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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7. 2016

<나의 대표시를 말한다>

최두석, 나희덕 엮음

<나의 대표시를 말한다>,  최두석, 나희덕 엮음


                        강 일 송


오늘은 시(詩)모음집 하나를 보겠습니다.


엮은이는 시인 최두석, 나희석입니다.  원로에서 신예까지 저자들이 추린 시들을

작가의 시적배경과 설명을 곁들인 책입니다.


시집은 타 문학영역에 비해 베스트셀러가 많지 않고 스테디셀러가 많으며, 신간이

적은 특징이 있습니다.    짧고 간결하지만 대중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도

수필이나 소설에 비해서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간결함 속에 깊음을 가진 시의 세계는 단단한 오징어처럼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진한 육즙이 배어나오는 듯한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몇 작품 골라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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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위반


               이 대 흠 (1968~)


기사 양반! 저짝으로 조깐 돌아서 갑시다

어칳게 그란다요 버스가 머 택신지 아요?

아따 늙은이가 물팍이 애링께 그라제

쓰잘데기 읎는 소리 하지 마시오

저번챀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노인네가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저번챀에도

내가 모셔다 드렸는디


                 - (“귀가 서럽다” 2010)


오늘 볼 첫 시는 구수한 사투리로 쓰여진 시골의 버스에서 벌어지는 일상에 대한

시입니다.

무릎이 안좋은 시골어르신이 버스를 타서는 정류장이 아닌 다른 자기가 원하는

곳에 버스를 세워달라고 하면서 실갱이를 벌이는 모습입니다.

버스기사가 퉁명스럽게 대꾸를 하지만 결국은 모셔다 드릴 태세입니다.


마지막 말이 인상깊지요?^^  지난번에 태워드린 기사가 바로 자기인데 못 알아본

다면서 마무리합니다.


소설이나 수필에서 맛볼 수 없는 당김과 긴장이 시에서는 존재합니다.

압축된 시어속에 의미가 깊숙이 배여있어, 반복해서 읽으면 그 진맛이 우려져 나옵

니다.


우리 사회에도 저 버스기사와 같이 노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다음 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터 미 널


               이 홍 섭(1965~)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강원도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병원으로 검진 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 (“터미널” 2011)



어린 시절, 터미널에서 일어난 일과 현재의 일을 오버랩해서 보여주는

시입니다.   

세상사에 쑥맥이셨던 아버지는 터미널 근처의 다방을 다녀오셨을 것이

분명하다 합니다.   홀로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버스가 떠나기 전 돌아오셨

는데,  이제 세월이 흘러 늙으신 아버지를 아들이 모시고 터미널로 옵니다.


역사는 흐르고 되풀이 되듯이, 이제는 아버지가 버스 앞에서 아들을 기다립니다.

절대 여기를 떠나면 안된다는 아들의 다짐에 버스가 와도 마냥 그 자리에서

아들을 기다립니다.


혹시 길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움을 안고 있는 아버지는, 어느새 이 터미널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가끔 앨범에서 아버지 젊은 적 사진을 봅니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머리숱도

많고 젊어서 패기가 넘칩니다.

지금은 그때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들어 버린 나를 보고 또 아버지를 봅니다.

아버지는 나의 미래이겠지요?



마지막으로 한 편 더 보겠습니다.




의  자


             이 정 복(1964~)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시인은 어머니의 입을 통해서 개인의 철학을 이야기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철학책에 안 나오는 자기만의 철학이 생깁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자리만 생기면 번개처럼 그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죽 했으면 노약자석이나 임산부석이 따로 있을까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서 있는 것보다는 앉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어머니는

아시는 것이지요.

인간만 아니라 확장된 의식으로 참외와 호박까지도 그들만의 의자를

마련해 줍니다.


장남으로 아버지한테 의자가 좋은 의자였다는 말을 보니 시인은 효자였나

봅니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결국은 그늘 좋고 풍경 좋은 곳에 의자 몇 개

내어 놓는 다는 말에 공감이 됩니다.

가족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다들 의자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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