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심리학>
“우리는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가”
강 일 송
오늘은 인간의 뿌리깊은 본성으로서 “복수”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스티븐 파인먼 교수는 영국 배스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로, 오랫동안 조직
행동 분야에서 탁월한 명성을 쌓아왔다 합니다. 런던대학교에서 직업심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셰필드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저서로는 <비난의 역설>, <노동;짧은 개요>, <직장에서의 감정에 대한 이해>, <사회적
업무 스트레스와 중재> 등이 있습니다.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현재까지 문화, 종교, 정치, 사회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표출되고 내재되어 있는 복수에 관한 이야기가 그득한 책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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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하는 비비원숭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외곽, 메마른 황야의 동굴과 바위틈마다 비비원숭이들이 강렬한
태양을 피해 무리 지어 숨어서 그들 영역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한때 이들은 같은
영역을 점하고 있는 인간들을 몹시 경계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점 대담해졌고, 먹을 것
과 마실 물을 찾아 농장과 인가를 자주 습격했다.
그러다 2000년 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한 주민이 도로를 달리다가 뜻하지 않게 도로변의
비비원숭이 한 마리를 치어 죽였다. 사흘 후 같은 길로 돌아오던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는데, 그의 차를 알아본 비비 한 마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자,
일제히 매복해 있던 비비원숭이들이 돌멩이 세례를 퍼부었고 차의 앞 유리는 갈가리
찢겼다. 혼비백산한 운전자는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영장류학자들은 이를 ‘영장류 공통의 복수 시스템’이라 부르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장류, 특히 침팬지와 마카크는 출중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며 적절한 기회가 올 때까지 보복을 미룰 줄도 안다. 서열과 위계를 반하는 행위를
한 침팬지는 대개 몰매를 통해 벌한다.
★ 인간에서의 복수
복수가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더 나은 세상’, 이렇게 말할 사람이 많으리라.
하지만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가 부당 행위에 대해 느끼는 복수 충동은 인간의 욕구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고 일차적인 욕구 중 하나다.
복수는 개인의 안녕, 영도, 긍지, 명예, 자존감, 신분, 역할을 위협하는 것들을
억제한다. 앙갚음은 부당 행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수는 어지러진 평형과 서열을 재설정한다.
복수는 개인 간 암투, 집단의 내분, 노사 분쟁, 내전과 국제전에 존재하는 암묵적
관습법이다. 자아와 공동체의 궁극적 자기 진술이다. 타인의 침범을 막는 방어
수단이자 경고조치다. 날것 그대로 정의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잠재적 복수자(avenger)다. 다만 우리의 머리는 다른 말을 한다.
우리는 개인 차원의 복수는 억제해야 하며, ‘정부 당국’ 다시 말해 ‘공권력’에
위임해야 한다고 배운다. 우리 사회에는 복수를 제한하기 위한, 그래서 통제불능의
복수 활극 사태를 막기 위한 사법 제도가 존재한다.
(물론 사법 정의가 경제적 계층, 피부색, 인종, 젠더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경우에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 복수의 끝은 어디인가?
복수는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가능하다.
짧게 치고 빠질 수도 있고, 영영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비통과 단죄라는 반복적
테마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변주된다.
복수의 대상은 종족이나 국가, 가문과 정파, 학교와 직장, 개인과 집단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불의를 인지한 피해자는 복수심을 갖기 마련이고, 이 감정은 먼 옛날부터
인간 사회에 정서적 유전자로 대를 이어 전해졌다. 따라서 이제는 복수심을 가지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수의 실행 여부와 방법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회나 문화에 따라 복수의 허용치와 허락된 복수의 방법이 다르다.
혹자는 복수를 헛된 것으로 본다. 복수한다고 이미 일어난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다. 바로 복수심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이미 죽은 사람이 살아오지는 않지만 살인자에게
고통으로 되갚고 싶은 격렬한 욕망이 끓어오른다. 응징 욕구는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박고 있고, 도덕과 이성이 만든 제약들을 우회하는 길을 끝없이 찾는다.
복수는 해악으로 치부되지만 백해무익하다고는 할 수 없다. 때로 복수는 사회적
부정을 노출시키고 바로잡는 순기능도 한다. 불평등한 억압 관계에서도 중요한
저항의 경로가 된다. 또한 특정 경쟁 상황에서는 보복이 오히려 칭송받고 환호받기도
한다. 예컨대 비즈니스와 스포츠 세계에서는 패배자에게 반격을 권장하고, 예상을
뒤엎는 역전을 응원한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통제 불능의 복수다. 법, 도덕률, 종교 교리들이
그것을 막기 위해 탄생하고 발전했다. 증오를 누르는 자제력과 신중함을 드높이는
문화도 그래서 생겼다. 종교마다 용서를 최고의 미덕으로 꼽고, 심리학에서도
용서를 강조한다.
하지만 용서를 강조하는 윤리에는 함정이 있다. 바로 불필요한 죄책감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자가 한 짓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데 사람들은 계속 용서해야 한다고
말해요.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무조건적 용서-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용서하는 것 - 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정신분석가 앨리스 밀러는 학대피해자들을 광범위하게 연구한 후 결론을 내린다.
무조건적 용서는 “커튼을 쳐서 현실을 가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커튼 뒤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 수 없으니깐요”
피해자에 따라서는 원통한 마음을 친사회적 활동으로 풀면서 용서와 복수를 모두 비껴
가기도 한다. 즉, 본인이 당한 학대를 유발하는 사회적 인자를 없애고 사회 여건을
바꾸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인간 문명은 반(反)복수주의라는 허울을 덮어쓰고 있다. 국가들이 전쟁을 벌이지 못해
전쟁이 일어날 곳에 무기를 팔지 못해 안달인 오늘날, 그 허울은 어느 때보다 너덜너덜
해보인다. 복수라는 램프의 요정이 일단 세상에 나오면 그 괴물을 다시 호리병 속에
넣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과거 중세에 전쟁과 단죄의 이름으로 벌어졌던 살육과 복수를
두렵고 역겹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분쟁은 그보다 덜할까? 오히려 비참함의 규모가 몰라보게 커졌다.
보복 공격은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초토화한다. 인류 앞의 중대한 도전은
지금도 여전히 같다. 그건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 다리를 놓고, 우리를 하나로 묶을
측은지심을 살릴 더 좋은 방법들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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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흥미로운 주제로 "복수"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자성어가 "와신상담(臥薪嘗膽)"이었습니다.
월왕 구천과 오왕 합려의 싸움은 합려가 죽고 그 아들 부차에 이르기까지 연속
됩니다. 서로 복수에 복수를 거듭하는 과거의 이야기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계속됩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비비원숭이 사례를 본다면 이는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침팬지 등 영장류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본성이고, 아주 오래전부터
복수가 뿌리깊이 본성에 자리잡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복수는 그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다음에 그와 같이 부당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긍정적 역할이 있고, 조직의 안정을 꾀하는 역할이 있지만 이것이
과하여 통제 불능의 사태가 되는 것은 가장 나쁜 결과를 초래하므로 예부터
사법, 도덕, 윤리, 종교 등이 이를 조정하는 일을 해 왔던 것입니다.
많은 사회 체제에서 도덕, 윤리적으로 용서를 권장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가해자
가 진정한 반성이나 회개를 하지 않았는데 이를 용서하기를 권하는 데서 맞는
문제라고 합니다. 우리 영화인 "밀양(2007)"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요.
종교를 가진 후 자기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해주러 갔던 전도연은 이미
스스로 신에게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당사자인 내가 용서를 안했는데
어떻게 먼저 용서받을 수 있느냐고 절규합니다.
이 영화는 당시 용서에 관한 많은 이슈를 만들어냈었지요.
저자는 이렇게 뿌리깊은 분노가 현대에 와서는 더욱 더 큰 규모로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은 전쟁 무기를 팔기에 여념이 없고,
국지전이 벌어지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나진 화력으로 인해 모든 것이
초토화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인류를 비롯한 생명체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유전자에 각인이 되고 유지
되어 왔던 복수라는 기제가 이제는 자칫 전 인류와 지구의 파멸을 가져오는
충돌의 방아쇠 역할을 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상황입니다.
다시 한번 인류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제력과 통제력을 가질 수 있도록
기원하고 고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