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과학 자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헌 서재 Mar 12. 2020

<무통 마취 수술의 도래>

“한권으로 읽은 의학콘서트”中

<무통 마취 수술의 도래>
“한권으로 읽은 의학콘서트”中

                                     강 일 송

오늘도 의학에 관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 흥미로운 책을 한번 더 살펴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젊은 의학을 꾸밈하는 모임”인데 서양에서 출간된 의학과 관련된
수많은 저서와 참고자료를 통해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는 에피소드들이
가득찬 책을 만들었습니다. 여러 번의 전문가 피드백 등을 받느라 3년 6개월의
집필 기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오늘은 그중 무통 마취수술의 등장에 관한 이야기를 보려고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

★ 웃음가스의 등장

영국의 유명한 화학자 프리스틀리는 1772년 이산화질소(NO₂)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곧 프랑스혁명이 일어났고 폭도들의 공격을 받아 모든 연구 결과를 잃고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799년 다시 이산화질소를 연구한 학자는 험프리 데이비(1778-1829였다. 그는
건강한 고양이를 대상으로 실험하였는데 이산화질소가 담긴 용기에 고양이를 넣고
5분이 지나자 고양이의 맥박이 감지되지 않았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고양이를 꺼내고 몇 초가 지나자 고양이가 심호흡을
한 후 30분이 지나자 완전히 회복되었다.

하지만 이산화질소는 흡입했을 때 기분이 황홀해지고 통제가 어려울 만큼 강한
웃음을 유발해 쾌락을 구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했다. 이 때문에 이산화질소는
‘웃음가스’란 이름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1844년 미국의 치과의사 호러스 웰즈는 치통을 앓던 조수에게 웃음가스 한 봉지를
흡입하게 한 후 의식을 잃자 발치 수술을 하였고, 다시 깨어난 조수는 그저 바늘로
찌른 것 같이 따끔하다고만 하였다. 호러스는 발치 수술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흥분했다.
그러나 단시간 내에 이뤄지는 작은 수술에만 적용할 수 있었고 긴 시간이
걸리는 대수술의 마취제로 사용되기는 어려웠다.

★ 에틸에테르 – 무통 수술시대의 도래

맨 처음 에틸에테르(Ethyl ether)를 수술에 사용한 사람은 미국 작은 시골 마을의
롱(Crawford Williamson Long)이란 의사였다.
그는 필라델피아 대학에서 화학과목을 수강하였고, 에틸에테르를 흡입하면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몽롱해져 통증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842년 3월 20일 롱은 목에 종기가 난 청년의 수술에 에틸에테르를 사용했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그 청년은 전혀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거둔 성과를 바로 발표하지 않았고 몇 차례 더 시도를 한 후
1849년 12월이 되어서 발표를 했는데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웃음가스의 치과의사 호러스는 자신의 친구 모턴(1819-1868)을 찾았고 모턴은
자신의 스승인 유명한 지질학자 잭슨을 소개하였다. 잭슨은 웃음가스의 불안정성
을 이유로 연구를 중단토록 조언했고, 또한 과거 화학 실험을 할 때 부주의로 염소
가스를 들이켰다가 곧바로 에틸에테르를 흡입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모턴은 자신의 애견으로 한적한 호숫가에서 이를 실험했고 개의 마취를 성공하였다.
이후 1846년 자신의 치과를 찾아온 환자를 가지고 에틸에테르를 흡입하도록 한 후
신속하게 발치수술을 하였다.
그다음 공개강의를 하기로 결정을 하고 자신은 마취의사의 역할을 하고 외과의사를
섭외해 수술을 집도하도록 하였다. 선천적으로 아래턱에 종양이 있는 환자를 선택
하였고, 1846년 10월, 외과의사 워렌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수술실에 나타났다.
모턴은 겨우 완성한 에틸에트르 흡입기를 환자의 코와 입에 씌우고 마취를 했고,
워렌의 수술은 5분에 걸쳐 이루어졌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이 성공하자 모턴은 바로 특허국에 특허를 신청했다. 하지만 스승 잭슨과의
특허 논란이 시작되었다. 미국 정부가 마취기술을 발명한 사람에게 10만 달러의
격려금을 주기로 결정하면서 ‘전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잭슨은 모턴에게 에틸에테르를 사용하도록 권하였다고 주장하였고 이 와중에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격려금은 흐지부지 되었다.

두 사람의 말로는 좋지 않았는데, 모턴은 특허우선권 관련 소송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구제금으로 겨우 연명하는 등 비참한 말년을 보냈고, 잭슨 역시
정신이상에 걸려 7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지내다가 눈을 감았다.

★ 모턴의 묘비 문구

모턴은 1868년 7월 15일 뉴욕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비에는
마취기술을 외과수술에 응용한 그의 공적을 기리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외과 수술 환자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킨 마취기술의 발명자,
그 공로가 실로 대단하도다.
지난 날 외과수술에서 드리웠던 고통의 그림자가
눈부신 과학의 성과로 깨끗이 씻어졌도다.”

==========================================================

오늘은 의학의 역사 가운데 마취 진통제의 출발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과거 수술은 마취가 없으니 건장한 청년들이 환자를 꽉 붙잡은 상태에서 강제로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외과 수술전에 격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하지요.
이후 1700년대 들어서 과학이 발달하게 되면서 '웃음가스'라고 불렸던 이산화질소
가 먼저 등장하여 쾌락을 일으키는 작용이 우선시되다가 우연히 수술에 사용되게
됩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밖에 쓰일 수 없었던 단점이 있었는데, 에틸에테르가 등장하여
긴 수술이 가능해졌습니다.   모든 훌륭한 발견은 우연한 사건에 의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에틸에테르도 우연하게 실험실에서 실수에 의해서 발견이 됩니다.

스승이었던 잭슨이 자신의 경험을 치과의사인 제자 모턴에게 일러주었고 모턴은
먼저 애완견으로 실험을 한 후 발치수술을 성공하고 연이어 턱의 종양 환자의
수술을 공개 시연으로 발표를 합니다.

하지만 스승과 제자 사이에 "돈" 문제가 끼이자 문제가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둘은 전쟁과 같은 소송 싸움을 전개하고, 남북전쟁이 일어나 상금
자체가 소멸되어 버리고, 이후 각자 불행한 결말을 맺게 됩니다.

페니실린이 우연히 발견이 되었고, DNA의 구조도 우연히 꿈을 꾸고 발견이 되
듯이 세상의 뛰어난 발견이나 발명은 우연하게 발생함이 많음을 알 수가 있었고,
이렇게 위대한 업적도 소송을 통해 분쟁을 가지게 되면서 스승과 제자가 원수가
되어버리는 세상일의 흐름도 배우게 됩니다.

다음에는 다른 내용으로 더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과의사의 등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