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철학에 관하여 흥미롭게 저술한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철학은 일반적으로 용어부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어 가까이 하기 힘든 학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 저자는 너무 재밌어서 잠까지 못 들 정도로 철학이 재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인 김경윤은 일산에 있는 자유청소년도서관장이자 인문학 작가입니다. 다양한 모임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고, 지은 책으로 <철학의 쓸모>, <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 <처음 만나는 동양고전>, <스피노자, 퍼즐을 맞추다>,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을 가다> 등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철학자 중 “하이데거”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하이데거(1889-1976)는 독일 남부 바덴 주의 메스키르히에서 성당 종치기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지만 이내 철학으로 관심을 돌린다. 그가 대학에 다닐 당시 교수로 재직 중이던 후설과 친분을 맺고 조교로 봉사 하다가 후설이 그만두자 그의 후계자로 철학 교수가 된다. 그는 1933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에 총장으로 취임하였으니 한 학교에서 학생, 조교, 교수, 총장을 한 셈이다.
그의 주저 <존재와 시간>(1927)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인간 존재’의 문제를 탐구하였고, ‘시간성’ 안에 있는 인간에 대하여 파고들었다. 스승 후설은 주로 ‘인식론’의 문제를 연구했지만, 하이데거는 ‘존재론’의 문제로 관심 영역을 확장했다.
한편 하이데거는 늘 논란의 대상이다. 히틀러와 파시스트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그의 대학총장 취임 연설 <독일 대학의 자기 주장>에는 나치에 대한 옹호와 선동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행보 때문에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강단에서 추방당한다.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유태인이었기에 스승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치의 잔혹상을 고발하고 분석하여 그녀만의 철학을 정립한다.
비록 하이데거와 엇갈린 운명이었지만 전후 하이데거의 정치적 과오 때문에 그의 철학적 성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으로도 하이데거를 다시 학문의 광장으로 불러들이지는 못했다. 만년에 하이데거는 가까운 친구들만 교류하며 은둔생활을 하다가 1976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철학은 후기로 갈수록 신비주의적인 색채를 띠었으며, 역사 이래의 모든 존재론과 이를 표현한 철학적 언어에 회의를 품고 시의 세계, 시의 언어를 통하여 새로운 존재론을 세우려 했다.
★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하이데거 식으로 표현하면 ‘존재란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하이데거는 존재 일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존재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해의 능력을 가진 인간 존재에서부터 출발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해명하면서 ‘현존재(Dasein)’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쉽게 풀면 ‘지금 여기(Da)에 있는 존재(sein)’라는 말이다. 즉 인간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결코 분리하여 사고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신이나 이성 등과 같이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출발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그는 일상적이고 일회적이며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인간으로부터 출발한다.
★ 던져짐과 던짐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특성을 사실성(facticity), 전락성(fallness), 실존성(existentiality) 등의 세 가지 실존 범주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1) 사실성 ; 우리는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부모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도 없고, 태어날 나라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으면 성별 또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은 피투성(披投性)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세상에 ‘던져진 존재’와 같다는 것이다.
2) 전락성 ; 우리는 쉽게 자포자기하고 세상을 막연히 살게 되며 익명의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한다.
3) 실존성 ;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구속하고 제약하는 사실성으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 존재는 스스로를 벗어날 수 있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을 성찰할 수 있고 자신의 미래를 자유롭게 택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다.
하이데거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과거의 사실들에 비관하면서 현재에 전락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미래를 향해 용감하게 결단하고 책임지 라고 말한다. 이를 기투성(project) 이라고 한다.
★ 불안과 공포의 차이
하이데거는 불안과 공포의 차이를 대상의 유무로 구별했다. 쉽게 말해 공포는 뚜렷한 대상이 있지만, 불안은 특정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라는 말을 잘 쓴다. 이런 말버릇이 불안과 공포를 극명하게 구분짓는다. 무(無)에 대한 불안, 또는 모든 것에 대한 불안, 어쩌면 삶 전체에 대한 세상 전체에 대한 불안.
이러한 불안을 통해서 우리는 죽음 이전에 죽음을 미리 경험하게 되고, 인간이 죽음을 향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유한한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으로 용감하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선구적 결의’와 ‘기투’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은 이처럼 정서적인 범주로부터 돌파구를 찾는다는 점에서 다른 철학적 조류와 크게 차별화된다. 이는 하이데거의 철학이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인간을 탐구하는 다른 철학적 조류와는 달리 인간의 일상생활에 보다 깊이 천착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오늘은 뛰어난 업적을 남긴 철학자이나 나치에 협력함으로써 강단과 학계에서 추방당한 하이데거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는 비록 종치기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천재성을 가지고, 현상학파를 만든 후설의 뒤를 이어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의 교수를 하고 이후 총장의 자리에까지 이릅니다.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유태인이기에 고초를 겪고 그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인생의 후기에는 신비주의와 시의 세계로 흘러갔지만, 그의 존재론은 형이상학적 이거나 관념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합니다. 그의 철학 중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인간을 던져짐의 존재와 던지는 존재로 표현 하는 것이었는데, 인간은 누구나 자기 부모를, 자기 나라를, 자기 인종을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세상에 던져진 것처럼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후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겪으며 좌절하기 쉽고 자포자기하는 전락의 존재가 되는데,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자신의 현실, 환경 을 극복하고 미래로 자신의 희망, 꿈을 던질수 있는 존재까지 나아갑니다. 이를 인간의 사실성, 전락성, 실존성 이라는 세 가지 용어로 잘 설명하고 있지요.
또한 인간이 필연적, 본능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공포, 불안에 대한 설명에서 공포는 대상이 있고, 불안은 대상이 없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사나운 동물, 무시무시한 자연 재해 등에 공포를 많이 느꼈다면 현대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 사회에 대한 불안 등, 불안이 더 많은 작동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온 나라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이웃 중국에서 시작된 불안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번지고 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전개를 보이고 있지요. 이러한 시기에는 사람들은 더 많은 불안장애를 가지고, 가슴 답답함, 분노, 우울 등 다양한 정서장애를 겪게 됩니다.
이런 때일수록 하이데거가 주장한 것처럼 현재에 매몰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미래를 개척하려는 의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