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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Aug 29. 2016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 강

오늘은 세간의 화제를 몰고 왔던 작가 “한강”의 작품 중 시집을 한 권 보려고 합니다.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한 직후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더니 한 코너에 “한강” 작품을 모아 놓고 그의 작품들을 모아놓았더군요.  채식주의자는 병원에서 직원들 전체에게 한 달에 한 권 정해서 주는 다음 달 책으로 결정되어 미루고, 그의 시집을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인 영국의 “맨부커상”을 그가 수상하자 이전에 없던 문학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2007년에 출간된 “채식주의자”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고, 9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그의 수상 소식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의 시집을 먼저 보겠습니다.


그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쓴 소설가 한승원을 아버지로 1970년 태어납니다. 그의 오빠도 소설가로 활동중인 문학 가족입니다.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서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으로 당선되어 작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시를 한 번 보겠습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 강 (1970~)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작가는 첫 시집인 이 책에서 첫 시로 이 작품을 올렸습니다. 수많은 작품들 중 첫 시집의 첫 작품으로 고를 땐 정말 자신의 분신같은 작품이지 않을까요? 일상에서 우린 늘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옵니다. 그리고 그 김을 보고는 무언가가 영원히 지나가버렸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요? 시간이 그렇게 지나갈 가능성이 제일 크지만, 그 시간과 함께 묻어서 갈 추억, 삶의 느낌 등도 함께이겠지요. 하지만 우린 어떤 상황에서도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상이지요. 우리는 어떤 슬픔과 고통이 있어도, 결국은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일상은 곧 밥 맞습니다.




마크 로스코와 나

-- 2월의 죽음


한  강


미리 밝혀둘 것도 없이

마크 로스코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는 1903년 9월 25일에 태어나

1970년 2월 25일에 죽었고

나는 1970년 11월 27일에 태어나

아직 살아 있다

그의 죽음과 내 출생 사이에 그어진

9개월여의 시간을

다만

가끔 생각한다


작업실에 딸린 부엌에서

그가 양쪽 손목을 칼로 긋던 새벽

의 며칠 안팎에

내 부모는 몸을 섞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점 생명이

따뜻한 자궁에 맺혔을 것이다

늦겨울 뉴욕의 묘지에서

그의 몸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신기한 일이 아니라

씁쓸한 일


나는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

점 하나로

언어를 모르고

눈물도 모르며

연붉은 자궁 속에

맺혀 있었을 것이다


죽음과 생명 사이,

벌어진 틈 같은 2월이

버티고

버텨 마침내 아물어갈 무렵


반 녹아 더 차가운 흙 속

그의 손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마크 로스코는 러시아 출신 미국의 추상화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합니다. 주로 여러 개의 직사각형이 캔버스 위에서 수직으로 배열되어 있는 단순 구조를 주로 띱니다. 말기의 스티브 잡스가 그의 그림을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마크 로스코의 단순함에 대한 철학과 그의 단순함에 대한 철학이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라네요. 유대인 이민자로서 출발해 가장 성공한 화가 중 한 명이 되었지만 그는 자살을 합니다.

한강 작가의 글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새어 나옵니다. 그가 태어난 1970년에 마크 로스코는 세상을 떠납니다. 9개월여의 차이가 있으니 마크 로스코가 세상을 떠날 무렵, 그는 어머니의 자궁에 잉태를 하였겠지요. 한 생명이 떠날 무렵, 또 다른 생명은 탄생을 합니다. 죽음과 생명이 한 해에 벌어지고, 그들은 조우하지 못합니다.

아직 채식주의자를 읽지는 못했지만, 그의 작품평을 보면, 육식에 관하여 트라우마가 있는 주인공이 극단적으로 폭력성을 거부하며 채식을 유지하며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라고 하니, 전반적인 작품의 색은 시나 소설이나 비슷합니다.

이 세상은 잠시도 쉴 틈 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탄생을 합니다. 비단 인간 뿐 아니라, 동물이나 곤충의 세계까지 연장한다면 그 규모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밥을 먹듯이, 일상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저자의 큰 의식의 흐름이라 보여집니다.


다음 시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


한  강


어린 새가 날아가는 걸 보았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이 시는 특이하지요? 제목이 본문보다 훨씬 깁니다. 시는 참 다양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소설이나 수필에서 이런 형태는 불가능하겠지요? 이천오년의 오월 삼십일이니, 마침 지금과 비슷한 시기이네요. 이 시기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산란할 겁니다. 푸른 바닷물위에 무한히 쏟아지는 햇빛, 물고기 비늘같이 서늘한 바람은 소금기를 그득 안고 불어 옵니다.

작가는 말을 다 하지 않지만, 이 때 엄청난 삶의 고비가 있었나 봅니다. 그 고비를 계기로, 이제부터의 삶은 덤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거기다가 날아가는 어린 새가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았네요. 나의 슬픔을 어떻게 저 어린 새가 알았을까요? 시는 이렇습니다. 시인은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어도 됩니다.  저 어린 새가 날 위해, 나 때문에 저렇게 울고 가다니.


대체로 한강 작가는 사진을 봐도 여리지만 외유내강형의 사람으로 보입니다. 약해 보이지만 아주 내면은 강한 사람이지요. 또한 이 세상의 폭력과 부조리함으로 인해 처절히 고민하는 영혼으로 보여집니다.


그의 맨부커상 수상은 온 국민의 기쁨이 되었지만, 이런 외부의 상이 아니었어도 우리가 이런 작가를 일찍이 알아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의 작품 중 하나라도 일독하시길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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