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문 인류

<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

“고대에서 현재까지 역사 속 게으름을 이야기하다”

by 해헌 서재

<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
“고대에서 현재까지 역사 속 게으름을 이야기하다”

강 일 송

오늘은 “게으름”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잠깐의 여유와 휴식에도 죄의식을 갖게 되는 연유를 역사 속에서
찾아보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자인 이옥순교수는 인도의 델리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도사를 연구해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고, 잠시 서강대 교수를 지내고 지금은 연세대 연구교수로
있다고 합니다.
저서로는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인도 현대사>,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등 여러 권이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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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으름의 역사

게으름은 집단이나 국가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종에 따라 다르게
인식됐고, 시대에 따라서도 평가가 달랐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일곱째 날에
반드시 쉬었는데 그날을 안식일이라고 불렀지요.
비교적 유유자적하게 생활한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안식일을 가진 유대인을
게으름뱅이 민족이라고 불렀습니다.
더운 기후로 인해 활력과 움직임이 적은 열대에서는 “일하지 않고 활동이 부족한
상태”가 정상이었습니다. 그래야 살아남으니까요.

게으름은 시간의 개념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느림을 게으르다고 생각하고
빠름을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것으로 여긴 서구와 달리 비서구에서는 게으름은
다른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들 지역에서의 느림은 부정적인 의미의 게으름이
아니라 여유와 한가로움에 가까웠습니다.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에서 드러나듯이 게으름은 부도덕하고, 게으른 사람은
실패하고 가난합니다. 게으른 사람을 칭찬하거나 좋게 여기는 집단이나 사회는
많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든, 어느 집단에서든 게으름은 경멸과 비난을
받고, 나아가 벌을 받습니다. 게으름은 가난과도 동일시되었지요.

★ 게으름과 힘의 논리

부지런함을 강조하고 게으름을 문화적으로 억압하는 데는 힘의 논리가
들어 있습니다. 게으름이 사회 질서와 권력을 유지하는 데 악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근대 서구 문화에서 게으름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 서구 산업
사회와 관련이 있습니다.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이 중요해지면서 게으름도
중요해졌습니다.

게으름은 국경을 넘어 국제간 권력관계에도 배어듭니다. 게으름이 야만과
후진성으로 상징되면서 근면하고 역동적인 서구 사람들은 게으른 동양에
대한 침투와 정복을 정당화했습니다. 게으름은 식민지가 된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의 천성으로 여겨졌고, 나아가 국민적 특성으로 규정됐습니다.
그들은 일개미처럼 식민체제에 순응한 사람을 근면한 사람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은 자들을 나태하다고 간주했습니다.

게으르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요? 모든 걸 규정하는 자는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타자를 게으르다고 규정하면서 게으르지 않은 강자의
긍정적인 정체성이 완성됩니다. 강한 자는 오류가 없고 그래서 근면합니다.

★ 게으름과 죄책감

게으름이 가져오는 나쁜 결과를 들으며 자란 사람들은 자신이 게으르지
않은데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는 시간의 흐름을 불안하게 여깁니다.
어려서부터 게으름이 나쁘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라면 죄책감을 가지게
됩니다. 누구를 다치거나 해롭게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지요.

일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노는 즐거움도 있어야 마땅합니다. 음과 양,
직선과 곡선이 모여서 자연과 만물을 이루듯이 인간의 삶도 긴장과 이완이
필요하니깐요. 아무리 튼튼한 사람도 24시간 내내 달릴 수는 없지요.

★ 게으름을 옹호한 니체

“사람들은 휴식을 부끄러워하고 긴 시간을 들여 사색하는 걸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점심을 먹을 때도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주식시장의
최신뉴스를 읽으며 뭔가 대단한 것을 놓칠까 봐 늘 조바심을 내지요.”

게으름을 옹호한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19세기에 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에도 100퍼센트 유효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연히 자신을
게으르다며 학대하고 종종걸음을 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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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이한 주제를 한번 다루어 보았습니다. '게으름'은 사실 새마을운동,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우리나라에서는 죄악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어릴 때부터 접한 우리는 게으름을 큰 잘못
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좀 더 다른 시각에서 게으름을 바라보고 있네요.
게으름은 강자가 약자를 규정하는 것이고, 서구가 비서구를, 강한 나라가
식민 국가를 규정할 때 그러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부지런하기로 손꼽히는 한국, 일본을 처음 19세기에 방문한 서양인
들의 기록에 보면, 두 나라의 백성들이 하릴 없이 놀고 게으르다고 적고
있습니다. 남미나 아프리카를 방문한 서구인들도 그러하였지요.
그렇게보면 강자의 입장, 스스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게으름을
규정한다는 저자의 말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게으름이 부지런함보다 더 낫고 우월한 관념은 아니겠지요.
다만, 19세기에 니체가 말했듯이 너무 바쁘고, 서두르며 쉴새없이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너무 과한 죄책감을 씌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조임과 풀림, 바쁨과 휴식, 긴장과 이완 등이 잘 조화를 이루는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쉼표가 있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