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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Jan 24. 2018

<아빠가 옆에 없으면 곁에 있다고 생각하지>

“나를 흔든 시 한 줄” 中

<아빠가 옆에 없으면 곁에 있다고 생각하지>

“나를 흔든 시 한 줄” 中


                                      강 일 송


오늘은 시(詩) 몇 편을 보고자 합니다. 우리 시대 명사(名士)들에게 어려운 시절 힘이

되었던 시 한 편을 골라달라고 하여 이를 모은 시집인데, 예전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詩)란 모름지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시라고 하겠지요.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때론 힘을 내게 해주는 아름다운 시 몇 편을 함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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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케이팅 레슨

             - 잭 로거우(Zack Rogow 1952~)


아이스링크 가장자리로 여섯 살짜리 딸을 이끈다.


스케이트를 신은 딸은 내 손을 잡고

조심조심 나를 따라온다.

그러다가 발이 미끄러지면

놀라서 나를 꽉 붙잡는다.


오늘 딸은 내 옆에서 혼자서도 스케이트를 잘 탄다.

내 손도 안 잡은 채

불안하게 첫발을 내밀며 딸은 말한다.

“아빠가 옆에 있으면 곁에 없다고 생각하고

아빠가 옆에 없으면 곁에 있다고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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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 타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아빠와 배우고 있는 딸의 모습이 눈에 그려

지네요. 처음 배우는 스케이트는 어색하고 미끄러지는 것이 무서워 조심조심

아빠 손을 잡고 배우는 어린 딸이었지만, 어느덧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져 갑니다.

그러고는 어른스럽게 말하네요.


사실 어린 딸이 자라서 사회로 나갈 때, 부모, 특히 아빠는 늘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스럽습니다. 그렇다고 평생 함께 보호하고 살 수는 없지요. 하지만 작품 속 딸은

너무나 의젓합니다. 아빠가 있다면 아빠한테도 신경이 쓰이니 없다고 여기면 더

스케이트가 잘 타질 것이고, 없을 때는 있다고 생각을 하니 든든해서 스케이트가

잘 타질 것입니다. 참 지혜로운 딸입니다.



다음 시 한번 보겠습니다.


★ 안 거둬들인

          -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무언가는 거둬들이지 않은 채 늘 남겨두기를!


많은 것들이 우리의 정해진 계획 바깥에 남아 있기를,


사과이건 무엇이건 잊혀진 채로 버려두어,


그 향내 맡는 일이 죄가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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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니,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 벅(1892-1973)여사가 1960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시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 농촌을 지나다가 감나무에 따지

않은 감이 하나 있는 것을 보고 따기 힘들어서 남겨둔 것이냐고 물었더니, 까치밥이라고

새들을 위해 남겨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펄 벅 여사는 한국에 방문하여

고적이나 왕릉을 보아서가 아니라 이것 하나만으로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전원시인 프로스트는 똑같은 이야기를 오늘 이 짧은 시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항상 너무 꽉 채우고, 너무 다 가지려고 하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루려고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여유로운 공백의 미, 여백의 미가 예술 작품이든 우리 삶이든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세 번째 시도 보겠습니다.


★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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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보르스카는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의 여류시인입니다. 시단의 모차르트 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시인인 그녀는 한글로 번역한 시에서도 감동을 받았다는 평이 많더군요.


먼저 시인은 인생의 유한함을 말합니다. 시의 제목처럼 인생은 ‘두 번’은 없습니다.

물론 불교의 교리에서는 무한한 윤회의 업이 존재하지만 말이지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

나고 아무런 훈련 없이 죽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겠다는 동의를 한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인생이라는 학교에서는 낙제는 없다고 하네요.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으면

말이지요.


인생은 누구나 고난의 여정이고 고해(苦海)라고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쓸데없는 불안으로

살지 말아라고 합니다. 결국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고, 사라지지만

그러기에 세상은 아름답다고 역설적으로 말합니다.

만일 죽음이 없이 무한히 인간이 산다고 하면 늙어 헤진 몸으로 얼마나 아름답지 못하게

이 세상에 존재하겠습니까. 사라지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 맞습니다.


마지막 한 편의 시를 더 보겠습니다.


★ 나이 든 나무

           - 장태평(1949~)


나이 든 나무는

바람에 너무 많이 흔들려보아서

덜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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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특이하게도 시인이자 전(前)농림부장관인 장태평 작가의 시였습니다.

아주 짧은 시지만 함축된 의미는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달이 잘 되지요.

시란 이처럼 짧지만 깊은 맛이 있고 여운이 길게 느껴져야 합니다.


나이 든 나무는 그 살아온 긴 세월동안 수많은 비바람, 눈보라, 태풍, 번개, 천둥 등을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알”이란 시에서도 대추 한 알에 태풍,

천둥, 벼락이 몇 개씩 들어있다고 했지요. 장태평 시인의 나이 든 나무 안에도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시인의 나무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긴 세월을 삶의 파고와 싸우고 적응한

노인들은 아무래도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할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세대간 갈등의 시대라고 하여도 서로가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해법은 반드시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노인은 반드시 젊은이였던 시절이

있었고,  젊은이는 반드시 노인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필연의 이치를 이해한다면

서로가 역지사지의 존중함으로 갈등의 골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갹해

봅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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