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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Jan 10. 2020

<내 벽장 속의 바다>

  “박상화 이야기 시집”

<내 벽장 속의 바다>
                      “박상화 이야기 시집”

                                                   강 일 송

오늘은 일반 시집과는 사뭇 다른 컨셉트의 시집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시인은 자기 약력에

저자; 박상화 1988년생 이야기를 쓰는 시인

이라고만 짧게 알려주고 있고, 젊은 시인답게 독특한 구성과 내용으로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시인은 꼭 유명해야 하고, 위대한 시인의 시만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아니지요.
오늘 이 젊은 시인의 감성은 아주 독특하고 젊은이기에 가능한 시어가 군데군데서
톡톡 터지고 있습니다.

제 개인의 감상이 때론 타인의 제대로 된 감상을 방해하기에 오늘은 그냥 있는
그대로, 저의 감정에 스크래치를 긁어오는 시들을 적어보았습니다.

바쁜 일상과 힘든 일 가운데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시간이 된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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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도씨에서 끓는 사람

                          박 상 화

물이 100도씨에서 끓는다고들 해요.
마음이 10도씨부터 끓는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죠.
우린 그저 작은 친절이면 됐죠.
어떤 사람은 마음이 5도씨에서도 끓더라고요.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금방 식은 이유는
당신이 5도씨만큼도 마음을 주지 않아서에요.
5도씨를 유지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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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에만 사는 사람

                           박 상 화

정신 없이 뛰는 사이 우리의 하루는
있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졌어요
오늘도 이름 모를 불한당의 기사를 읽었고
아침엔 연예인 오모씨의 사생활을 걱정했어요
오후엔 인터넷 맛집 사진을 검색했고
저녁엔 비싼 물가를 걱정하며 햄버거를 물죠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고
누구를 위해 살아있는지 모르겠어요
안 돼요 다시 알람이 울려요 오늘도
유명인 이모씨의 일과는 이러 이러하대요
그런데 나는 어디 있죠 나는 여기 살아있는
건가요 내가 살아있는지 한번만 알아봐 줄래요
어서 인터넷에 우리의 사진을 올려요
하지만 그림에 걸린 나는 내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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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논리

                        박 상 화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저마다 무리지어 편을 먹었다 상상 해봐
어느 날 고갤 돌렸는데 너와 날
둘러싼 사람들이 검은 색인지 하양인지
조차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너와
나 사이를 갈라 놓았다고 그냥
상상해보라니까 그래 근데 꼭 그러한
것도 아닌데 우린 왜 흑백이 되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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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죽이는 일

                           박 상 화

요리사; 난 요리로 사람 죽이는 일 해.
가수; 난 노래로 사람 죽이는 일 해.
기자; 난 진실로 사람 죽이는 일 해.
소설가; 난 이야기로 사람 죽이는 일 해.
시인; 난 음악으로 사람 죽이는 일 해.
작곡가; 난 운율로 사람 죽이는 일 해.
갑자기 누군가 벌떡 일어나 한마디 한다.
의사; 난 생명으로 사람 죽이는 일 해.
그 거리에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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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나무

                        박 상 화

난 민심을 풀에 비유하는 시를 싫어해요
그들을 언제든 짓밟아도 될 것처럼 들리거든요
나라면 민심을 아름다운 꽃나무에 비유할래요
그들은 하늘을 향기로 물들이지만
함부로 꺾거나 짓밟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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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했어야할 말

                        박 상 화

때론 말이 마음보다 빨리 튀어나오는 때가 있다
그래도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건
옳은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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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 도

           박 상 화

물이 뜬다
해가 기운다
밤이 울고
달이 걷는다

물에는 많은 계절이
떴다가 또 진다
그 위에
몸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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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레몬에이드

                  박 상 화

당신의 아름다운 시간이 나를 흔들어 깨우던
유채꽃밭 얼굴을 묻고 봄의 옷자락을 붙잡습니다
시간을 거스르는 전차가 겨울과 봄을 그냥 지나쳐
따뜻한 여름과 시원한 가을만 컵에 넣어 준 것 같죠
당신은 없고 계절은 겨울인데 나는 봄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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