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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Feb 26. 2019

<B급 세계사> (1)

“보복의 악순환, 제2차 세계대전”

<B급 세계사> (1)

“보복의 악순환, 제2차 세계대전”


                                               강 일 송


오늘은 세계사 이야기를 담은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통세계사”로 상당한 인기와 관심을 모았던 작가로 이번 책에서는 우리가 흔히

접하지 못했던 역사의 이면, 사소한 측면을 부각한 이야기를 중점으로 “B급 세계사”라

명명하면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자인 김상훈작가는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을 살려 역사의 현장을 취재하는 형식의

역사서 “통 역사 신문”,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사 인물이야기”, “교과서가 쉬워지는

통 한국사 세계사”, “통 세계사” 등을 편찬했습니다.


오늘은 그중 2차 세계대전과 히틀러의 등장까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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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복의 악순환, 히틀러라는 괴물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 정치적, 경제적 보복에 의한 세계사의 이야기를 보겠다.

1920년대 프랑스와 독일 이야기다. 프랑스는 가혹하게 독일틀 채찍질했다.

‘똘레랑스(관용)’ 정신이 살아있다는 프랑스가 대체 왜 그랬을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9년으로 가보자.

그해 1월, 프랑스 파리에는 27개국 대표가 모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질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 파리 강화 회의는 5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6월, 연합국

대표들은 전쟁을 일으킨 주범 독일과 베르샤유 조약을 체결했다. 독일 국민은 분노

했다. 조약의 내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혹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게 전쟁의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독일인들은 이 조약을

복수극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 조약을 ‘베르사유의 명령’이라고 했다.


이 조약에 따라 독일은 해외 식민지를 모두 내놓았다. 알자스,로렌 지방은 프랑스가

가져갔다. 영토를 조금씩 떼어 덴마크, 벨기에, 폴란드에 넘겼다. 빚잔치를 하듯이

영토를 떼어주다 보니 독일은 종전 영토의 13퍼센트, 인구의 10퍼센트를 잃었다.

프랑스와 영국 등은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싹을 잘랐다.

잠수함, 전투기와 같은 첨단 무기를 다시는 보유하지 못하게 했다. 유일하게 육군만

허용했고 그마저도 병력이 10만 명을 넘지 못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거기다가 132억 금 마르크의 전쟁 배상금을 내라고 했다. 달러로 환산하면 약 3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4조다. 100여 년 전에 4조원이었으니 현재 가치

로는 수백 조원이다. 모든 독일 사람들이 대대손손 죽어라 일만 해도 갚기

힘든 금액이다. 특히 프랑스가 강경했다.


독일 경제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다. 물가는 하늘 높이 치솟았다. 독일 화폐인

마르크화의 가치는 폭락했다. 독일 정부는 영국, 프랑스 등에 ‘배상금 지불을 5

년만 늦추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몽니를 부렸다. 배상금을 갚지

못하면 루르를 점령하겠다고 했다. 1922년 말 독일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프랑스가 루르를 지목한 이유가 있는데, 루르는 독일의 최대 산업 도시이자

탄광 도시였다. 프랑스는 독일이 배상금을 갚지 못하면 루르의 탄광 지대에서

지하자원이라도 퍼갈 작정이었다. 사실 이 무렵 프랑스 경제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


1923년 프랑스는 엄포로만 끝나지 않고 5개 사단을 루르 지방에 투입했고

벨기에도 2개 사단을 보냈다. 영국과 이탈리아 등 다른 승전국들은 이 군사

행동에 동참하지 않았다. 독일인들은 점령군에 맞섰다. 공무원들은 협력

하지 않았고, 시민들은 불복종 운동을 벌였다.


독일은 프랑스의 점령후에 4%이던 실업률이 20%로 급증했고, 프랑스는 부메랑을

맞았다. 국제 사회의 비난이 커지고 미국 및 영국으로부터 철수하라는 압력이

커졌다. 루르의 점령 효과도 미약했다. 프랑스 경제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2년 만인 1925년, 프랑스는 결국 루르에서 철수했는데, 이 기간에 많은 수의

독일인이 죽었고 추방되었다. 독일인들은 이를 갈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독일인들은 영웅이 나타나길 학수고대했다.

히틀러가 등장했다. 히틀러는 위대한 독일 제국의 건설을 약속했고, 독일 국민들은

최면에 빠지듯이 히틀러와 나치당에 빠져들었다.


만약 프랑스가 루르 지방을 점령하지 않았더라면, 그 대신 관용의 정신을 독일에

베풀었더라면, 그래서 독일 경제가 추락하지 않았더라면...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정말 이랬더라면 히틀러의 광기를 독일 국민이 거부

했을 확률이 높다. 그랬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시 시대가 미쳐 돌아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광기는 이토록 역사를

황폐하게 만든다. 어쩌면 2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도 있었는데.

안타까운 역사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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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들과 독일 사이에 이루어진 베르사유 조약 이후

역사의 장면들을 함께 보았습니다.


역사는 항상 “If”라는 가정을 달면 어떤 상황이 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잘 일으킵니다.

만일 알렉산더가 젊은 나이에 병사하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만일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유럽이 몽골의 황제가 죽어서 몽골의 바투 장군이 몽골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유럽은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160여명의 기병을 이끌고 잉카제국과 싸우던 피사로가 잉카제국의 수만 군대에

졌다면 지금의 남미는 어떻게 되었을까. 등등


오늘 저자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패전국으로서 막대한 배상금을 지게 되고,

루르를 침략한 역사가, 만일 프랑스가 자신들의 똘레랑스를 발휘

했더라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내었던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지

않았을까 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대체로 승자의 시각으로 기록이 되고, 패자는 말이 없습니다.

약육강식의 자연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어 수많은 약자들은 역사의 장에서 사라졌지요.

하지만 독일은 잿더미에서 다시 강대국으로 일어나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엄청난 학살과 피해를 입혔습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과거를 되돌아 보면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에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

역사 공부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하겠습니다.


다음에 다른 이야기로 이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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