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양인이지만 선(禪)사상 및 동양의 지혜에 심취하여 글을 쓰는 작가의 편안하고 사색적인 글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쿠르트 호크(Kurt Hock, 1937~)는 대학에서 연극학과 독문학을 공부 했으며, 극작가 한스 헤니 얀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사업을 운영하면서 작가로 활동하는 그는, 현재 경영에서 물러나 독일 남부 요하네스베르크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의 아주 담백하고, 자연을 가까이 하면서 겪은 삶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가득 한 책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다들 웃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내가 말하는 웃음은, 밝은 마음에서 우러나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진심 어린 상냥한 웃음이다. 그것은 모두를 기분 좋게 하는 몸의 언어다. 나는 웃음을 즐기지만, 미소를 더 좋아한다.
미소는 웃음보다 조용하고 섬세하며, 속 깊이 스며든다. 웃음에는 대부분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런 면에서 미소는 웃음보다 신비롭다. 미소는 소리가 없다. 미소에는 순간의 마법이 담겨 있다. 미소는 저절로 우러나고, 미소가 보이면 그 모습 그대로 좋다.
미소는 언제 어디서나 대단하다. 상냥한 미소는 햇살 좋은 정원으로 난 통로와도 같다. 미소는 미소로 화답을 받는다. 외로운 사람, 나이 든 사람, 아픈 사람, 의심이 많은 사람처럼 미소가 필요한 이에게 미소로 인사하는 사람은 마법사처럼 순식간에 그의 표정과 마음을 바꿔 놓는다. 그 사람의 마음을 짓누르던 어둠이 미소로 인해 밝아진다.
★ 우리 사는 일이 늘 꽃밭이라면
꽃밭에서는 모든 것이 변한다. 변하지 않은 채 머무르는 것은 없다. 내가 꽃을 바꿔 심는 것도 변화에 한몫을 한다. 올해는 코스모스를 옮겨 심었고, 꽃밭 한복판에는 백일홍 한 다발을 심었다. 백일홍은 살짝 보수적이고 고지식하여 장신구에 달린 꽃처럼 반듯하게 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발길을 멈추고 꽃밭을 구경한다. 지나던 사람 들이 손가락을 꽃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좀더 오래도록 머물다 가는 이들도 있다.
꽃밭에 물을 주고 그 앞에 한참 동안 앉아 아무 말 없이 꽃들을 본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 시간과 불
불은 뭐든지 태울 수 있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불꽃의 위력 덕분이지만, 지속적으로 이글거리는 불의 끈기 덕분이기도 하다.
음악은 불과 닮았다. 아니, 음악과 불은 하나다. 불이 작열하며 새 장작으로 옮겨 붙는 모습이 음악의 선율과 하모니를 닮았다.
시간이 사라진 기분이다. 우리는 가장 행복한 순간에 시간을 잊는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 시간이 멎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실감하는 시간은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주장하는 물리학자나 철학자 들이 있는가보다. 어쩌면 시간은 의식하기 나름이거나 더 정확히는 ‘무의식’의 문제일지 모른다.
불은 태곳적의 흔적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인간의 생존에 강하게 각인되었고, 인류의 삶을 변화시켰음에 틀림없다. 불은 현대에도 여전히 길들일 수 없는 위력을 갖고 있다.
밤늦은 시간, 통나무가 서서히 작아지고 나는 남은 숯과 재를 쓸어 담아 밖으로 가져간다. 시원한 밤공기에 숯이 연기를 내며 붉게 빛난다. 기분 좋은 송진 냄새를 다시 한번 깊이 들이마신다.
시간이 조용히 멎는다.
★ 눈과 고요
눈이 내리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생각이 깊어진다. 풍경처럼 내려앉은 고요가 내 마음까지 평온하게 한다.
눈송이가 점점 두꺼워지고, 눈송이는 중력과 마치 상관없는 듯 지붕 위에서 춤을 추다 아무도 모르게 스르르 마당 위로 내려앉는다. 온 세상이 금세 하얗게 덮인다.
순백의 들판이 내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 길이 사라졌다. 어디든 길이 될 수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 길이 내 앞에 있다. 고요함이 내게 깨달음을 안겨 준다. 한없는 평온함을 느낄 뿐이다. 나를 둘러싼, 그리고 내 안에 있는 평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