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과 학살의 두 얼굴, 무적함대 이야기>
“스페인 – 아트인문학 여행” 中
<정복과 학살의 두 얼굴, 무적함대 이야기>
“스페인 – 아트인문학 여행” 中
강 일 송
오늘도 아트인문학 여행이라는 컨셉으로 연작으로 나온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이전에 2번 정도 김태진 저자의 책을 소개한 적이 있었지요.
이번에는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쳐서 스페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태진 저자는 서울대 인문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보들레르를 전공한 미술애호가로 현재 서울시립대 겸임교수이며 기업인재연구소
대표이사를 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시대를 맞아 예술과 인문학을 접목해 선보인 <아트인문학>강연이
공전의 히트를 하였고 ‘베스트 티처상’을 수상할 만큼 흡인력 있는 강연은 유명
하다고 합니다.
지난 번은 돈키호테와 연결된 스페인의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오늘은 스페인 제국이 남미를 정복한 것과 무적함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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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복이라 기록된 학살
스페인의 영광은 남아메리카라 불리는 광대한 대륙을 정복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문을 열어젖힌 이는 콜럼버스였지만 그는 지금의 서인도제도 일대를 탐사했을
뿐 그 너머에 거대한 대륙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후배들에 의해 과감한 남미 개척이 시작되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성공을 거둔 이들은 에르난 코르테스와 프란시스코 피사로였다.
이들은 각기 아스테카 제국과 잉카 제국을 정복했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코르테스는 불과 600명의 병사를 이끌고 멕시코에 상륙해 500만 명을 헤아리는
아스테카 제국을 멸망시켰다. 황제를 포로로 잡은 코르테스는 많은 이들을 학살하고
아스테카를 정복했다.
제2의 코르테스를 꿈꾸며 남미로 건너간 피사로의 이야기는 더 황당하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열두 명의 부하들만을 데리고 페루에 상륙했는데 마친 그곳 잉카제국은 극심한
권력투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 혼란을 틈타 황제를 볼모로 잡은 피사로는 거대한
방을 황금으로 채워주면 물러갈 것이라 황제를 속인 뒤 황제를 살해하고 진격해
잉카제국을 점령했다.
이 두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스페인의 모험가들은 필요에 따라 무자비한 살육을
거리낌 없이 자행했다. 그리고 원주민들의 재산을 빼앗고 노동력을 착취했다.
이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이들도 있었는데, 철학자 히네스 테 세풀베다는
이들이 문명 이전의 인간이므로 문명으로 교화하기 위해 정복하고 재산을 빼앗는
것은 정당하다는 교묘한 논리를 폈다.
16세기 초 멕시코 고원에 사는 이들만 2,000만 명이 넘었는데 불과 100년도 안 돼
100만 명 선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이들을 몰살시킨 것은 바로 세균이었다.
유럽인들이 가져간 전염병에 항체가 없었던 이들은 모두 죽었다.
스페인의 번영은 거저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역사는 늘 정복자의 시각에서 사건들을
다룬다. 원주민들은 문명화되고 교화된 것일까? 이들은 그저 학살되고 착취되었을
뿐이다.
한 쿠바의 족장이 반란죄로 화형당하기 전에 남겼다는 말이 있다.
“난 당신들이 그리도 좋다고 떠드는 천국이라 해도 그곳에 스페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다.”
★ 무적함대 아르마다
1588년 7월 영국인들 앞에 무적함대 아르마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130척의 전함과
2,000문의 대포, 병사 3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함대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를 벌하기
위해 온 것이다. 펠리페 2세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응징하기로 한 것은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를 모함하여 처형했기 때문이다. 메리는 영국 가톨릭 세력의 지도자로
영국 왕위의 차기 계승권이 있었다.
당시 영국 함대의 규모와 군사력은 극단적인 열세에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기동력이 좋았고, 해적질을 통해 산전수전을 겪어온 해전 경험이 있었다.
첫 교전에서 무적함대의 압도적인 힘에 밀려 크게 고전했던 영국 함대에 놀라운
행운이 찾아왔다. 강한 돌풍이 불어왔고 몇 척의 배가 돌격해 스페인 함대에 불을
붙이자 거센 바람에 스페인 함대는 계속 뒤로 밀렸고 그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
결국 북해 먼 바다로 쫓겨나고 말았다. 영국 함대의 손실은 거의 없었다.
참패 소식을 들은 펠리페 2세는 탄식했다.
“영국 해군과 싸우라고 했지 누가 자연과 싸우라고 했던가!”
무적함대의 궤멸은 이후 유럽의 역사를 바꿨다. 바다를 장악한 영국이 미래의
패권국가로 기반을 만들었고, 종교내전의 참화를 딛고 중앙집권을 가속화한 프랑스가
스페인의 지위를 노리는 중이었다.
해가지지 않던 스페인에 이렇게 붉은 핏빛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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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때 무적함대를 자랑하고, 남아메리카를 정복하여 막대한 부를 벌어들인
스페인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주로 쓰여지거나 문자를 가진 이들에 의해서 기록
되기 때문에 일방적인 면만이 부각되기 쉽습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진출
했을 때만 해도 그곳이 인도인 줄을 알았지요. 이후에 그의 후배들은 뛰어난
무기와 화력을 가지고 소수의 인원으로 거대한 제국들을 무너뜨렸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희생자들은 천연두를 비롯한 유럽에서 들어온 전염균에 의해
일어났고, 정복자들은 무자비하게 원주민들을 동물처럼 대하고 막대한 재물을
약탈해 갔습니다. 이를 통해 엄청난 부를 가진 스페인은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지만 이도 오래가지 못해 국가 파산까지 이르게 됩니다.
세계최강의 군대인 몽골군대가 고려군과 함께 일본을 침략했던 때도 태풍에
의해 무너졌듯이, 세계 최강의 함대인 스페인 함대도 자연의 강한 바람에 일방
적으로 무너집니다. 물론 때마침 경험 많았던 스페인 제독 산타 크루스가
출항후 급사하여 해전 경험이 전무하던 공작이 지휘를 한 불운도 있었고,
해적질을 통해 많은 싸움 경험이 있던 영국 해군의 이점이 함께 작용을 한
측면이 강하지만 역사는 늘 그렇게 흘러갑니다.
무서울 것이 없었던 로마제국도, 몽골제국도, 스페인제국도, 영국제국도
역사의 흥망성쇠 섭리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역사의 평가 또한 정복자 입장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피지배인의 입장의
역사도 재평가 되고 있지요.
역사는 이처럼 후세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또 늘 다시 되풀이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