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집
-- “다가오는 구나”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
강 일 송
오늘은 우리 시대의 대표 소설가 중 한 명인 김훈 작가의 새로운 산문집 한 권을
보려고 합니다.
이전에도 그의 글 중 <칼의 노래>와 <라면을 끓이며> 두 권을 소개한 적이 있었지요.
김훈(1948~)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아버지 김광주(1910-1973)
의 3남이었습니다. 그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후 영문학의 낭만주의에
심취하여 다시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들어갔고 아버지의 사망후 경제적 곤란이 오면서
스스로 대학을 중퇴하고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기자 생활을 합니다.
문단의 데뷔는 늦어 47세인 1994년 <문학동네> 창간호에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발표
하며 데뷔하였고,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공무도하>,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라면을 끓이며> 등 다수가 있습니다.
타고난 글쟁이인 그의 죽음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깃든 글 하나를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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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오는 구나
나이가 드니까 문상 갈 일이 잦다. 20년 전쯤에는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의 빈소에
문상했는데 10년 전쯤에는 형뻘, 이제는 70살 넘은 내 또래 친구들, 동기생들이
죽어서 부고가 날아온다.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데, 태어난 순서대로 가는 게 아니고 나중에 난 사람이 먼저 가는 수가
흔히 있어서 가는 데는 차례가 없다. 어쨌거나 다가온다.
친구 부모의 빈소에 갈 때보다 친구의 빈소에 갈 때가 더 힘들다.
죽음은 더 절실하고 절박하게 다가와 있다. 친구의 빈소에 가면 친구의 아들이 상주가
되어 절을 하고 문상객을 맞는데, 이 아들에게 해줄 위로의 말을 찾기가 어렵다.
자네 몇 살인가? 서른여섯입니다. 자넨 그래도 복이 많은 거야. 난 스물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어.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로 대충 얼버무리고, 어깨도 두들겨주고
나서 식당으로 가 다른 문상객들과 마주 앉는다.
동기생들이 10여 명 둘러앉아서 육개장으로 저녁을 먹고 나서 소주를 마신다.
안주는 돼지머리, 도토리묵, 홍어(사실은 가오리), 멸치조림인데 장례식장마다 똑같다.
친구들은 세상잡사를 이야기하거나 고스톱을 친다.
술에 취하면, - 야, 너네들, 나 죽으면 부의금 얼마씩 가져올 거야?
십만 원 아래는 오지마. - 야, 죽은 놈이 돈 세냐? 이런 추잡한 소리를 하면서
시시덕거리다가, - 야, 난 육군 상병 달고 GOP 눈구덩이 속에서 보초설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 그때 전보 받고 일주일 휴가 가는데, 다들 나를 부러워했어.
휴가 간다고..... 올 때 빵 좀 사오라고.
밤이 길어지자 몇 명은 돌아갔고 고스톱 판에서 다 털린 사람들은 술자리로 옮겨온다.
술판이 커지면 말들도 많아지는데,
증권 시세, 부동산 동향, 새로 개장한 골프장, 취직한 자식들의 연봉 비교, 새로 나온
스마트폰의 성능 비교, 임플란트 잘하는 치과, 치매, 당뇨, 고혈압, 뇌졸중, 전립선,
불면증, 변비, 골다공증.....
을 말하다가 다시 이야기를 바꾸어 여당을 욕하고 야당을 욕하고 진보를 욕하고
보수를 욕하고 김정은을 욕하고 트럼프를 욕하고 마누라를 흉본다.
여러 빈소에서 여러 죽음을 조문하면서도 나는 죽음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다.
죽음은 경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는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죽은 자들의 죽음에
개입할 수 없고, 죽은 자들은 죽지 않은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줄 수가 없다.
나는 모든 죽은 자들이 남처럼 느껴진다.
살아서도 모르고 죽어서도 모르니 사람은 대체 무엇을 아는가.
날이 저물고 밤이 오듯이, 구름이 모이고 비가 오듯이, 바람이 불고 잎이 지듯이
죽음은 자연현상이라서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그런 보편적 운명의 질서가 개별적 죽음을 위로할 수 없다.
문상 온 친구들이 그렇게 고스톱 치고 흰소리해대는 것도 그 위로할 수 없는
운명을 외면하려는 몸짓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문상의 자리에서 마구 떠들어
대던 친구들의 소란을 나는 미워하지 않는다.
★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
너무 늦기는 했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자신을 옥죄던 자의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흐리멍덩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이것은 늙기의 기쁨이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 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날이 저물어서 빛이 물러서고
시간의 밀도가 엷어지는 저녁 무렵의 자유는 서늘하다. 이 시간들은 내가 사는
동네, 일산 한강 하구의 썰물과도 같다.
이 흐린 시야 속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연히 드러난다.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 소아과 병원이 생겼다. 소아과는 3층이고, 1층은 커피숍이다.
나는 산책길에 이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신다. 창밖을 내다보면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가는 젊은 어머니들을 볼 수 있다.
젊은 엄마들은 아픈 아이를 안고 걸어가면서 아이 볼에 쉴새없이 뽀뽀를 해준다.
이 뽀뽀는 의학적으로 효과가 있어 보인다. 젊은 엄마들은 입술로 아이의 병을
덮어준다. 아이는 포대기에 싸여 있는데, 아프지만 엄마가 있으니까 불안한
기색이 없다.
아이가 아프고 젊은 엄마가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누항(陋巷)의 일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것을 알기 위해서 나는 70살까지 산 것이다. 이것을 알았으니 70년 세월은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누항; 1.좁고 지저분하며 더러운 거리 2. 자기가 사는 거리나 동네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
병이 다 나은 아이들은 놀이터에 나와서 논다. 아이들은 걸어갈 때도 춤추듯이 걷는다.
어떤 아이들은 옆으로 뛴다. 아이들의 생명은 리듬과 율동에 실려 있다.
그 생명의 힘이 몸의 기쁨으로 표출되면서, 아이들은 걸을 때도 춤춘다.
나이를 먹으니까 나 자신이 풀어져서 세상 혹으로 흘러든다. 이 와해를 괴로움이 아니라
평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온전히 늙어간다.
새로운 세상을 겨우 찾아낸다.
나는 말하기보다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고 한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대며 중언부언하는 자들을 멀리하려 한다.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 하려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
한동안 뜸했는데, 날이 갑자기 추워지니까 부고 올 때가 되었다.
문상객들은 또 술 마시고 고스톱 치고 마구 떠들어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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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시대 글의 장인, 연금술사라고 표현하고 싶은 김훈 작가의 새로운
산문집을 함께 보았습니다.
저자는 1948년생으로 이제 70을 훌쩍 넘어 망팔(望八)이라고 스스로 이야기를
하네요. 그의 아버지는 김구선생, 윤봉길의사와도 교류를 할 정도로 유명했던
소설가이자 언론인이었다 합니다. 글을 쓰는 유전자가 아마 태어날 때부터
그에게 있었지만 등단은 40대에 이르러 뒤늦게 하게 됩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나이듦의 철학, 지혜, 사유방식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아직도 연필로 글을 쓰는데, 그에게는 연필은 밥벌이의
도구이고, 글자는 그의 실핏줄이며, 글을 쓸 때의 연필은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와도 같다고 기가 막힌 비유를 합니다.
또한 책의 구성을 3개의 부로 나누어 정리를 했는데, 각 부의 제목이 역시나
김훈답습니다. 1부 - 연필은 나의 삽이다. 2부 -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3부 - 연필은 짧아지고 가루는 쌓인다.
자신의 작가 인생과 언론인 인생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 그가 부럽습
니다.
작가는 우선 장례식장 풍경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문상갈 일이 많아지지요. 처음에는 아버지뻘, 다음에는 형님뻘, 이제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니 스스로도 "다가오는 구나"라고 말합니다.
사실 죽음은 모든 생명체는 누구나 맞이할 현상이지만, 쉽게 이야기를 꺼내고
편하게 말할 주제는 못되지요. 저자가 말했듯이, 죽음은 경험되지 않고 전수
되지 않으며, 살아있는 자는 죽은자의 죽음에 개입할 수 없고, 죽은 자들도
남은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할 길이 없으니, 인간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죽음에
대해서 도대체 무엇을 아는가 하고 반문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일부러 떠들썩하게 술을 마시고 고스톱을 치고 흰소리들을 해대는
것은 그러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운명에 대한 불안함 등이 지대함을
반증하는 것일 겁니다. 모든 생명체,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지만
그러한 보편적 사실이 개별적 존재의 죽음을 위로할 수 없다는 말은 정확하게
인생을 통찰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젊었을 때 보지 못하던 것들이 나이듦과
함께 보이기 시작하고 날이 저물어서 찾아오는 어둠은 때로는 편안함을 주고
자유를 주어 이를 늙기의 기쁨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소아과를 찾은 아픈 아이를 쉴새없이 뽀뽀하는 젊은 엄마의 행동에서 70평생
살아오면서 느끼지 못한 진리를 발견하고, 아이들의 생명력이 리듬과 율동에
포함되어 있음을 느끼어, 70평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말하기보다 듣는 자가 되고,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가까이 하여, 가까운 것들을 더 가까이 하려고 한다고 고백합니다.
젊음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지만, 아직 미숙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지요. 나이듦은 때로는 힘들고 아프지만, 내려놓음에 편안해지고
사소한 것들까지 관찰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여백도 많아지기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입니다.
작가처럼 가까운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더 가까이 해보는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