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헌 서재 Nov 25. 2017

<꽃에게 말하다>

<꽃에게 말하다>

          - 해 림 詩集 -

                                   강 일 송


오늘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자각하고 자신의 삶과 생각을 구름과 바람, 꽃에게 이야기하듯

시를 써낸 한 시인의 시집을 보려고 합니다.


시인의 필명은 해림(1940~)으로 제주 출생이며, 제주 신성여고와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왔습니다.

2009년 계간 <시선>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난지도에서 꿈을 꾸다>,

<꽃에게 말하다>가 있습니다. 현재 시에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라 합니다.


필명인 해림에 관해 여러 곳을 보아도 한자가 나오지는 않지만, 제주도가 고향인 시인의

이력으로 보아 아마 해림은 海林이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그의 시집에는 풀과 나무, 꽃과

바람, 바다가 많이 나오는데 어린 시절 자연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제주바다 곁에서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고 필명도 그 연장선상에 있겠지요.


먼저 시 한편을 보자면



<꽃에게 말하다>

                 해 림


지상에서의 삶은 황홀했다

꽃잎들은 떠나온 자리로 되돌아갔다

꽃잎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사연은 나도 모르고

꽃잎도 모른다

미루나무 숲으로 날아가는

휘파람새에게나

새벽별에게

꽃이 피고 지는 사연을 물어볼까

달빛 속으로 걸어 들어간

구름에게

꽃의 행방을 물어봐야겠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꽃은,

꽃은 사라지고

꽃의 무덤 위로 안개비 내리고

아직 다하지 못한 말

꽃에게 말하다


--------------------------------------------


오늘 시집의 제목이기도 <꽃에게 말하다>라는 시입니다. 시집의 제목에 이 시가

자리한다는 것은 시인의 시세계를 투영하는 가장 중요한 시라는 것이겠지요.


꽃의 삶은 황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처럼 꽃도 처음에 자기가 왔던 그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사람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듯이

꽃도 그 사연을 알 길이 없습니다.

휘파람새나 새벽별이나 구름에게 물어보지만 아무도 제대로 답해주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들처럼 한 번 떠나간 꽃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시인은 화려했던 삶을 살았던 꽃의 삶을 통해 자연의 광대무변한 이치와 그 깊은 뜻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미처 꽃에게 다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이 못내 아쉬워 시의 화자는

꽃의 무덤가에서 꽃에게 말을 하고 있네요.


열여덟 줄의 시 안에 우주의 순리와 삶의 유한성, 꽃같은 삶의 아름다움, 아쉬움 등이

차곡차곡 잘 담겨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음 시를 볼까요.



< 아주 오래된 기억 >

                 해 림


나는 바이칼 호수를 떠나왔다

뼈 마디마디 뼈와 뼈 사이 박힌

뿌리에 대해서 집중하는 순간에

자유로운 영혼으로 떠돌고 싶은

열망으로 사로잡히는 순간에

거듭나는 생멸 전생의 전생

윤회의 시원으로부터 울려오는 유랑의 노래를 듣는다

낙엽송과 자작나무 숲길을 따라

북방의 땅을 유랑하던 그 옛날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의 손을 잡고

바이칼 호수를 떠나던 날

태양은 붉게 타오르고 풀잎은 싱그러웠다

카자흐스탄의 초원과 사막을

떠돌이 별처럼 떠돌던 유랑의 길

풍요로운 약속의 땅을 찾아서

끊임 없이 걷던 남쪽으로의 행군

산과 숲과 나무의 그림자

강물에 잠긴 달빛 눈부신 설국에

무릎 꿇었던 날들의 여정이여

나의 가슴은 대지의 숨결을 기억한다

나의 귀는 알타이산맥을 스쳐 지나가던

바람소리를 기억한다


--------------------------------------------


두 번째 시는 시공간을 넘어서 우리 민족 발현의 고향이라는 바이칼호에 다다릅니다.

윤회를 거듭한 생멸의 전생, 그 전생을 거슬러서 시원의 고향을 떠나 지금의 따뜻한

한반도까지의 길고 긴 여정이 이어집니다.

숲길을 지나고 초원과 사막을 거치며, 설국의 땅을 거치는 머나 먼 유랑의 여행입니다.

부모 형제와 손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약속의 땅, 남쪽의 나라를 향하던 그 순간 태양은

지금처럼 붉었고, 풀잎은 여전히 싱그럽습니다.


시인은 수천 년 세월을 뛰어 넘어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갑니다.

시인의 상상력은 대범하고 과감하며 거침이 없습니다. 현대 의학과 과학의 힘으로 DNA

검사 등을 통해 역추적하면 바이칼호부터 한반도까지 인종적 유사성을

보인다고 하지요. 우리의 성황당과 같은 문화적 유산도 보이고 설화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까마득한 선조들의 옛날 시간과, 시원의 장소까지 따라 거슬러 갈 수 있는 시인의

폭넓은 상상과 역사적 사실성이 잘 조화를 이룬 시였다고 하겠습니다.


다음 시를 보자면,



<옛날의 금잔디>

                 해 림


나의 본적은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면 하귀리, 나고 자란 곳은

제주시 일도리 북신작로, 제주시 관덕정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30분을 가면 하귀리에 닿는데 외도리를 넘어서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큰아버지네 술공장 굴뚝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 대를 이어서 술공장을 운영하시던 큰아버지는 제삿날이면

돼지를 잡고 쌀 한 가마니를 풀어 떡을 하고 흰 쌀밥과 고기와

떡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큰어머니는 무명옷 벗을

날 없이 부지런하고 인자하고 고운 분이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군납업을 하다 실패하시고 하는 일이 풀리지 않으면

술로 날을 지새웠는데 어머니는 밑으로 동생 여섯을 낳고 기르시느라

철이 들면서부터 집안일과 쌀을 져 나르고 밥하는 일은 외할머니와

나의 몫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꽤 큰 집을 지니고 살았지만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밥 먹고 사는 일이 힘들었고 큰아버지 큰이모님

도움이 많았습니다 4.3과 6.25를 겪으면서 격동의 1950년대가 저물

어가던 때 희망이 보이지 않은 세상은 우울했습니다


미로 같은, 길을 찾지 못하는 앞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같은

예감이 두려웠으나 인자하신 집안 어른들이 계셨기 때문에 견딜수

있었습니다 서귀포 큰이모네집 동산에서 멀리보이는 문섬과 밤섬의

아름다운 경관에 가슴이 먹먹해지던 시절, 제주의 풍광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였습니다 한라산의 정경이 손에 잡힐 듯 하고, 야생의 초원과

둥근 오름들, 소용돌이치며 일렁이는 푸른 파도, 서쪽바다로 서시히

잠기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이 무렵 시(詩)가 나에게 찾아왔습니다


------------------------------------------------


마지막 시는 시인의 자전적인 내용의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가 고향인

시인은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그대로 겪는데, 제주의 4.3사건과 한국전쟁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온 가업인 술공장은 큰 집을 가질 만큼 가세를 이어왔으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우울한 청소년기를 거치게 됩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 시인은 아름다운 고향, 제주의 풍광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문섬과 밤섬, 오름들, 푸른 파도, 한라산의 정경은 시적 감성을

자극하여 현재의 시인으로 서게 만듭니다.


한번씩 개인적인 생각으로 대한민국에 제주도가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건조했을까

여기는데, 이런 절경의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이는 시인으로서의 선천적으로

타고난 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시의 제목은 “옛날의 금잔디”인데, 아마도 고향을 그리는 미국의 민요인 “매기의 추억”

의 첫 가사에서 영감을 얻어 정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캐나다의 시인 George Johnson

(1841-1865)이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매기(Maggie)를 그리며 쓴 노래였는데, 사랑하는

매기와 결혼 후 1년도 못되어 폐결핵으로 떠나게 되자 결혼 전 고향에서 같이 지내던

날들을 그리며 쓴 가사라고 합니다.


해림 시인은 고향 제주의 어릴 적 마을이 “옛날의 금잔디” 동산이었던 것이지요.

소탈하게 자신의 어릴 적 기억과 추억을 담담히 적은 자전적 내용도 이렇게 진심어린

마음이 담겨져 있으니 훌륭한 시가 되었습니다.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을 때 그 가치를

발할 것이고, 이는 예술의 영역으로 그 의미가 확장이 될 것입니다.


시인의 마지막 말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나의 삶과 나의 생각을 구름에게 바람에게 꽃에게 말하고 싶었다."


편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