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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6. 2016

<그런 일> 안도현

안도현 산문집


<그런 일> 안도현
-- 안도현 산문집

                                   강 일 송

오늘은 안도현 시인의 산문집을 하나 보려고 합니다.
안도현(1961-)시인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한 후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으며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작가
입니다.
오늘은 시가 아니라 그가 그동안 모아두고 간직하고 있던 산문들을 모아
모음집을 만든 <그런 일> 이라는 책에서 2편 정도 제 나름대로 정리해서
옮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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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이 있던 집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나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고향을 떴다. 사촌형을 따라 대구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내가 처음 배운 것은 자취방의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고 제때 갈아주는 일이었다. 연탄아궁이에서 연탄의 붉고 푸른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구들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 불꽃이 나를
키웠다. 그 불꽃으로 밥과 국과 라면을 끓였고, 양말고 운동화를 말렸고, 양은
찜통에다 밤새 물을 데워 아침에 머리를 감았다.

하루는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깨서 대문 옆의 재래식 변소까지 걸어갔는데
간 기억은 생생한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변소 바닥에 주저 않자 있었다.
아차 싶었다. 연탄가스를 마신 것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바로 직전에 연탄을
간 게 불찰이었다. 방으로 들어가 사촌형을 깨웠다. 동치미 국물도 궁핍한
자취생에게 있을 리 없었고, 졸음은 쏟아졌지만 두 시간 가까이 잠을 누르며
겨울밤을 하얗게 보냈다.

문학에 눈뜨면서 해마다 12월 언저리에는 이른바 신춘문예 열병을 앓곤
했는데, 당선 통지를 기다리며 연탄불에 라면을 끓는 날이 많았다.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가질 때까지도 연탄을 때는 열두 평짜리 아파트에
살았다. 그 아파트는 공단 노동자들의 자취방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 집들은 하나같이 지붕이 낮았고, 어깨를 다닥다닥 붙이고 있었다.
밤늦게 책을 보거나 글을 쓰다가 마을을 내려다 보면 깜깜했던 어느 집
창문에 거짓말같이 불이 들어왔다. 나는 그 백열전구를 밝히는 손과 그의
고향과 하는 일과 월급과 노동조건을 생각했다. 그가 곤하게 잠들었다가
연탄을 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 밑불이 위에 새로 놓이는 연탄에게 불꽃을 넘겨
주듯이 20세기의 연탄은 21세기에도 꺼지지 않고 있다. 아직도 어디에선가
연탄, 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아픈 사람이 있을 것이고, 겨울날 골목길
사이로 싸하게 퍼지는 차가운 연탄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들면 생활이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이가 있을 것이다.

너나없이 연탄을 때던 시절에는 연탄 창고 가득 연탄이 쟁여져 있으면
겨우내 마치 큰 부자가 된 듯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나는 누구에게
든든한 사람이 될 수 없나?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 될 수 없나?
나는 나에게 오늘도 묻는다.

◉ 걷는다는 것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다비드 르 브르통이 <걷기 예찬>에서 표현한 멋진 말이다. 걷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이 세계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게 되고 몸 전체로 받아
들이게 된다는 말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의 관절을 움직이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한 발짝을 옮겨 걷겠다는 마음을 품으면 그때부터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걷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춘다. 누가 특별히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몸 전체가 걷는 일에 기꺼이 복무하고자 한다.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한 발짝, 두 발짝 걷기 시작해보라.
우리의 몸은 막 시동을 건 엔진처럼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눈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샅샅이 탐색하며 나아갈 곳을 살필 것이며, 귀는 무한히
열리게 되고, 코는 벌름거리게 될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혼자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 아니다. 걷는 일이 유아독존을
확인하는 데 그치는 일이라면 의미가 없다. 우리가 발걸음을 떼는 순간,
이 세계는 우리의 걷기에 동참한다. 풍경은 우리가 떠나온 곳이 궁금해
천천히 뒤로 지나가고, 달빛과 별빛은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를 따라온다.
바람은 귀밑머리를 간질여줄 것이며 땅은 발바닥을 떠받쳐줄 것이다.
웅덩이는 웅덩이대로, 돌부리는 돌부리대로 유심히 우리의 걷기를
보살펴줄 것이다.

승용차가 별로 없던 시절, 우리는 참 많이 걸었다. 자동차는 수수밭머리에
해지는 풍경도, 마른 수숫대 위에서 뛰는 방아깨비도 보여주지 않으며
수숫대가 서로 몸을 비비며 서걱대는 소리도 들려주지 않는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서 보고 들은 것들은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차창 밖으로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일 뿐이다.

자동차가 적으면 당연히 오래 걷기 마련이다. 평양에 갔을 때 부지런히 길을
걸어가는 북쪽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던 적이 있다. 큰 짐을 등에 지고
걷는 할머니도 있었고,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걷는 소녀도 있었고, 앉은뱅이
책상 같은 것을 어깨에 메고 걷는 소년도 있었다.
이제 남쪽 사람들은 의식주를 위해 걷지 않는다.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걸을 필요도 없다. 어지간한 거리는 자동차의 바퀴가 걷는 다리의 수고를
덜어주니까 말이다. 남쪽 사람들이 걷는 이유는 딱 하나, 바로 건강을 위해서다.
비로소 도시의 강변이나 등산로는 아침저녁으로 걷는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걷는 것만으로 모자라 뜀박질이 대유행이라고 한다.

한쪽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걷고, 또 한쪽은 먹고사는 일에 배가 불러
살을 빼려고 걷는 현실이 나를 참 아득하게 만든다.
남과 북의 경제력 차이일 뿐이라고, 콧방귀 한번 뀌고 지나갈 일이 아니다.
뱃살을 빼기 위해, 건강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걷는다는데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다만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걷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내 뱃살이 두꺼워질 때 누군가 꼬르륵거리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게 걷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자의 도리다.
이쯤에서 나도 걷는 일에 대해 멋진 표현을 한번 해보고 싶다.

‘걷는다는 것은 나와의 대화일 뿐만 아니라 세계와의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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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안도현 시인의 시가 아닌 산문집을 한번 보았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문학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얼마
안 되는 작가라고 하더군요.
그의 산문을 쭉 읽다보면 그가 왜 대중의 공감을 일으키는 시인인지
그 감성의 흐름을 보면서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따뜻합니다. 그리고 남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배려가 배여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나

그의 시(詩)중 가장 짧고도 유명한 시지요. 단 세 줄에 그는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거의 잘 쓰이지 않는 연탄은 예전
보통사람들의 대표적인 난방수단이자 취사 발열원이었습니다.
저자도 사촌형과 시작한 대도시의 자취생활에서 연탄 갈고 유지하는 법부터
배웠다고 하지요.
오죽했으면 연탄의 그 붉고 푸른 불꽃이 그를 키웠다고 할까요?
연탄을 보고나서 "나는 그 누구에게 든든한 사람이, 뜨거운 사람이 될 수 없나?"
라고 끊임 없이 되묻는 그는 참 따뜻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 산문은 '걷기'에 대한 글입니다.  걷기란 단순히 다리의 관절이 움직여서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걷기란 우리의 온 몸으로 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느끼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요즘은 아주 가까운 거리도 차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에는
수없이 걸었다지요. 초등학생이 십 리를 걸어서 학교를 왕복하는 경우는 시골
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었습니다.
저자는 걸었을 때 비로소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북한을 다녀온 후, 한 쪽은 배를 채우려고 걷고, 한 쪽은 뱃살을 빼려고 걷는
현실을 보고 그는 내 뱃살이 두꺼워질 때누군가는 배를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합니다. 그게 도리라고합니다.
요즘 한창 헬스를 하여 몸매 유지를 하려고 애쓰는 중인 저로서도 그의
오지랖 넓은 견해에 귀를 기울여 보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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