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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Jan 03. 2020

<마음이 마음에게>

      “이해인 시집(詩集)”

<마음이 마음에게>
                “이해인 시집(詩集)”

                                                강 일 송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같은 해가 떠오르고 지는 것은
일상이지겠지만, 새로운 마음을 가져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
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시대의 따뜻하고 늘 한결같은 작가이자 수도자인 이해인수녀님의
시집을 한 번 더 보려고 합니다.

이해인(1945~) 시인은 성베네딕도 수녀회에 몸을 담고 있으며 1968년에 첫 서원을,
1976년에 종신서원을 하였습니다.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낸 이래 수도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함께 하고 있으며 많은 시집을 통해 우리들에게 따뜻한
시심을 전해주었습니다.

오늘도 이 시집에서 몇 편의 시와 함께 시 감상을 함께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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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마음에게

                        이 해 인

내가 너무 커버려서
맑지 못한 것
밝지 못한 것
바르지 못한 것

누구보다
내 마음이
먼저 알고
나에게 충고하네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다 욕심이에요
거룩한 소임에도
이기심을 버려야
순결해진답니다

마음은 보기보다
약하다구요?
작은 먼지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구요?

오래오래 눈을 맑게 지니려면
마음 단속부터 잘해야지요

작지만 옹졸하지 않게
평범하지만 우둔하진 않게
마음을 다스려야
맑은 삶이 된다고
마음이 마음에게 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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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첫 시는 “마음”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불교에서도 “일체유심조”라 하여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 하였고, 유학에서는 공자에게 제자가 평생 실천해야할 것을 물으니
“서(恕)”, 즉, 용서하는 마음, 어진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지요.

오늘 이해인 시인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다 욕심이라고 하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알면
맑은 삶이 된다고 말합니다. 내가 맑지 못한 마음, 밝고 바르지 못한 마음을 가진 것은
세상에서 너무 커버려서 그렇다고 합니다.

현재의 삶과 마음가짐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다음 시도 한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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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 일기

               이 해 인

어제는
먹구름
비바람

오늘은
흰 구름
밝은 햇빛

바삭바삭한 햇빛을
먹고 마셔서
근심 한 톨 없어진
내 마음의 하늘이
다시 열리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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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는 어제의 먹구름과 비바람이 부는 날씨에서
하루 만에 흰 구름과 밝은 햇빛을 마주하자
너무나 깨끗해지고 맑아져 근심 한 톨 없어지고
내 마음의 문이 다시 열리어 이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백 번 왔다갔다 한다고 하지요.
그렇게 변화무쌍한 마음은 어느정도 날씨에도 영향을 받게 마련이라
어둡고 춥고 바람부는 날은 저절로 마음의 날씨도 그렇게 변합니다.
다시 맑고 밝고 따뜻한 햇빛과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 어느새 우리의
마음도 열려서 행복해집니다.

햇빛을 바삭바삭하게 먹고 마시는 경지는
바로 내 마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경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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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시

                     이 해 인

시를 쓸 때는
아까운 말들도
곧잘 버리면서

삶에선
작은 것도 버리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
부끄럽다

열매를 위해
꽃자리를 비우는
한 그루 나무처럼

아파도 아름답게
마음을 넓히며
열매를 맺어야 하리

종이에 적지 않아도
나의 삶이 내 안에서
시로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
맑은 날이 온다면

나는 비로소
살아 있는 시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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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시는 시인으로서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는 반추의 시간을 시로
표현한 글이었습니다.
시를 쓸 때는 아름답고 귀한 말들도 잘 버리면서, 삶에서는 사소한 물건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을 탓하고 부끄러워하지만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할 것입니다.

열매를 위해 꽃자리를 비우는 나무처럼, 내 마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아프더라도 마음의 자리를 비워내야 한다고 합니다.
가득 차 있는 곳에 새롭고 좋은 것을 들일 수는 없지요. 내 손에 든 것을
놓지 않고서 더 좋은 것을 쥘 수가 없는데, 사람들은 차마 내 손에 든 것을
쉽사리 놓기가 힘듭니다.

마지막 연은 시인으로서, 수도자로서의 삶을 총괄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문장이었는데, 종이에 글로 쓰지 않아도, 말로 신앙을 고백하지 않아도
내 삶이 성숙하고 아름답게 내 가슴 안에서 영글어간다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올바른 시인이자 수도자가 된 것일 겁니다.

세상사 모두 자기만을 위하여, 자기 편을 위하여 끊임없이 나와 다른 사람들,
나와 다른 존재들과 투쟁하는 현대에, 글로 쓰지 않아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 삶의 행동, 말 자체가 곧 시가 되고 수행이 되는 경지가 부럽기만
한 하루입니다.

오늘도 알차게 마음이 영글어가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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