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미학(美學)-와비사비>
“일본적 마음”中 - 김응교 인문에세이
<일본의 미학(美學)-와비사비>
“일본적 마음”中 - 김응교 인문에세이
강 일 송
오늘은 일본문화에 대하여 많은 식견이 있는 김응교교수의 <일본적 마음>의
세 번째 내용으로 일본의 와비사비 미학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자는 김응교 교수로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습
니다. 1996년 도쿄외국어대학을 거쳐,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8년 와세대대학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간 강의하다가 귀국하여 숙명여자
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교수로 있습니다.
저자는 13년간 일본에 있으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너무도 민감한 이 시대에
한국과 일본이 대화하며 함께 살아갈 길을 구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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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윽한 초가지붕
와세다대학교 강당 옆에는 넓게 잔디가 펼쳐진 일본식 정원이 있다. 그 정원
구석에 허술한 집 한 채. 판자집 같이 엉성하게 엮어진 누추한 집.
강진의 다산 유배지 건물이 더 화려하고 멋있게 느껴질 정도의 소박한 집.
간지소(完之莊)라는 이 집은 이 정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곳은 가장
중요한 국빈이 올 때 문을 열어, 손님을 맞이하는, 오랜 다다미방을 갖춘
집이다. 미 대통령 클린턴이 와세다대학을 방문했을 때도 로얄 리갈 호텔이
아니라 이 허술한 집 다다미방에서 식사했다고 한다.
실은 일본의 저택에는 이러한 허술한 집이 한 채씩 있다.
가마쿠라에 처음 갔을 때 들른 절인 엔가쿠지(円覺寺)는 1282년 여몽 연합군의
침입으로 죽은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사찰이다. 이 절에서 보기 드문
초가지붕의 건물을 보았고, 이 초가지붕 절집에서 난생 처음 차잎을 절구에
곱게 갈아 물에 섞은 ‘맛차(抹茶,가루차)’를 마셨다. 일본의 차문화는
가마쿠라 시대 승려 에이사이가 송나라에서 차문화를 들여오면서 시작됐다.
그는 1191년에 맛차 제조법과 묘목을 들여와 전했고, 당시 사찰에서 마시던
차는 상류층은 물론 서민의 기호품으로 번져나갔다. 지금의 커피 같은 기호
식품이었다.
초가지붕의 절집 곁에서 맛차를 마시는 분위기는 은은하며 독특했다.
딸랑딸랑, 실바람에 실려오는 방울 종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는 마음에
끝 모를 평안이 밀려왔다. 아이마냥 좋아하는 나를 보고 동행했던 와세다대
오오무라 마스오 교수님이 답하셨다.
“이런 분위기를 바로 와비사비라고 하지요.”
손님을 검소한 방에서 조용히 모시는 전통, 절의 건물도 초가지붕으로 씌우는
그늘진 분위기, 조금 풀어 표현하자면, 간소의 정신 혹은 가난함과 외로움을
즐기는 풍류정신이라고나 할까.
★ 다도(茶道)와 센노리큐
와비사비는 쉽게 말하자면 ‘고독과 빈궁함, 자연의 정취를 있는 그대로 즐긴다.’
고 말할 수 있겠다. 예스럽고 한적한 정취를 의미하는 와비사비는 일본의 다도
에도 중요한 정신적인 미의식으로 기능했다.
와비사비는 중세 전국시대의 전란을 거쳐, 그후 모모야마 시대의 현란하고
화사한 번영을 지나 이윽고 도달한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 원류는 센노리큐(千利休,1522-1591)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센노리큐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30년간의 정권을 말하는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때 다도의 대가다.
날마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서 무장(武將)들은 다실(茶室)
에 가서 침묵을 즐기곤 했다.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도 리큐의 차를 아끼고
사랑했다.
다도에는 ‘이치고이치에’(一期一會)라는 말이 있다. ‘모든 만남은 일생에 딱 한 번
있으니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 이에 리큐는 다실 문을 겸손히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도록 낮게 만들었고, 다다미 한 장 반 정도의 작은 방을 구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리큐의 소박한 정신은 조선 정벌을 나서며 팽창주의로 치달았던
히데요시와 마찰을 일으켰고, 마침내 리큐는 69세에 죽임을 당했다.
★ 와비사비와 동양문화
와비사비의 미학은 수필, 와카(和歌), 하이쿠, 회화, 조각, 건축, 정원 유리, 도자기,
다도, 음악, 무도뿐만 아니라, 일상언어에서도 나타난다.
가령 ‘안녕하세요’는 일본어로 ‘곤니찌와’인데, 우리말로 직역하면 그저 ‘오늘은...’
하고 여운을 둔 말에 불과하다. 뒷말이 어떻든 인사가 되는 것이다.
일종의 생략과 여운을 즐기는 것이다.
와비사비 미학이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나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양문화
곳곳에 그러한 요소는 숨어있다. 그러기에 서로 와비사비를 통해 대화할 가능성이
있다. 가난과 고독에 찌들어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히려 풍성하게 받아들이는
와비사비의 미학은 우리의 풍류(風流)와도 통한다. 가령 지금은 잊혀져 가는 한(恨)의
문화도 그러하다. 한스러움을 남에게 탓하지 않고 판소리나 마당극으로 풀어낸 우리
선인들의 지혜도 그러하다.
고독과 자연과 빈궁함을 즐기는 강진에 있는 다산 정약용 유배지 건물도 와비사비
미학과 통한다. 인간의 고독과 빈궁함은 이렇듯 오히려 넉넉함을 만들어내곤 한다.
와비사비의 미학은 다른 동양문화와 대화할 여지를 준다. 거대함과 신선함과 떠들썩함이 근대화의 키워드로 되어 있는 이 시대에 와비사비의 미학을 회복함은
‘동아시아 공동의 집’을 만드는 검소한 태도가 아닐까.
다소 비좁아 보이는 공간에서 당신을 모시려는 일본인이 있다면, 정성을 다해
와비사비의 마음으로 대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고요히 그윽한 분위기를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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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본적 마음"의 세 번째 편으로 일본 미학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어느 나라나 나름의 미학이 있지요.
우리나라의 미학은 동양의 나라들과 함께하는 공통의 미학이 있고 독립적으로
"자유분방함", "무계획성", "비균제성", "구수함, 질박함" 등이 있다고 우리나라
대표 미학자 중 한 분인 고유섭 선생이 말한 바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와 함께 동양의 미학적 특징을 함께 하고 있으면서 섬나라라는 특수
성이 겸비되어 나름의 미학이 있는데, 오늘은 그중 "와비사비"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일찍이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이었던 센노리큐 선사가
정립한 미적 사상인데, 이는 아직까지 일본에 고스란히 내려오고 있으며 다도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송나라에서 유래한 화려한 천목다완이나 금잔을 써서 차를 마시던 풍조를 센노
리큐는 동양적인 사유를 더한 "와비사비" 사상을 다도에 접목하여 이후 조선의
"이도다완"등의 막사발이 일본의 국보급이 되게 하는데 바탕이 됩니다.
결국 센노리큐는 히데요시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그의 철학은 대를 이어
전해오게 됩니다.
검소함, 소박함, 빈궁함, 자연적인 면을 강조한 이러한 미학은 사실 우리를 비롯
중국에서도 있어온 자연주의 등을 일본에 맞게 만들어낸 사상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저자인 김응교 교수도 이 점에서 동양 3국이 대화하고 소통할 하나의
장으로 이러한 사상이 작용할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일기일회" 라는 제목으로 법정 스님의 책이 출간된 적도 있었지요.
모든 만남은 일생에 한번 있기에 타인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이지 않을까 합니다.
너무 가볍고, 일회용의, 인스턴트적인 만남이 주를 이루는 현대에 있어서
관계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여지가 있는 말입니다.
오늘도 평온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