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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Feb 28. 2019

<동시에 발전한 동서양 철학> (2)

<동시에 발전한 동서양 철학> (2)

“B급 세계사 中”


                                             강 일 송


오늘은 세계사 이야기책 <B급 세계사>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자는 “통세계사”로 상당한 인기와 관심을 모았던 작가로 이번 책에서는 우리가 흔히

접하지 못했던 역사의 이면, 사소한 측면을 부각한 이야기를 중점으로 “B급 세계사”라

명명하면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자인 김상훈작가는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을 살려 역사의 현장을 취재하는 형식의

역사서 “통 역사 신문”,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사 인물이야기”, “교과서가 쉬워지는

통 한국사 세계사”, “통 세계사” 등을 편찬했습니다.


오늘은 전혀 교류가 없었던 동서양이 거의 동시대에 발전이 이루어진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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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같은 시기에 발전한 동서양 철학


우연 같지 않은 우연은 세계사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발견된다.

물리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는데도 똑같은 일이 지구의 이쪽과 저쪽에서 동시에 일어

나기도 한다.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4세기 사이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의 뿌리가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 동양철학의 시작


동양철학의 고향을 굳이 따지면 중국이다. 서양철학의 고향은 폴리스라 부르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이다. 오늘날 자연 과학의 시초도 이 폴리스에서 만들어졌고 발달했다.

중국 이야기부터 해보자. 이 무렵 중국은 춘추 전국 시대로, 여러 나라가 천하를 다투고

있었다. 각 나라의 왕은 부국강병을 도모하기 위해 사상가를 우대했다. 다양한 사상이

등장했고 수많은 학파가 활동했다. 그래서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 한다.


유가(儒家)가 두드러졌다. 유가는 공자가 창시했고 맹자와 다른 제자들이 계승했다.

훗날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어 국가 통치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공자 철학의 핵심은 인(仁)과 예(禮)다. 인과 예를 갖춘 정치가 덕치(德治)다.

공자는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면 나라의 질서가 절로 잡힌다고 했다.


맹자도 덕치를 주장했지만 공자와는 뉘앙스가 달랐다. 맹자는 왕이 어짊과 의로움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왕도정치를 말했지만 왕은 백성 위에 있지를 않아 독재자는

몰아낼 수 있다고 했다. 혁명적인 사상이 아닌가.


도가(道家) 사상도 오늘날까지 주목받는 동양철학 중 하나다. 노자가 창시했고 장자가

뒤를 이었다. 도가는 인위적인 것을 배척했다. 자연에 순응하라고 가르쳤다.

이것이 무위(無爲)다. 이 도에 이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無)다.

장자는 노자보다 훨씬 급진적이었다. 장자는 모든 제도를 가치 없다고 여겼다.


전국 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나라는 진(秦)이다. 진은 통치이념으로 법가(法家)

를 받아들였다. 강력한 법과 왕권을 강조했다. 사소한 범죄 행위도 용납하지 않았다.

진은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국가가 되었다. 그래서 얼마 못 가 멸망한 게 아닐까.


묵가(墨家)란 학파도 있었다. 이 학파는 “의로운 전쟁은 없다.”라며 모든 전쟁을

반대했다. 사랑을 강조했다. 지나치게 이상적이었던 탓에 곧 명맥이 끊겼다.

군대와 병법을 연구하는 사상가들은 병가(兵家)라 했는데, “손자병법”을 쓴 손자가

대표적이다.


★ 서양철학의 시작


이제 비슷한 시기의 그리스로 가보자. 가장 먼저 기원전 6세기 무렵 이오니아

지방(현재 터키 서부 해안 지방)의 밀레투스에서 자연 철학이 태동했다.

자연 철학의 시조인 탈레스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다.”라고 했다.

만물의 근원에 대해서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 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

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 피타고라스는 ‘숫자’라 했다.

이들 자연 철학자들은 철학의 주제를 신에서 자연으로 끌어내렸다. 철학의 큰

진전이다. 더불어 이들의 철학은 자연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기원전 5세기에는 철학의 중심지가 아테네로 이동했다. 철학의 주제도 자연에서

인간으로 바뀌었다. 이 시대의 철학자를 소피스트라고 불렀다. 현명한 사람이란

뜻이다. 대표적인 소피스트가 프로타고라스다. 그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말을 남겼다. 사람마다 판단 기준이 다르니 진리도 다르다는 뜻.


소피스트가 대중에 영합한다며 강하게 비판한 철학자가 있다. 바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에 이르러 서양철학은 완벽한 뼈대를 갖추었다. 이어 플라톤과 아리스토

텔레스가 서양 철학을 완성시켰다.


조금 더 보태보자. 이 무렵 페르시아에서는 조로아스터교가 탄생했다. 조로아스터교는

천당과 지옥, 최후의 심판 등의 교리를 내세웠다.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에 큰 영향을

주었다. 현대 종교의 어머니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보태자.

이 시기에 인도에서 불교가 탄생했다. 초기의 불교는 종교보다는 철학에 가까웠다.


★ 역사의 발전


약 300년 사이에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이 동시에 ‘완성’되었다.

우연일까? 아니다. 이 무렵 전 세계는 크고 작은 전쟁에 휩싸여 있었다. 부국강병을

원하는 왕뿐 아니라 혼란을 극복하려는 철학자들도 새로운 사상이 필요했다.

그러니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상과 철학의 발전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역사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동시대적 발전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게 역사가 발전하는 법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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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역사이야기 중 철학이 동시대에 동양과 서양에서 발달하게 되는 과정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기원전 5-6세기 경에는 전혀 서양과 동양이 교류가 있을 수 없었지만 철학의 태동은

같은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저자는 역사에서 이런 예는 아주 많다고 합니다.

교류가 없었던 남미에서도 피라미드가 생기고, 농경이 시작된 것을 보면 인류의 역사

발전 과정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이 되고, 현대에서도 전혀 다른 연구실에서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으로 같은 연구 발표가 되어 노벨상을 함께 받는 경우도 많지요.


어쨌든 동서양이 비슷한 시기에 철학이 태동한 배경에는 불안정한 국가의 상태가

존재합니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수십 개 국가가 서로 경쟁하고 수시로 왕이 바뀌고

많은 사람이 죽어나갑니다. 서양에서도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자주 침략하고

불안의 시대를 살아갔는데, 이런 상황이 철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던 듯합니다.


인류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위기의 상황에서 폭발적인 사고의 확장과 지혜의 증가가

이루어진 것이지요.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서 적응하는 능력이 탁월하지요.


흥미로운 것은 동양철학에서 법가를 받아들였던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의 빠른

멸망인데, 과하게 백성에게 적용한 엄격한 법과 도덕은 오히려 빠른 국가의 붕괴를

일으킨 사실입니다. 인과 예를 가르쳤던 유가는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국가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았고 현대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인과 예를 중시하는 덕치(德治)와 법과 규율, 도덕을 중시하는 법치(法治)의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즉, 중용의 덕이 이루어질 때가 인간의 본성을 조율하는

가장 완벽한 통치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도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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