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예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헌 서재 Jul 20. 2019

<현대인과 매끄러움>

- “가까운 날들의 사회학”中 (2)

<현대인과 매끄러움>
-- “가까운 날들의 사회학”中 (2)

                                                             강 일 송

오늘은 지난 번 <먹방,쿡방>에 이어서 “가까운 날들의 사회학” 책의 두 번째 주제를
가지고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저자인 정인호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이후 서양미술사, 철학, 심리학,
협상학, 경제학을 주제로 영역를 넘나들고 있으며 최근에는 리더십 영역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GGL리더십그룹 대표로 있으며 한국경제, 헤럴드경제, 브릿지경제, 이코노믹리뷰
등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매년 200회가 넘는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제는 “매끄러움”인데, 현대인에게서 매끄러움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지, 철학적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 눈으로도, 손으로도 즐거운 매끈함

2014년 여름, 뉴욕은 제프 쿤스(1955~)의 도시였다. 뉴욕 뮤지엄에서 제프 쿤스의
회고전이 처음 열렸으며, 이는 미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휘트니뮤지엄 사상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었기 때문이다.
단연 주목을 받았던 것은 제프 쿤스의 대표적인 조각 작품인 <풍선개,Balloon Dog>다.
2013년 11월 크리스티에서 <풍선개>는 생존 미술가 경매 사상 최고가인 5,840만 달러,
당시 한화로 약 592억원에 팔렸다. 이로써 제프 쿤스는 영국의 살아있는 현대미술의
전설 데미안 허스트, 독일 현대미술 거장인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트로이카가 되었으며, 미국에서는 팝아트의 선구자인 앤디 워홀 이후 가장
성공한 미술가로 자리매김했다.

제프 쿤스의 <풍선개>는 어떤 판단이나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 듯하다. 그저 편안하고
아름다울 뿐이다. 작품의 규모도 인간의 3-4배이고, 눈으로 느껴지는 매끈함은 시각
뿐만 아니라 실제 촉각도 부드럽니다. 작품 앞에서 그 매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보면
고통과 번뇌가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풍선개>의 재질은 말랑한 풍선 재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스테인리스로,
관람객들이 상상한 재질과 무게를 뒤집는다.

제프 쿤스는 왜 거울처럼 반짝이고 매끈하게 작품을 만들었을까?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부정성이 제거된 채 오로지 매끄럽고 긍정적인
면만 가지고 있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의 이상적 아름다움이 자동적으로 자기 확신을 더욱 강화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추함, 공포, 무질서, 더러움, 경악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조차 매끄럽게 만든다.
제프 쿤스는 예술이란 오로지 아름다움과 기쁨일 뿐이라고 말한다.

★ 페이스북과 매끄러움

제프 쿤스가 지향하는 아름다움이란 매끄러움의 징표다. 매끄러움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연결하는 존재다. 어떤 불편함도 표현하지 않는다.
현재 페이스북의 가입자는 15억 명이 넘는다. 페이스북이 세계 최대의 SNS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아요’ 버튼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 매끄러움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자기 자신을 닮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다. 여기에는 어떠한 부정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 스마트폰, 자동차의 매끄러움

우리가 매일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도 매끄러움의 미학을 추구한다. LG의 스마트폰,
G플렉스는 심지어 스스로 치료하는 피부로 덮여있다. 말하자면 불가침의 피부다.
이 인공 피부 덕분에 스마트폰은 항상 매끄러운 상태를 유지한다.
게다가 삼성 갤럭시 라운드와 엣지, LG V20은 본체가 유연하게 휘어지는 형태다.

영국의 고급차 브랜드 재규어는 매끄러움을 더한 기능이 돋보인다. 재규어 차의 기어
시프트는 스틱형이 아니라 원형인데, 평소엔 숨어 있다가 시동을 걸면 위로 솟아오른다.
윌리엄 라이언스 재규어 창립자의 ‘자동차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생물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는 철학을 담은 디자인이다.

★ 성과사회와 매끄러움

오늘날 우리 인간은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추한 것도 매끄럽게 다듬는다.
무서운 것, 악마적인 것, 끔찍한 것, 더러운 것의 부정성을 거부하고 매끄럽게 다듬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물론 이에 반하는 작품들도 있다. 뉴욕 레버하우스에 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Virgin Mother>는 엽기 자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예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미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대체로 우리는 제프 쿤스처럼 매끄러움을 추구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성과를 지향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성과사회는 ‘~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성보다는 ‘~해야 한다’는 긍정성이 중심에 잡고
있다. 성과사회는 정해진 목표를 달성했을 때만 달콤한 꿀이 주어진다. 그것은
매끄러움을 가속화한다.

또한 성과사회에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하는 고독한 피로를 안겨준다.
그래서일까, 혼밥(혼자서 밥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창(혼자 노래 부르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혼캠(혼자 캠핑가기), 혼놀(혼자 놀기), 혼클(혼자 클럽 가기) 등
혼자 놀기가 피로한 일상의 사회를 대변한다는 문화로 등장했다.

★ 진정한 매끄러움은 부정적 요소까지 포함한다.

사람들은 열심히 찍고 편집해 자신의 매끄러운 모습만 타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진정한 자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숨겨둔 채 공허한 자신의 형태를 생산한다.
이것은 그저 매끄러움이다.

진정한 매끄러움은 외부의 시선 때문에 내면의 구성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가공 없이, 편집 없이 드러내는 것이 매끄러움이다.
이러한 매끄러움에는 번뇌나 두려움이 없다. 상상의 내가 아닌 현실의 내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매끄러움이란 부정과 공포, 추함, 더러움, 경악을 포함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자리를 잡았을 때 매끄러움의 미는 극대화된다.
그것이 예술이든 인생이든.

==============================================================

오늘은 “매끄러움”이라는 사물의 성질을 가지고 다양한 철학적 담론을 전개하고
또한 현대사회의 속성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매끄러움”에 관해서는 독일에서 상당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아름다움의 구원>이라는 책을 소개할 때 한번 다룬 적이 있었지요.
오늘 정인호 저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은 거의 한교수가 이미 이야기를 전개한 내용을
전제로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매끄러움은 현대 사회의 전반적인 명령에 가깝다고 합니다.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
들은 너무나 유려한 곡선으로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자연에서의 미는 거침과 매끄러움이 함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디지털의 시대는
전적으로 매끄러움에 가깝습니다.

예술사에서 아름다움의 미학은 근대에 들어와서 생긴 뚜렷한 사조이고, 근대에 와서야
비로소 미가 종교적 숭고함과 분리가 되었다고 하지요. 예술은 꼭 아름답고 대칭적이고
깨끗한 것만이 아닐텐데, 근대 이후 현대에서는 어떤 부정성도 인정하지 않는 추세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병철 교수가 낸 책 중에 <피로사회>라는 명저가 있는데, 여기서도 현대는 철저한
성과사회이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자기착취’에 준하는 노력과 고단함이 늘 함께
존재한다고 하지요. 미술에서는 제프 쿤스가 추구한 부정성의 제거, 매끄러움의
극대화 등에서 명확해집니다.

이러한 성과사회, 피로사회가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혼밥, 혼술, 혼영, 혼캠 등의
문화를 일으키고,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 결혼을 해도 아이를 갖지 않는 등의
사회 현상과도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회의 변화상, 직업의 선호도 변화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그 시기의 대학 입시
라고들 합니다. 현재 인기있는 직업, 직종의 대학 학과는 경쟁률이 치열합니다.

제프 쿤스의 작품들은 마치 아이들 장난감처럼 이쁘게 생겼고, 과거 예술의 기준으로
볼 때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현대의 사회상, 인간의
마음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고, 생존 작가 중 최고가를 경신한 그의 작품들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충분히 끌고 얻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면 현대사회의 현상은 인정하되, 매끄러움으로 표상되는 현대의 과도한 부정성
제거, 성과주의는 인간을 한없이 피로하게 하고, 쉴 곳이 없게 한다는 점도 인식을
해야 할 것 같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 방향으로의 동선이 어느 정도
필요하리라는 생각입니다.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고, 극한의 성과주의, 어떤 부정성도 제거된 매끄러움의 추구,
SNS에서의 보여짐에 대한 강박 등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비롯한 타인에 대한 관용과
여유, 극단의 성과보다는 과정에서의 노력 인정, 완벽한 매끄러움이 아닌 거칠고
덜 깔끔한 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유연성이 함께 담지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평안하고 여유로운 주말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숨에 읽는 현대미술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