, 라는 나의 판단 뒤에는 저 사람에겐 배우고 감탄하기에 충분한
빛나는 무언가가 가려져 있다는 이야기다.
★ 인생은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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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보면 그냥 그의 생각에 빠져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저한테는 이 책이 그랬네요. 서점에서 여러 번 마주했지만 이상하게 손이 안 가 사지를
않았다가, 자꾸 눈에 들어와 읽는 순간 노작가의 인생 지혜에 깊이 감응하고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편안히 글을 음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