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읽어야할 도덕경>
-“삶의 순리를 깨달을 때면 도덕경이 들린다”
강 일 송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인 중국 춘추시대의 현인이자 철학자인 노자(老子)가
말한 것을 엮은 <도덕경>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도가(道家)의 시조로 불리우며 유가(儒家)와 함께 중국 철학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노자는 주나라에 대한 실망으로 주나라를 떠나 은거하려던 길에 관문지기로부터
청으로 남긴 것이 현재의 <도덕경>이란 설이 있습니다.
엮은이의 말대로 삶의 순리를 어느 정도 아는 나이가 되면 비로소 도덕경이 말하는
이치를 이해하게 된다고 하지요.
한번 보시겠습니다.
========================================================
★ 머물지 않기에 떠나감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면 이것은 추함일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선한 것을 선한 줄로 알면 이것은 선하지 않음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상대적으로 생겨나고, 어려움과 쉬움은 상대적으로
이루어지며, 길고 짧음은 상대적으로 형성되고, 높음과 낮음은 상대적으로 드러나고,
음악과 소리는 상대적으로 어울리며, 앞과 뒤는 상대적으로 따른다.
그러므로 성인은 무위(無爲)의 일에 머무르면서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이 일어나도 말하지 않으며, 생겨나게 하면서도 소유하지 않으며, 할 것 다
이루나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으며, 공이 이루어져도 거기에 머물지 않으니,
오직 공이 머물지 않기에 공이 떠나가지 않는다.
* 노자가 말하는 무위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 단지 수수방관한다는
것이 아니다. 노자의 무위란 자연의 질서를 어기면서 제멋대로 하거나 독선적이고
간사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노자의 사상은
‘소유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머무르지 않는다는 정신’인 것이다.
★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듦에, 그 빈 곳에 수레의 쓰임이 있다.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듦에, 그 빈 곳에 그릇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유(有)가 이로울 수 있는 것은 무(無)를 쓰임으로 삼기 때문이다.
* 무와 유는 따로 떼어서 존재할 수 없다. 무가 있어 유가 존재할 수 있고,
유가 있어 무가 돋보이는 것이다.
★ 완전한 비움에 이르면 위태로울 것이 없다.
완전한 비움에 이르고 고요함의 극치를 지키라. 만물이 아울러 생겨날 때 나는
그들의 되돌아감을 본다. 무릇 만물은 무성하지만 결국 저마다의 뿌리로 다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가면 고요해지니 이것을 ‘명(命,운명)’을 회복한다고 한다.
명을 회복하는 것을 ‘상(常,치우치지 않음)’이라고 하며, ‘상’을 아는 것을
‘명(明),밝음’이라고 한다.
‘상’을 알면 너그러워지고, 너그러워지면 공정해지고, 자연과 하나가 되고 그리하면
도를 얻고 천하를 지켜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게 된다.
* 비어있음과 고요함을 지키는 수양을 강조한다. 마음을 텅 빈 극치에 이르게 하고
고요함을 독실하게 지키는 것이 바로 도를 수양하는 방법이다.
★ 저절로 흘러감에 맡겨라
말을 적게 하고 저절로 그러함에 맡겨라. 회오리바람은 아침나절 내내 불지 못하고,
소나기는 온종일 내릴 수 없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천지가 하는 것이다.
천지가 하는 일도 오래갈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 하는 일에야 어떠하겠는가?
* 말없는 도의 가르침은 자연의 가르침이다. 거대한 자연이 일으키는 회오리바람과
소나기도 소멸되건만 사람이 인위적으로 이를 어긴다면 얼마나 갈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이 도를 알아가는 것은 억지로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연의
도리를 터득함으로써 도와 가까워지는 것이다.
★ 크게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하고, 크게 가득찬 것은 비어 있는 듯하다
크게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하지만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고, 크게 가득 찬 것은
비어 있는 듯하지만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다. 크게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크게 뛰어난 기교는 서툰 듯하며, 크게 훌륭한 언변은 어눌한 듯하다.
분주한 움직임은 추위를 이기고, 고요함은 더위를 이기니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름이 된다.
* 가장 완전하며 가장 가득 이룬 것이 도이지만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흠이 있거나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굽어보이고
서툰 것처럼 보이는 도는 사실 그와는 정반대로 가장 올곧고 훌륭하다.
대기 중에 공기가 가득 차 있지만 없는 것처럼 보이듯, 넘칠 듯이 차 있는 도는
빈 것같이 보인다. 이렇게 맑고 고요한 무위의 도를 지키는 사람이 세상을
바르게 이끌고 세상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
오늘은 기원전의 뛰어난 철학자인 노자의 가르침에 대해서 들어보았습니다.
노자의 사상은 현대에 와서도 전혀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그의 말은
역설적이라고 여겨지기 쉽지만 거기에 중요성이 존재합니다.
노자는 행함이 없는 "무위"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은 게으름이 되어 부도덕한 일이 되는 현대에
그는 "무위(無爲)"의 "위(爲)"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합니다.
사실 그의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고
자연의 이치에 거스름이 없는 "위(爲)"를 말하지요.
그는 세상은 상대적이라고 합니다. 또한 소유하거나 집착하거나 머무름이
없기에 그는 한없이 자유롭고 오히려 떠나감 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비어 있음을 강조하는데, 비어 있음이야 말고 가장 큰 쓰임을 가지게 되고,
비어 있어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비어 있어야 위태롭지 않다고
말합니다. 현대인은 매일매일 채우기 위해 하루를 모두 보낸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정도로 더 많이, 더 높이, 채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하지만 채움이 더 할수록 오히려 더 부족하고 더 중요한 것을 잃기도 하며,
건강도 떠나갑니다.
대단한 역설이지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大巧若拙,대교약졸"입니다. 크게 뛰어난 기교는
서툰 듯이 보인다는 말이지요. 또한 노자는 "大辯若訥,대교약눌"이라 하여
크게 훌륭한 언변은 어눌한 듯 보인다고 합니다.
평범한 범인은 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나 봅니다. 크게 이룬 기술은 오히려
서툴러 보이고, 최고의 언변은 모자라 보이니 말입니다.
오늘은 노자의 지혜의 말씀처럼 맑고 고요함을 지켜보는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