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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 >

“처음 시작하는 인문학”

by 해헌 서재

< 소통 >


--“황석영 <삼포가는 길>, 로이 리히텐슈타인 <행복한 눈물>”

: 정수임의 청소년을 위한“처음 시작하는 인문학” 중


강 일 송


오늘은 인문학에 관한 책 중, 소설과 미술작품을 연계하여 하나의 주제를 놓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내용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본래 청소년을 위한 책인데, 의외로 청소년을 위한 책들을 보면, 개념이 쉽게 정리가 되어

있고, 내용도 성인 수준 이상으로 알찬 책이 많습니다.

오늘 책도 그러한데, 저자인 정수임은 현재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많은

글을 쓰고 나누고 있다 합니다.


오늘 책의 여러 주제 중, 오늘은 “소통”에 관해서 한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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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의 시대


손가락 하나를 움직였을 뿐인데 스마트폰 속 세상은 실시간으로 세상 소식을 전해준다.

2G, 3G, LTE, LTE-A 등으로 진화하면서 전화기는 단순히 전화가 아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낯선 곳을 처음 찾아갔을 때, 예전이라면 물어물어 갔겠지만 지금은 길찾기

앱에 출발지와 도착지를 누르고 시간을 가늠하면서 찾아간다.

많은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막거나 듣지 않으려 하는데

손 안의 세상과 고요한 소통 중이기 때문이다.

폰 속의 사람들과는 소통하지만 더 이상 낯선 사람들과는 소통하려 들지 않는다.


★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1964


포스터처럼 원색적인 느낌을 주는 <행복한 눈물>은 미국 출신의 화가 로이 리히텐슈타인

(1923-1997)의 작품이다. 익히 알고 있을 만한 앤디 워홀과 함께 팝아트를 대표하는

화가로 대중문화 중 하나인 만화를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만화보다도 더 굵은

선과 선명한 색으로 ‘로맨스’와 ‘전쟁’을 주된 소재로 표현했는데, <행복한 눈물>은 로맨스

의 한 장면이다.


그림 속의 그녀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는 각자 상상해야겠지만 어쩐지 그 눈물에는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지 않다. 살다 보면 때때로 웃기지 않지만 웃어야 할 때, 슬프지 않지만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분위기를 맞추는 일이 소통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그림 속 그녀처럼 행복해하며 우는 연기쯤은 쉽게 해야 한다. 행복감의 최고조는 울면서

웃는 모습이니까.


사실 리히텐슈타인이 주로 다루는 사랑이나 전쟁은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수많은

철학자가 여전히 사랑을 정의하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전쟁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사랑의 문제나 전쟁은 비극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또는 국가 간의 관계가 깨지는 이유는 진심이 담긴 소통이 없기

때문이다. 소통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 삼포로 가는 길, 황석영, 1973년


1970년대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공사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도시에서 공사장 인부로 살던 정 씨도 십 년 만에 고향인 ‘삼포’로 가는 길이다.

정 씨의 기억 속 삼포는 남아도는 비옥한 땅과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물고기로

둘러싸인 섬이다. 하지만 삼포행 기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에서 만난 노인은 삼포에

다리가 놓이고 관광 호텔을 짓느라 트럭이 신작로를 질주하는 곳이 되었다고 알려준다.

기억 속 고향과는 달리 또 하나의 공사장이 되어 버린 삼포로 가는 정 씨의 발걸음은

무겁다.


하지만 공사장이 반가운 이도 있다. 그와 우연히 동행하게 된 ‘영달’이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영달에게 공사장이 된 삼포는 새로운 일터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공사장의 밥값을 떼어먹고 도망치다 정 씨와 동행하게 된 영달과 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정 씨에게 삼포라는 공간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1970년대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떠돌이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시대다.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일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에 한 명 더 ‘백화’라는 여자도 마찬가지다. 그녀 역시

고향을 떠나왔고 남자들처럼 힘쓰는 일을 할 수 없던 탓에 군부대와 선술집을 전전

하며 삶을 이어 갔다. 스물두 살에 걸맞지 않게 늙어 보이는 행색은 그녀의 거칠었던

삶을 말해 준다. 이제 그녀는 일하던 객주집에서 도망쳐 감천 역으로 향한다.


떠돌이 세 명의 우연한 동행은 비슷비슷한 각자의 처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그들은

함께 하얀 눈을 밟으며 황량한 벌판을 걷는다. 힘들어하는 백화를 업어 주고, 팥 시루떡을

나누고, 비상금을 쪼개 기차표를 마련하는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처럼

황석영의 소설 “삼포로 가는 길”은 가진 것 없는 세 사람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작품 속 그들은 자신의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서로의 오늘을 염려한다.

이제 소설은, 소통이란 굳이 둘러앉아 대화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공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주 편리한 소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수많은 사람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우리끼리’ 만 소통한다면 그것은 소통이라 부르기 힘들다.

소설 속의 인물들도 처음부터 ‘우리’는 아니었다. 이들은 서로의 입장에 공감하고 연민하는

과정을 겪으며 ‘우리’가 되었다.


★ 행복한 눈물의 여인과 삼포로 가는 사람들


삼포로 가는 사람들은 다툼과 의심, 경계의 과정을 겪은 뒤에 비로소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각박한 서로의 삶을 이해한다.

반면, 원색적인 색깔과 굵은 선들로 마음을 더욱 과장하고 굵은 눈물을 흘리는 리히텐슈타인

의 여인은 정말 행복해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마음을 숨기고 얼굴만 웃는 그녀

의 표정에서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소설이나 그림은 소통의 모습을 보여줄 뿐 우리에게 소통의 방법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서로의 같음과 다름을 줄여 가며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괜찮은 척, 좋은 척하며 살아가는 삶이 정말 행복한지는

알 수 없다. 막히지 않고 통한다는 소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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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문학을 소개하는 책이었는데, 저자는 소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 편

의 소설과 미술 작품 하나를 연결하면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참 아이러니한 세상인데, 역사상 가장 소통이 잘 되는 도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소통이 안되고 고독한 시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SNS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연결이 가능하지만 막상 마음을 터

놓고 자기의 이야기를 할 사람은 드뭅니다.


오늘 저자는 한동안 삼성그룹이 소장했던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한 눈물"과

황석영 작가의 "삼포로 가는 길"을 대비하면서 소통에 관하여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한 눈물"은 그 가치가 70-90억 정도가 된다고 하는

고가의 작품인데, 얼핏 보면 만화를 베껴 놓은 그림 같이 보이지요.

현대미술은 이처럼 기존의 관념을 뛰어 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희소성을 가지면

서 그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저자는 이 "행복한 눈물"에서 보이는 여자의 눈물이 진심이 담겨져 있지 않은

눈물이라고 합니다. 이 사회를 살아가려면 이처럼 억지로라도 눈물을 흘리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서 가식의 소통을 발견합니다.


황석영작가의 "삼포로 가는 길"은 이와 반대로 가장 어렵고, 못 배우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고, 가진

게 몸밖에 없어 노동을 하고 술집에서 일을 합니다.

처음에는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서로의 처지와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진정한

소통을 나누게 됩니다.


결국 소통이란 겉으로만 친하고, 서로 알고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를 하고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추운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진정한 소통을 주위와 나누는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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