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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Dec 24. 2019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
“나는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종류의 위안을 시에서 찾았다”

                                                            강 일 송

오늘은 “시가 내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작가가 엮은 시모음집을
한 번 보려고 합니다.

엮은이는 김선경 작가로 30년간 글을 쓰고 책을 만든 작가이자 출판 에디터입니다.
월간 <좋은 생각>, <문학사상> 등을 두루 만들었고, 직접 지은 책으로 20만 독자가
선택한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이 있고,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자기 돌봄>의 엮은이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작가가 선택한 시 중 몇 편을 뽑아 저의 감상으로 이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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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속에서

                       나 희 덕(1966~)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속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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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은 어둡고 힘들고 길 잃은 이에게 자그마한 불빛,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작은 지붕, 나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의 손 등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며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힘을 주는 지를 이 시를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길을 잃어 밤새 헤맨 사람에게 아주 멀리서 보이는 자그마한 불빛은 드디어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먹을 것을 먹을 수 있으며 지친 몸을 쉬게 해 줄 곳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지요. 또한 산을 헤매다 만난 자그마한 산골 마을의
지붕은 엄청난 위안을 줍니다. 그리고 너무 힘들고 외로운 때 나의 손을 잡아
줄 이가 있다는 것은 산보다 더 든든하지요.

현재 내가 처해있는 삶의 현장이 얼마나 크고 안전하며 좋은 곳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다음 시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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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허 수 경(1964-2018)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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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뛰어난 문학적 감성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다가 문득 훨훨
우리 곁을 떠나버린 시인 허수경의 시를 함께 보았습니다.
허시인은 어느 날 독일로 떠나 그곳에서 공부하다가 독일인 남자와 결혼하여
지내왔고, 작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집을 보면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등, 제목이 슬프거나 외로운 것이 많지만
그의 시적 언어는 아름답고 다채롭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고나니 이 시의 의미가 더 새롭게 다가오는데,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서로에게 차갑거나 뜨거울 수 있고, 서로 오해하고 이해하며, 서로 사랑
하고 미워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는 살아있는 한 누구에게나 겪어야 할 과정이고
그는 모든 것을 떠나,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러한 시간을 가졌음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시간일 수
있고, 현재 살아있음을 느끼고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때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다음 시로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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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구하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얻을 수는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것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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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 편을 더 보겠습니다. 한때 조각가 로댕의 비서였기도 했던
유명한 시인 릴케의 시입니다.
그의 충고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누구든 살아있는 한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지요. 그러한 문제를 너무 아웅다웅
풀려면 애쓰지 말고, 때로는 약간 거리를 두고 인내를 가지라고 합니다.

문제에 빠져 문제를 사랑하고 그 문제 자체를 살아내라고 합니다.
그리하다보면 어느덧 내 삶 자체가 문제의 답을 주고 해결해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간이 최고의 약이고, 최고의 답이기도 한 것일 겁니다.
그렇다고 마냥 문제를 외면하고 무시하고 회피하라는 말은 아니고, 그 문제를
깊이 받아들이고, 사랑하기까지 하라고 하지요.

지금도 여러 가지 많은 문제에 고민이 깊은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100년 전에 다녀간 시인의 충고를 한번 되새겨 보시고 이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길 기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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