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몇 편 함께 보며>
강 일 송
오늘은 시(詩) 몇 편을 보고자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용택 시인이 엮은 시모음집
“시가 내게로 왔다” 5권을 다시 보다가 한 시가 눈에 들어왔고, 이 시를 모티브로
이전에 알던 두 시를 연결하여 감상하여 봅니다.
“봄빛이 몇 날이랴”라는 시를 먼저 한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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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이 몇 날이랴
설 장 수(1341-1399)
봄빛이 몇날이랴?
복사꽃이 활짝 폈다.
넘노는 나비 한 쌍 무심히 지나가다
꽃잎에 입 맞추고는 날아갔단 다시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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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쓴 시인은 고려말 문신인 운재(芸齋) 설장수입니다. 그는 특이하게도
위구르 사람으로 아버지 때 고려로 귀화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경주 설씨의 시조이기도
한 그는 뛰어난 문인이기도 하였다 합니다.
이 시를 한번 보자면 너무나 화사하고 좋은 봄날,
이쁜 복사꽃까지 활짝 피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한 날이군요.
나비가 쌍으로 복사꽃 위를 날아다니며 왔다갔다 노닐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봄날, 시인은 문득 이런 봄빛이 몇 날이나 지속될까 생각합니다.
본디 좋은 날은 빨리 지나가고, 안 좋고 힘든 날은 길게 느껴지는 법이지요.
이 시를 읽으니,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의 시가 함께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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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강 이 수 (曲 江 二 首)
두 보 (杜 甫, 712~770)
꽃잎 한 점 질 때마다 봄날이 줄어들거늘
바람에 만 점 잎이 흩날리니 시름겹도다
막 지려는 꽃이 눈에 스치는 것 잠시 바라보고
몸 상한다 하여 술 마시는 일 마다하지 않으리
강가 작은 집에 물총새 둥지 틀고
동산 옆 높다란 기린 석상 누워있네
천천히 물리를 헤아리며 마음껏 즐겨야지
무엇하러 헛된 명예에 이 몸을 얽어매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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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는 이백과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일컬어지지요.
그의 대표시 중 하나인 “곡강이수”에서 두보는 말하기를
"일편화비감각춘 一片花飛減却春" 이라 하였습니다.
꽃잎 한 점 질 때마다 봄날이 줄어든다는 표현이지요. 벚꽃이 절정을 이루다가
하룻밤의 비바람에 순식간에 떨어져버리고 마는 풍경을 볼 때의
아쉬움은 그지 없습니다. 이를 꽃잎 한 점 질 때마다 봄날이 줄어든다고
하는 두보의 표현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일본의 짧은 시 형식인 하이쿠 한 편을 더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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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생
그 사이에 피어난
벚꽃이어라
- 바 쇼(1644-1694)-
이 시는 일본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인 바쇼가 천하 유랑 중, 어릴 때
친구 도호를 19년 만에 만나고 지은 시라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
그 각각 살아온 인생이 마주할 때 화려한 벚꽃이 핍니다.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둘은 금방 헤어져야 했고, 추억은 아름답게
벚꽃처럼 피었다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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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려말, 조선초 문인인 설장수의 한 시의 모티브를 가지고 한중일
세 나라의 봄꽃, 그리고 그 화려한 날의 유한함에 대한 시를 연결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1300년전의 당나라 시인 두보, 600년 전의 고려말 시인 설장수, 400년 전의
일본의 시인 바쇼는 시공을 초월하여 너무나 좋은 봄날의 화려함, 아름다운
봄꽃 등이 순식간에 지나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긴 지구의 역사,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한 개인의 삶은 너무나 짧아서 마치
번개 한번 치면 지나가는 시간이라고까지 시인들은 표현합니다.
생명체의 유한함, 인간 개개인의 불완전성 등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였고
이를 위 3명의 시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지요.
인간의 위대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한함, 불완전함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 삶에 당당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