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집>

by 해헌 서재

<노란집> 박완서

“아치울 노란집에서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


강 일 송


오늘은 우리시대 위대한 작가 중 한 분인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을 한 권 보려고 합니다.

1970년 등단 이후 소천하기 전까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였던 작가는 말년에 구리의

아치울 노란집에서 거주하며 쓴 글들을 모은 책이 오늘 이 책입니다.


박완서(1931~2011) 작가는 1931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났고,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중퇴를 합니다. 1970년 마흔이 되던 해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휘청거리는 오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

을까>, <도시의 흉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그 남자네 집> 등 수많은 작품이

있습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2011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 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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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볕 등에 지고


앞산 골짜기엔 아직 희끗희끗 잔설이 보이건만 들판 양지쪽엔 봄이 질펀하다.

폭신한 햇살을 등에 이고 쑥잎도 뜯고 냉이도 캐면서 마나님은 살아 있다는 게 마냥

행복하다. 영감님은 냉이국을 좋아한다. 쌀뜨물에다 맨된장만 넣고 끓여도 영감님은

한 그릇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꼭 또 한 그릇을 청한다.


어릴 적에 언니들을 따라, 철들고는 봄기운을 못 이겨, 전쟁 때는 먹을 것이 모자라,

봄 되기가 무섭게 들로 산으로 나물 캐러 다닌 지가 칠십 년이나 되건만 이 일은 왜

이토록 싫증이 안 나고 해마다 새록새록 신기한 것일까. 칠십을 넘어 사는 동안

신기한 것도 많이 보아왔다.


새댁 시절 아궁이 앞에서 깜빡 졸다가 치마폭에 불이 붙어 하마터면 타 죽을 뻔한

적이 있는 마나님은 연탄이 처음으로 농촌에 들어왔을 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신기한 것이 새록새록 생겨나면서 마나님의 고된 신역을 덜어주었다.

그중에도 전화를 처음 놓았을 때, 부엌을 고치고 가스레인지를 설치했을 때 등

얼마나 기쁘고 대견했던지 사람은 그저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이렇게 좋은 세상을

보지 못한 조상들을 측은해하는 마음까지 품었었다.


그러나 그런 신기한 것들은 길들여지자마자 시들해지고 마는데 이 쑥잎이나

냉이 같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어찌하여 해마다 새롭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것인가.

사람은 속절없이 늙어가는데 계절은 무엇하러 억만년을 늙을 줄 모르고

해마다 사람 마음을 달뜨게 하는가.



★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길을 떠나면 되돌아와야 한다. 길 떠날 때는 즐겁고 신이 나지만 돌아올 때는 초조하고

스산하다. 명절 때 귀향길보다 귀경길이 더 정체가 심하고 사고가 많이 나는 것도 이런

조바심 때문일 듯싶다. 떠난 길을 되돌아오려면 U턴 지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 지점은 길 위일 수도 있지만 고향집이나 유원지나 명승지일 수도 있다.


우리 인생 행로에도 U턴 지점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사십대까지 앞만 보고 살았다.

가구나 가전제품만 해도 정말 필요한 가보다도 남들도 다들 그런 것들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장만할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진 것들에 대한 애착이 점차 시들해지다가 이제는 짐스러워서 맨날

없앨 궁리부터 하게 된다. 이제야 조금은 지혜로워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오랜만에 이사를 하려고 들추어 보니 그 분량이 엄청났다.

아아, 나는 너무 많이 가졌구나. 천당까지는 안 바라지만 누구나 다 가는 저승문에

들어설 때도 생전에 아무것도 안 가진 자는 당당히 고개 들고 들어가고 소유의

무게에 따라 꼬부랑꼬부랑 허리 굽히지 않으면 기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U턴 지점을 이미 예전에 돌아 나의 시발점이자 소실점인 본향을 눈앞에 두고서야

겨우 그게 보였다.



★ 속삭임


마나님이 툇마루에 나앉은 것은 밖에서 나는 어떤 기척 때문이었다. 분명히 소리도

아닌 것이 냄새도 아닌 것이 불러낸 것 같은데 밖은 텅 비어 있었다.

겨우내 방 속 깊이 들어오던 햇빛이 창호지 문밖으로 밀려나면서 툇마루에서 맹렬히

꼼지락대고 있을 뿐, 스멀스멀 살갗을 간질이던 기척은 바로 저거였구나.

봄기운이었다.


아직은 겨울 나무 티를 못 벗은 마당의 감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가지 끝에는 봄볕이

노니고 있다. 어디선가 한 떼의 굴뚝새가 날아와 살구나무 가지에 앉아서 밀어처럼

작은 목소리로 지저귄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지금 왕성하게 교감하고 있다.


봄이 얼마나 잔인한 계절이라는 걸 노부부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봄엔 늘 배고팠다.

그들이 어렸을 적에도 그러하였고 젊었을 적에도 그러하였다. 지금 그들은 끼니 걱정

안 한 지 오래되었고 시골에 살지만 텔레비전도 있고 세탁기도 있고 보일러도 있다.

그러나 편리한 것들 때문에 나무와 풀과 새와 나비와 교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잃은 줄도 모르게 잃었던 것을 봄기운이 불러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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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 한 권을 함께 보았습니다.


작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2011년 소천때까지 구리 아치울의 노란집에서 만년의 집필을

계속 하였나봅니다. 남편을 여의고, 25세의 아들까지 사고로 잃자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다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극복하고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수록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는데

오늘 이 산문들을 보면 세월의 흐름 속에 성숙되어져간 작가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난다

하겠습니다.


첫 번째 글을 보면 봄이 왔지만 골짜기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보이고, 양지에는 봄꽃이

질펀하게 피었다 합니다. 지금의 계절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하겠네요.

70년을 넘게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신기한 현대의 이기들을 접하였지만 이러한 것들은

금방 익숙해지고 심드렁해지는데, 쑥, 냉이, 봄꽃이 피는 봄은 어김없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고 합니다. 이게 진정 봄의 매력이자 마력이겠지요.


두 번째 글은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것을 U턴을 하는 것에 비유를 합니다.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올 때 보는 것처럼, 인생의 젊은 전반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후반에는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작고 평범한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너무 많이 가지고, 너무 많이 욕심을 부려서는 천국문을 들어갈 수 없고 낮아지고 겸손

해질 때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지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 글도 봄이야기인데,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나뭇가지에 이미 봄은 와서

맴돌고 있고 새들도 와서 봄이 왔음을 지저귀고 있습니다.

하지만 봄은 과거에 지독하게도 배고픈 계절이었고 그래서 늘 잔인한 계절이었다고

하지요. 과거에 불편하지만 자연과 가까이 있었던 시절에 모든 만물의 생동감은

인간에게도 통하여 그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점차 시멘트,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에

서는 봄의 기척을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봄볕 등에 지고”라는 작가의 산문 제목을 보니 떠오르는 시가 있네요.

만해 한용운의 “춘서(春書)”가 바로 그것입니다.

시를 한번 잘 음미하시면서 냉이향과 같은 봄의 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춘 서 (春 書)

한 용 운 (1879-1944)


따슨 빛 등에 지고

유마경을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여 꽃밑 글자

읽어 무삼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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