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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Jan 07. 2020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2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
“나는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종류의 위안을 시에서 찾았다”

                                                      강 일 송

오늘은 “시가 내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작가가 엮은 시모음집을
두 번째 보려고 합니다.

엮은이는 김선경 작가로 30년간 글을 쓰고 책을 만든 작가이자 출판 에디터입니다.
월간 <좋은 생각>, <문학사상> 등을 두루 만들었고, 직접 지은 책으로 20만 독자가
선택한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이 있고,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자기 돌봄>의 엮은이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오늘도 작가가 선택한 시 중 몇 편을 낭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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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의 일들에 덜 몰두한다는 것

                     달라이 라마(1935~)

이 생(生)의
여러 일에 쏠리는 마음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해야 할 일을
아주 단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삶의 파도에 따라
어느 때는 뛸 듯이 기뻤다 우울해졌다 하고,
어떤 일에 이득을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다가
꼭 갖고 싶었던 무엇을 얻지 못하면
당장 창밖으로 뛰어내릴 것처럼 속상해하는
본능적인 마음을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이 생의 일들에 덜 몰두한다는 것은
삶에서 높은 파도를 만나더라도
넓고 깊은
고요한 마음을 지킨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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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게 진실로 위대한 일은

                             프랑시스 잠(1868-1938)

인간에게 진실로 위대한 일은
나무통에 우유를 받고
까슬까슬한 밀 이삭을 거두는 일.

포플러 나무 그늘 아래 송아지를 지켜보고
자작나무 껍질을 벗기며
돌돌돌 개울가에서 버들잎 바구니를 짜는 일.

늙은 고양이와 티티새와 아이들이 잠이 들 때
어둑한 불빛 아래 낡은 구두를 꿰매는 일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깊어 가는 밤
덜걱거리며 베를 짜는 일

빵을 굽고 포도주를 담는 일
텃밭에 양배추와 마늘 씨를 뿌리는 일
그리고 이른 아침 따뜻한 달걀을 가져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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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둔다

                     이 성 선(1941-2001)

마당의 잡초도
그냥 둔다.

잡초 위에 누운 벌레도
그냥 둔다.

벌레 위에 겹으로 누운
산 능선도 그냥 둔다.

거기 잠시 머물러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내 눈길도 그냥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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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이상한 세 단어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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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에 소개를 한번 했던 시모음집에서 다른 시 4편을 연속으로 이어
올려보았습니다.

시는 문학의 한 장르이고 소설이나 수필 등에 비해서 짧은 글들이 많지만
어떤 때는 시 한 편이 철학이 되고, 시 한 편이 역사가 되며, 시 한 편이 문화가
되고 종교가 되기도 합니다.  그 짧은 문장 사이에 엄청난 내공이 켜켜이 쌓이고
스며들어 있는 경우가 많지요.
오늘 시들이 그러하다는 생각입니다.

먼저 이 시대의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달라이라마의 시를 보겠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덜 몰두하라고 시인은 조언합니다.
이는 세상의 직업이나 일을 멀리 하라는 것이 아니라 삶의 파도같은 감정의
기복에, 감정의 소모를 멀리하고 담대하고 고요해지라는 말이었습니다.
당장 닥친 일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스스로 고요해지려고
노력하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과는 차이가 많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시는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프랑시스 잠의 시였습니다. 그는 평생 자연에
귀의하여 당시의 퇴폐적인 시풍을 벗어나 독자적인 경지를 이룬 시인이라고
합니다.  그에게 있어 삶의 위대성은 큰 명성을 얻거나 큰 부를 이루거나, 큰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일상적인 생활 속에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우유를 받고 이삭을 거두며 베를 짜고 빵을 굽고 포도주를 담그는 일 등 그 당시
시대상에서 너무나 일상적인 행위에서 위대함이 있다고 통찰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현대인에게서 아주 일상적인 일 속에 위대함은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세 번째 시는 이성선 시인의 시였는데, 이성선 시인은 세상 속에서도 때묻지 않은
순수한 서정적 시어로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이번 시는 굉장히 관조적이고 때론
도가의 무위(無爲)에 가까운 정서로 진행이 되고 있는데, 인위를 가하지 않고
그냥 마당의 잡초를 두고 바라만 봅니다.  잡초위에 누운 벌레도 그냥 보고,
그 작은 벌레 뒤로 겹쳐 보이는 산 능선도 두고 보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냥 봅니다.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행위를 표현하는 "그냥"이란 말은 때론 가장 큰 의미를 함유
하기도 하지요.
자그마한 벌레의 등에서 거대한 산 능선을 겹쳐 볼 수 있는 시인의 배포는 참으로
크다 하겠습니다.

마지막 시는 199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폴란드의 시인 쉼보르스카의
시였습니다. 시인은 세 가지 단어를 듭니다. "미래", "고요", "아무것도"라는 단어
였는데,  철학적인 관점이 많이 포함된 시였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항상 같이 묶여서 다니는데, 진정한 의미의 현재는 너무나
찰나여서 늘 과거가 되고 맙니다. 미래도 마찬가지여서 다가오지 않다가 금방
현재를 거쳐 과거가 되지요.

또한 "고요"라는 단어도 입 밖에 내는 순간 이미 고요가 아닌 것이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고요란 관념속에 있는 개념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도 파장에 따라서 실제로 존재해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한테 들리지 않아도 소리와 빛은 존재하기
때문에 진정한 고요란 존재하기 힘든 것이지요.

"아무것도"라는 단어도 특이해서 입에서 나오는 순간 이미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창조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하게 우리가 무(無)에 귀속되기는 힘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몇 편의 시를 함께 보았고, 시 한 수, 한 수를 읽고 느끼고 사유하는
순간 우리의 감성은 늘 몇 배로 풍성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도 매일 매일 접하는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얼마나 큰 위대성이
들어있는지 알아가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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