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잘 풀리는 철학적 사고술>
“니체가 알려주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
강 일 송
오늘은 니체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 사고와 삶을 풀어가는 방식을 알려주는
책을 한 권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최근 소개한 <초역, 비트겐슈타인의 말>, <지성이 무기다>의 저자인 시라토리
하루히코(1954~)입니다.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아오모리에서 태어나 돗쿄대학(獨協大學) 외국어학부
독일어학과를 졸업한 후, 1979년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종교학, 문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한 그는 일본으로 돌아와 번역을 시작
으로 <초역 니체의 말>로 밀리언셀러가 되며 일본 인문분야 최대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우
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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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 위안이 되는 문장들
나는 일과는 무관하게 단순히 개인적 흥미와 기쁨을 얻기 위해 철학 책들을 읽고 있다.
공부할 마음 따윈 눈곱만큼도 없이 조용한 장소에서 혹은 잔잔한 재즈의 음률을 들으며
붉은 가죽 소파 위에 앉아 무작정 책장을 넘긴다.
그러면 곧 잔잔한 밤의 바다를 조용히 나아가는 보트의 노 끝에서 야광충이 빛을 내듯
머릿속의 수많은 별들이 왁자지껄 종알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어떤 영감이 싹트는
것으로, 그때의 느낌이 나는 너무 좋다. 이를 테면 이런 문장을 접할 때 그렇다.
“얼굴은 몸의 영혼이다.”
“어떤 말이라도 각기 냄새를 가진다. 그리고 냄새 간의 조화나 부조화가 존재하듯
말에도 그런 것이 있다.”
“사소한 것들에 위안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아무래도 좋을 것들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이 문장들은 본래 외국어이지만, 번역해도 여전히 시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내용 자체에 아름다움과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언어를 시집 또는 철학 책에서 자주 볼 수 있기에 스스로 어떤 위안을
삼고자 그것들을 읽는다.
나는 철학 책을 사고의 인생 경험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보다 낫다.
니체는 삶이 재미있었다고 하였다. 재미있었다고 말 할 수 있는 인생이 소위 성공한
인생보다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무엇이 인생의 성공인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미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고, 스스로 자기 인생에 대해
만족했다고 밝히는 것이기에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사고방식을 바꾸고 유연해지는 일
인생을 살벌한 전쟁터로 만들지 않는 방법은 스스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인데,
지금껏 가지고 있던 가치 판단을 버리고, 앞으로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할 수 있다/없다.’, ‘좋다/싫다’, ‘성공이다/실패이다’, ‘안다/모른다’,
‘이득이다/손해이다’, ‘우수하다/열등하다’, ‘아름답다/추하다’, ‘젊다/늙었다’,
‘밝다/어둡다’ ....... 등등의 상대적 사고방식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제까지 단단하게만 보이던 세계가 어느 사이엔가 유해진 듯 느껴진다.
예컨대 지금까지는 곤란하고 위태로운 일로밖에 보이지 않던 일이나 문제들이
일종의 흥미로운 퍼즐, 새로운 장난감처럼 보이는 것이다.
★ 깨달음의 특징
불교의 선문답을 보면 전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무문관> 제
18장에서, 어느 스님이 동산 화상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부처란 여기에 있는 마 세 근이다.”처럼 말이다.
하지만 깨달음을 묘사한 문장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가치판단’과 ‘상대성’에서 철저히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깨달음의 길을 간다는 것은 분별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상식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가치판단과 상대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상대의 지위나 이해관계에 따라서 차별을 하지도 않고, 좋고 싫은 감정도 버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 마음이란 본디 실체가 없다.
불교 경전인 <이입사행론>의 내용을 현대어로 옳긴다면 다음과 같다.
“마음은 맨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늘 대상물에 의해 생긴다.
대상물이 마음이라는 것을 불러일으킨다.”
그후 25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현상학을 전문으로 한 철학자인 후설도 비슷한 말을 한다.
“의식이란 늘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의식이다.”
이런 것을 종합해보면 마음이라는 건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그저 대상에 대한 반응만이
있고, 그것을 편의적으로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세상에 본래 그러하거나 마땅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쾌적하고 아름답기만 한 곳은 아니다. 오히려 바닥을 알 수 없는
불안, 추악함, 잔인함, 불결함, 악함, 어리석음, 교활함, 태만 같은 것들로 가득하다.
니체는 <권력으로의 의지>에서 말했는데,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진행에는
고립된 요소 따위는 단 하나도 없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전체를 짊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 ‘이것은 너무나도 불완전하다’라고 말한다.
마치 공정하고 완벽한 것이 본래의 모습인 양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공정하거나
완전한 것이 꿈에 불과하고 자신의 덧없는 바람임을 잊고 있다.
그것은 마치 있을 수 없는 일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현실에서
완벽한 삼각형이 그려져야 한다는 주장처럼.
예술로서의 철학을 지향한 니체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인간, 이것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나무처럼 우리의 귀에는
거슬리게 들린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나무라니, 이처럼 허황되고 우스운 바람도 없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개, 마땅히 그래야 하는 구름....
현실은 이래서는 안 된다며 한탄하거나 울부짖는 건 그만큼 그 곳에 어울리지 않는
허황되며 우스운 것으로 지금 이 세상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보고 체념하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 현실을 만드는 데
자신이 깊이 관여할 것을 각오하고, 나아가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도량과
강인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생은 후회와
실패의 산이 되어버린다. 혹은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의 탓만 하게 된다.
생이란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비탄만 하는 것도 아니다. 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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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니체 철학에 심취되어 평생을 연구해온 철학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저자는 철학이란 '사고'와 '경험'의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아무런 목적 의식
없이 붉은 소파에 앉아 철학 책을 재즈 선율과 함께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
라고 합니다.
그는 불교의 선문답에서 독일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아우르면서, 삶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경험적이기에, 상대적인 사고와 본디 그러하다는 가치판단에서
자유로워지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상대적인 사고와 가치판단이 있었기에 인간은 동물과 달리 지금의 위상으로
발전해 왔지만, 또한 이러한 것들이 오리혀 족쇄가 되어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고통속으로 밀어 넣은 것도 사실입니다.
늘 대상물에 의해 반응하여 생기는 마음, 또한 본디 그러하다는 당연의 마음은
인간의 덧없는 바람일 뿐입니다.
본래 자연은 굉장히 냉정하고 우리 인간의 생각대로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단란한 가정을 쓰나미가 쓸어가고, 착한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큰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푸른 나무숲 아래에서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다툼이 미생물부터 동물, 식물 세계 전체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니체는 말합니다.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다고. 오히려 그러한 당연한
마땅성을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이를 극복하는 길은 그러한 세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강인함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후회와 남탓으로 점철된 인생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좀 더 유연하고 폭넓되
단단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