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기 PR과 소통의 시대라는 현대에 자칫 소홀하기 쉬운 “침묵”의 가치에 대해서 깨우침을 주는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1716-1786)로 프랑스 아미앵에서 태어나, 수도원이 아닌 세속에 적을 둔 소위 ‘세속사제’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빼어난 설교가이자 문필가로서, 또 논객으로 당대 사회 현실에 적극 참여를 하였다고 하고, 이 책 “침묵의 기술”은 당시 예수회의 전형적인 수사적 이론과 실제를 요약, 정리한 문헌이라고 합니다.
200여년을 더 거슬러 가서 “침묵”의 중요성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는 소중한 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 원칙 ; 언제 입을 닫을 것인가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입을 닫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고서는 결코 말을 잘할 수 없다.
네 번째 원칙 ;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원칙 ; 일반적으로, 말을 하는 것보다 입을 닫는 것이 덜 위험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섯 번째 원칙 ; 사람은 침묵 속에 거함으로써 스스로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침묵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은 자기 밖으로 넘쳐나게 되고 말을 통해 흩어져, 결국에는 자기 자신보다 남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일곱 번째 원칙 ; 중요하게 할 말이 있을수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할 말을 먼저 혼잣말로 중얼거려본 다음, 그 말을 입 밖에 낸 것을 혹시라도 후회할 가능성은 없는지 짚어가며 다시 한 번 되뇌어보아야 한다.
여덟 번째 원칙 ; 지켜야 할 비밀이 있을 때에는 아무리 입을 닫고 있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할 때 침묵은 넘칠수록 좋다.
아홉 번째 원칙 ; 일상생활에서 가급적 침묵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심스러움은, 달변의 재능이나 적성에 비해 결코 평가절하할 만한 것이 아니다. 아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모르는 것에 대해 입을 닫을 줄 아는 것이 더 큰 장점이다. 현명한 자의 침묵은 지식 있는 자의 논증보다 훨씬 가치 있다. 그렇기에 현명한 자의 침묵은 그 자체로 무도한 자에게는 교훈이 되고 잘못을 범한 자에게는 훈육이 된다.
열 번째 원칙 ; 침묵은 이따금 편협한 사람에게는 지혜를, 무지한 사람에게는 능력을 대신하기도 한다.
열한 번째 원칙 ; 사람들은 보통 말이 아주 적은 사람을 별 재주가 없는 사람으로,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을 산만하거나 정신 나간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말을 많이 하고픈 욕구에 휘둘려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느니, 침묵 속에 머물러 별 재주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편이 낫다.
열두 번째 원칙 ; 용감한 사람의 본성은 과묵함과 행동에 있다. 양식 있는 사람은 항상 말을 적게 하되 상식을 갖춘 발언을 한다.
열세 번째 원칙 ; 아무리 침묵하는 성향의 소유자라 해도 자기 자신을 늘 경계해야 한다. 만약에 무언가를 말하고픈 욕구에 걷잡을 수 없이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결코 입을 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열네 번째 원칙 ; 침묵이 필요하다고 해서 진솔함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생각들을 표출하지 않을지언정 그 무엇도 가장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닫아걸지 않고도 입을 닫는 방법은 많다. 신중하되 답답하거나 의뭉스럽지 않은 방법, 진실을 드러내지 않을 뿐 거짓으로 포장하지 않는 방법
★ 침묵의 기술, 침묵의 역설 – 옮긴이의 말 ; 성귀수, 시인이자 번역가,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문학박사
말과 글이 난무하는 시대다. 언제 어디서나 소통을 권하는 분위기는 우리에게 때와 장소를 불문한 소통을 강요한다. 나를 표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낳은 소통의 기제는 이미 표출하지 않으면 안 될 강박으로 나를 몰아넣은 지 오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지는 온갖 설화(舌禍)와 필화(筆禍) 스캔들, 소통을 위해 소통의 장치 속에 고립되고 만 너와 나의 기괴한 모습은 이제는 풍요의 기술적 부작용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증후적(症候的)이다. 이런 시대의 한복판에 ‘침묵’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 자체가 무엄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세기가 훌쩍 지난 ‘침묵에 관한 책’을 소개하는 것은 말의 과잉을 앓는 오늘의 우리에게 즉효의 처방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저자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논지는 첫 번째는 침묵이야말로 말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전제라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더 나아가 침묵 자체가 곧 말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알고 자제할 수 있다면, 역으로 말해야 할 때를 파악해 적확하게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이니, 침묵은 곧 말의 전제 조건이자 잉태공간인 셈이다. 또한 인간은 표정이나 제스처를 통해 침묵하는 자라도 그 의중이 얼마든지 드러날 수 있으므로 침묵은 곧 또 다른 언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침묵을 주제로 한 이 희귀한 고전은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끊임없이 부활 하여 재해석되고 있고, 말과 글의 참여가 공유를 넘어 과잉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 21세기의 떠들썩한 대한민국에 과연 침묵의 지혜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