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로 여는 아침> 성범중
강 일 송
오늘은 시(詩) 몇 편을 보고자 합니다. 사상 최고의 폭염에 연일 지쳐가는 하루하루를
모두 보내고 있으시지요? 아무리 어둠이 깊어도 새벽은 오듯이, 계절의 순리대로 곧
이 더위도 고개를 숙이고 자연의 흐름에 따르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책은 한시를 모은 책으로 저자인 성범중 교수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한국 한문학으로 석박사를 취득하였습니다.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으며 한시와 관련된 다양한 책을 저술한 학자입니다.
저자가 모은 한시 중 가슴에 닿는 시 몇 편을 개인적 소감으로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시는 요즘 날씨와도 연관이 있는 시인데 한번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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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사람들은 전례가 없는 더위라고 말하는데
눈앞의 일을 보며 생각하면 또한 그런 듯하네.
본디 보통사람의 생각은 지난 일을 잘 잊지만
하늘의 마음은 공평한데 어찌 치우침을 용납하랴?
-- 이익(1681-1763)
이 시를 보면 과거 수백 년 전에도 한여름 무더위가 오면 지금처럼 전례가 없는
더위라고 말하였나봅니다. 현대와 같이 기상청이 있어 더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었기에 더더욱 주관적인 느낌이 더했으리라 생각이 되지요.
성호 이익 선생은 이런 현상을 보고 보통 사람들의 망각을 잘하는 행태를 언급하고
하늘의 마음, 즉 자연의 이치는 늘 비슷하였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지구 온난화 현상을 알았더라면 좀 더 다른 말을 하였을 것이고 이 시의
내용도 좀 바뀌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여하튼, 사상 최고의 폭염 속에 다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다음 시도 한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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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구름은 아득하고 사방의 산은 비었는데
낙엽은 소리 없이 땅에 가득히 붉었네.
시내 다리에 말 세우고 돌아갈 길 묻나니
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줄을 모르네.
-- 정도전(1342-1398)
이번 시는 고려말, 조선초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정도전의 시입니다. 이 시를 쓴 시기는
고려말 우왕 시기에 유배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유배된 어려운 때
가을 구름은 자기 마음과 같이 아득하고 산은 비어있습니다. 붉은 낙엽은 떨어져 땅에
가득한데, 너무 깊은 골짜기를 들어온 탓에 돌아갈 길을 묻고 있는 풍경입니다.
이러한 풍경 속에 있는 자신을 객관화하여 마치 한 폭의 그림에 자신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필력은 그가 뛰어난 정치가일 뿐아니라 훌륭한 시인이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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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산에는 낙엽이 지고 비가 쓸쓸히 내리는데
상국의 풍류가 이처럼 적적하네
슬프게도 술 한 잔을 다시 권하기 어려우니
옛날 노래가 바로 오늘 아침 일 그대로이네.
-- 권 필(1569-1612) 정송강의 묘에 들렀더니 느낌이 있어서
조선중기의 명문장가이자 시인인 권필의 시라고 합니다. 송강 정철의 사후 그가 그리워
묘소를 찾은 뒤 지은 시로 임진왜란을 겪고 사회가 어려울 시기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시의 핵심구가 “옛날 노래가 바로 오늘 아침 일 그대로이네.”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흔히 방금 일어난 일이 예전에 마치 이미 겪은 듯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고, 정신의학에서 이를 “데쟈뷰”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 시에서는 과거의
일과 현재의 일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겠습니다.
큰 시각에서 본다면 사실 100년 전, 1000년 전의 사람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과거의 노래에 담긴 내용이 오늘 아침에도 그대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
통시적으로 흐르는 삶의 내용, 흔적은 비슷함을 시인은 통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편 더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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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뿔 같은 세상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불빛 속에 이 몸을 붙였네.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또 즐겨야 하니
입을 벌려 웃지 않으면 곧 바보인 것을
-- 백거이(772-846)
마지막 시는 당나라 때 뛰어난 시인 백거이의 시를 골라보았습니다. 이 시는 아주 유명하여
이미 들어본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백과 두보를 배출한 당나라 시기는 중국문화사
에서도 가장 번성한 시기였고, 당시(唐詩) 또한 많이 쓰여지고 읽혀졌었지요.
시인은 온 세상을 달팽이 뿔 같다고 표현합니다. 달팽이의 조그만 몸통위에 얹힌
작은 뿔 위 같은 곳에서 아웅다웅 서로 더 가지겠다고 더 잘났다고 싸우는 인간들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마치 장자의 장대한 스케일을 보는 듯 하지요.
시인은 어차피 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인생이라면 가난하든 부하든, 나이가 많든 적든,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입을 벌려 웃고 즐길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합니다.
오늘도 더운 날씨지만 마음만은 여유를 가지고, 웃음을 머금고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하루가 되어 보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