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생(人生)>
--“잠들기 전에 먼 길을 가야 하리라, 삶의 고갯길 너머...”
강 일 송
오늘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작가로 늘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속에 살다가 떠난
최인호 작가의 유작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최인호(1945~2013)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고,
서울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3년에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했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잠자는 신화”, “개미의 탑”, “위대한 유산” 등이 있으며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길없는 길”, “상도”, “해신”,
“유림”, “제4의 제국”,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등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2008년 암과의
투병에 들어간 후 2013년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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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그동안 나는 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나는 몸이 건강하여 불의의 교통사고로 짧게 병상에 누웠던 적은 있어도,
병에 걸려 입원 생활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평소에 병원은 나와 상관없는
별도의 공간이며 운이 나쁜 사람들이나 가는 격리된 수용소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5년째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금언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 요즈음이다.
2008년 여름, 나는 드디어 ‘내 차례’를 맞아 암이라는 병을 선고받았다.
나는 혹독한 고통과 희망을 갖는 시기를 거쳤고, 나는 이 의식을 ‘고통의 축제’라고
이름 지었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지금 나에게 불어 닥친 이 태풍이 바로 다름
아닌 죄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천사와
같은 머리 깎은 어린 환자의 눈빛을 보았을 때, 나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면서 절규했다.
그렇다면 주님, 저 아이는 누구의 죄 때문에 아픈 것입니까?
자기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그때 주님은 내 귓가에 속삭이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아이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 순간 비로소 나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독일의 시인 릴케는 “엄숙한 시간”에서 노래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세상 속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밤중에 어디선가 누군가 웃고 있다.
한밤중에 까닭 없이 웃고 있는 사람은 나를 두고 웃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걸어가고 있다.
까닭 없이 걸어가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오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
세상 속에서 까닭 없이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슬퍼하지 마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굶고 너와 함께
고통받고 너와 함께 신음하고 있다. 하늘나라가 너의 것이다.”
★ 아무 것도 청하지 말고, 아무 것도 거절하지 말라.
성 프란체스코 살레시오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내가 그처럼 열심히 기도했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던 것은 잘못 구하고, 잘못 찾고, 잘못 문을 두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기도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음을
구하는 기도’였던 것이다.
★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신춘문예에 입선함으로써 데뷔했는데 벌써 50년이 되었다.
그동안 명색이 작가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지냈음이 문득 느껴져 부끄럽다.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한다.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어서 어서 꽃이 피는 춘삼월이 왔으면 좋겠다.
혹여나 이 책을 읽다가 공감을 느끼면 마음속으로 따뜻한 숨결을 보내주셨으면 한다.
그 숨결들이 모여 내 가슴에 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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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시대의 인기 작가이자 세련된 이미지의 멋진 작가였던 최인호 작가
의 유작을 함께 보았습니다.
작가는 평생을 건강하게 지냈고 병원은 운없는 사람이나 특이한 사람만이 가는
곳이라고 여기며 지냈는데, 문득 암이라는 존재를 마주하게 됩니다.
재발을 거치면서 지독히도 힘든 항암치료를 거듭하였고, 그는 절규하고 기도하고
종교를 통해 신에게 다가갑니다.
시인 릴케의 말처럼 지금도 이 시간 누군가는 고통에 울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기쁨에 웃고 있을 것입니다. 가족의 기대 속에 새로운 아기가 태어날 것이고,
누군가는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돌아갈 것이지요.
그는 평생 잘나가는 작가로 성공하며 살았고, 50년이 지나 그는 작가랍시고 거들
먹거리고 우쭐하며 살았던 것을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합니다.
이 책을 쓴 후 그는 얼마 되지 않아 소천하게 됩니다. 마지막 글에 그의 마음이
녹아 있습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어서 사람들의 따뜻한 숨결을 그리워
합니다.
그가 소천한지 수 년이 지났지만 문득 법정스님과 따뜻한 교류를 하던 그가
그립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아무 것도 청하지 않고,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는" 단계를 안다는 것은 삶의 진한 맛과 향을 다 본 이후의 경지라는 것을
말하고 있겠지요.
아무 것도 청하지 않고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으며, 나 이외의 존재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루하루를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