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시(詩)>
“잠시 멈춰 숨 고를 나이, 가슴 뛰는 시를 만나라”
강 일 송
오늘은 ‘마흔’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나이, 과거에는 벌써 성숙하여 ‘불혹’이라
불렸던 나이, 이 나이에 다시 한번 가슴 뛰는 시를 만나라고 하는 시인인 저자의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고두현(1963~) 시인은 경남 남해 출신으로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시인이자, 한국경제신문 문화부장을 거쳐
현재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시에세이집 “시 읽는 CEO”, “옛 시 읽는 CEO”, 또 “시인, 시를 말하다” 등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
오늘 저자가 쓴 “느림과 부드러움”에 대한 글과 그가 뽑은 시 중 다시 몇 편을 골라서
저의 감상을 함께 해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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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림과 부드러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한계 시간은 15초 정도라고 합니다. 40초가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화를 낸다는군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그 안에 있을 때 사람들은 뭔가 생산성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처음 등장한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1초에 20센티미터였습니다. 지금은 비행기의 이륙속도에
맞먹을 정도로 빨라졌지요. 요즘은 나노초(10억분의 1초)라는 표현도 씁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빠르고 부지런해야 될까요. 현대인들이 시간을 사고팔면서 낭비하는 것과
달리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원하는 만큼 시간을 창조하고 생산한다고 합니다.
시간이란 인간에 의해 정의되고 분석되고 측정되는 것이지요. 새로운 과학 기술도 더 많은
시간을 갖게 해 주지는 않습니다.
눈 밝은 사람들은 “이런 때일수록 세상을 느긋하게 보라.”고 권합니다. 일상의 리듬을 조율
하면서 단순하고 느리게 사는 것이 풍요롭게 사는 지름길이라는 겁니다.
진정한 행복은 고요와 느림의 미학에서 시작되니까요.
자 이제는 발길 닿는 대로, 풍경이 부르는 대로 한가롭게 걸어 볼까요. 권태로움을 즐기고
천천히 기다리며 지난 시절의 추억을 한 부분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겨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럴 때 느림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한 방식입니다.
파스칼도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가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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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초>
호시노 토미히로
오늘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도 또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 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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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첫 시의 시인인 호시노 토미히로는 체육교사였는데 수업 중 시범을 보이다가 다쳐서
목 윗부분만 빼고 전신 마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입으로 붓을
물고 시를 쓰거나 그림 그리는 것 밖에 없어서 입으로 시와 그림을 쓰는 시인, 화가가 되었
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을 딛고 그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이 슬픈 일, 기쁜 일이 교차하지만, 또한 희망이 있다가 절망
했다가 미워하고 사랑하기를 반복하지만, 그보다 더 우리 곁에 있으면서도 표가 나지 않는
마치 공기와 같이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 “평범한 일상”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큰 일이 생겨야만 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나날로 간절히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간절한 평범한 순간에는 그 귀함을 모르지요.
인생에서 평범한 순간이 진정 귀함을 아는 것이 살아가며 얻어야 할 큰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두 번째 시를 보겠습니다.
<선 물>
나태주(1945~)
받는 것은 될수록 줄여서 받고
주는 것은 될수록 늘여서 주리
그대 내게 주시는 것
비록 작더라도
큰 상으로 알고 받겠으니
내가 주는 것 비록 크더라도
작은 별로 바꾸어 받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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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풀꽃>으로 너무나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시였습니다.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큰
울림을 줄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 시(詩) 풀꽃은
<풀 꽃 .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바로 이 시였지요. 오늘 다른 그의 시인 <선물>도 또한 짧지만 많은 여운을 주는 시입니다.
남한테 받는 것은 적게 받고, 내가 좀 더 남에게 더 주어 베풀어야 하며,
남한테 받은 작은 것도 크게 여겨 감사할 줄 알고, 내가 행한 선한 일은 크든 작든 빨리
잊으라는 말을 합니다.
이 짧은 시에 참 많은 교훈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담겨져 있지요.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자기의 마음은 따뜻하고 주위와의 관계도 훈훈해지고, 삶이 훨씬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 한 편 더 볼까요.
<나를 키우는 말>
이해인(1945~)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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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우리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시를 선사해 주시는 이해인수녀님의 시 한 편입니다.
암투병 중에도 이렇게 곱고 맑은 시를 써서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말 이상의 큰 힘이 있습니다. 말을 하는 순간 그 말의 공명의 힘이 우리
몸과 마음에 영향을 주어 그 지배하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부터 선현들은 늘 좋은 말, 아름다운 말을 하라고 가르쳤나봅니다.
오늘 시에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저절로 행복한 마음이 맑은 샘처럼 흐른다고 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내 마음이 순해진다고 합니다. 아름답다고 말하면 스스로가 아름다워
지고, 기쁘다고 말하면 저절로 기뻐지겠지요.
오늘 고두현 시인은 짧은 글과 짧은 시를 통해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네요.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할수록 우리는 좀 더 느리고 단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가야기도 하지만, 너무 함께 쫓아가다 보면 현기증으로 쓰러질
것만 같습니다.
마라톤도 자기만의 페이스를 알고 끝까지 유지한 사람이 완주할 수 있기 마련입니다.
자기 삶의 속도와 페이스를 알고, 호시노 토미히로처럼 갑자기 온 삶의 기능을 잃은
사람에게는 나의 평범한 일상이 최고로 갖고 싶은 하루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평안한 일상의 하루, 선물같은 하루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