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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7. 2016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강신주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강신주


                  강 일 송


오늘은 조금은 낯선 주제, “우리 시에 비친 현대철학의 풍경”을 놓고

철학자 강신주(1967~)가 쓴 책을 한번 보겠습니다.


저자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드문(?) 대중성을 확보한 철학자입니다.  여러

베스트셀러를 가지고 있으며, 장자, 노자의 철학에서 문학과 철학과의 만남

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행보를 보이고 진보성향의 시니컬한 이미지로서

대중에게 다가오는 학자입니다.

함양이 고향인 그는 연세대에서 공학을 전공하다가 돌연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철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밟습니다.    


전혀 생소해 보이는 시(詩)와 철학의 만남을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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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이나 철학책은 다른 장르의 글보다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에는 주관적이고 낯선 이미지들이, 그리고 철학책은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

  용어들이 산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인과 철학자가 친숙한

  세계가 아닌 원초적으로 낯선 세계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입니다.


* “일상적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여행이다.

  예술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인 삶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즉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  예술은 사실과 안전으로 상징되는 친숙한 세계를 뒤흔들어 느낌과 위험으로

  가득 찬 낯선 세계로 인도하는데, 한 시인이 자신의 시로써 독자들의 친숙한

  내면을 와해시키지 못한다면 진정한 시인이라 말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 인문학적 성찰이야말로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이고 일상적 세계

  를 동요시키고 낯선 세계를 도래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 시인이 느끼는 것은, 기존의 말로는 표현될 수 없는 낯선 상처 혹은 어떤

  감각입니다.  

  반면, 철학은 개념들을 창조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엮음으로써 새로운 사유

  문법을 만드는 학문입니다.


* 시인이 물속으로 직접 들어가 온갖 물고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존재

  라면, 철학자는 그물로 끌어올린 물고기를 다시 확인하고 만져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는 주관적이고, 철학은 객관적 혹은 보편적인 것이라는 인상이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 시와 철학은 인문학의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둘 다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친숙한 세계를 낯설게 하는 인문학의 본령에 충실한

  것입니다.



이쯤에서 시(詩) 한 편 보면서 작가의 평을 같이 보겠습니다.



팔당대교 이야기


        박 찬 일



승용차가 강물에 추락하면

상수원이 오염됩니다

그러니 서행하기 바랍니다


나는 차를 돌려 그 자리로 가

난간을 들이받고

강물에 추락하였습니다

기름을 흘리고

상수원을 만방 더럽혔습니다


밤이었습니다

하늘에 글자가 새겨졌습니다

별의 문자 말입니다

승용차가 강물에 추락해서

상수원이 오염되었습니다

서행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은 것은 사람들이 모릅니다

하느님도 모릅니다



박찬일(1965~) 시인이 어느 날 팔당대교에 갔다가 충격적인 경고판을

보게 됩니다.  

“승용차가 강물에 추락하면 상수원이 오염됩니다

그러니 서행하기 바랍니다“

이 글을 쓴 공무원은 물에 빠져 죽은 한 사람의 생명보다는 1000만

서울 시민의 안전을 더 걱정했는지도 모릅니다.


<팔당대교 이야기>는 개인의 소중한 생명도 효율이란 논리로 무화시키는

현대 사회의 단면, 다시 말해 개인을 그 질적인 고유성이 아니라 양적인

존재로 사유하는 세태에 대한 풍자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상상 속이지만 시인이 한강물에 뛰어든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본주의가 점령한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시인이 느꼈을 고독을 생각해

보면 아마 해답의 실마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은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먹고 자라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더 깊은 속내를 이해하고 싶다면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

1949~) 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사랑, 인정, 혹은 관심을 받으려는 욕망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통찰했

던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책 <인정투쟁 Kampt un Anerkennung, 1992> 를 보면, 사회적 투쟁

과 갈등의 최종적 목표는 “상호인정”에 있습니다.  

나와 타자가 모두 자유로운 주인이 되어 만났을 대 비로소 상호인정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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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詩)로 대변되는 문학과 철학과의 마주함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전혀 연관이 없고 상극처럼 보이는 시와 철학의 세계를 저자는 과감히

연결시키고 있는데, 평범함과 매너리즘의 일상을 낯섬의 세계로 인도하는

예술과 결부시킴으로서 그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즘 불어닥친 인문학 열풍이 곧 “인간의 진정한 삶”을 복원하는 의미로

본다면 근대화 이후 도구로 전락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첨병에 시와 철학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자는 21편의 시를 통해 시인과 그와 연관된 철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위에 예를 든 <팔당대교 이야기>도 그 중 한편입니다.


물에 빠진 한 명의 생명과 1000만명의 불편함이 어느 것이 더 소중한지

효율성으로 놓고 본 세태에 시인은 항거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그 시인의 속내를 타인의 인정을 받는 욕망의 존재가 인간

의 본질이라는 악셀 호네트의 철학을 에둘러서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이 짧은 시를 읽고 여러분은 예술의 원초적 기능

이라고 이야기한 일상을 동요하게 하고 낯섬으로 인도하는 느낌을 받으셨

는지요?^^


저는 보통사람이라면 지나쳐버릴 안내경고판 하나에서, 누에에서 실을 잦아

올리듯이 시어를 잦아서 한편의 시를 완성시킨 시인의 감각과 능력에 감탄이

절로 솟아오르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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