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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6. 2016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

당시(唐詩)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

                이  백(701-762)

꽃밭 한가운데 술 항아리
함께 할 사람 없어 혼자 기울이네
술잔 들어 밝은 달 청하니
그림자 더불어 셋이 되었구나
저 달은 본시 마실 줄 몰라
한낱 그림자만 나를 따르네
그런대로 달과 그림자 데리고
모처럼 봄밤을 즐겨보리라
내가 노래하면 달은 나를 맴돌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따라 너울
깨어 있을 때는 함께 어울리다가
취한 뒤에는 제각기 흩어지겠지
아무렴 우리끼리 이 우정 길이 맺어
이 다음 은하 저쪽에서 다시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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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두보와 함께 중국 최고의 고전시인으로 불리우는
이백(701-762)의 당시(唐詩) 한 편을 보고자 합니다.
이전에 두보의 “곡강이수”를 한 번 올린 적 있습니다.
“꽃잎 한 점 질 때마다 봄날이 줄어들거늘” 이 구절은 늘
맘속에서 맴도는 구절인데, 오늘은 그와 쌍벽을 이루는 이백
의 시를 하나 소개합니다.

원래 술을 잘 마시지도 즐기지도 않는 성격이지만, 이 시를
보면 때론 이백의 흥취에 한번 따라 빠져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밭에 달은 휘영청 밝게 떠 있습니다.
꽃밭 한가운데 술 항아리까지 있지만 마실 친구가 없네요.
자 이제, 그는 달과 그림자를 데리고 3명이 친구삼아 놀기 시작
합니다. 내가 노래하면 달은 하늘에서 나를 맴돌고, 내가 춤추니
그림자는 따라 춥니다.
나와 자연이 경계가 없어지고 나를 잊는 몰아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얼마나 친구들이 좋은 지 이 다음 세상, 다음 은하에서
조차 우정을 맺자합니다.

시인 “고두헌”은 한번은 운현궁 맞은편 한옥 레스토랑인 “민가다헌”에서 
혼자 “당시선(唐詩選)” 한 권 들고 봄밤의 사치를 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모처럼 여유가 나서 시집 하나 들고 “민가다헌”에서 홀로 와인
한병 주문해 와인 한 모금에 시 한편 읽기를 반복했는데, 이 때 
이백의 이 시를 보고 1300년전 이 시선(詩仙)과 하나가 되었고

“가끔씩 혼자 술을 마실 일이다. 시가 있고, 달빛이 있고 그림자가 
있으니 얼마나 풍요로운가, 세상일에 치여 여유를 잃은 사람에게
이 순간이야말로 은하 저쪽에서 다시 만날 시공의 근본을 깨워주는
꽃밭인 것이다”  라고 읊습니다.

이백의 시와 고두헌시인의 글이 번갈아 맘을 동하게 하여 민가다헌을
찾아 갔었지만 낮에 간 터라 분위기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에 한 번 기회를 더 가지려 하고 있습니다.

항상 바쁘게, 여유없이 사는 현대인의 삶에서 대취하여 정신을 놓는
음주문화보다는 와인 한잔에 시 한수 읊조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와 봄밤의 사치가 우리에게 한번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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