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헌 서재 Apr 16. 2020

<교양 있는 사람>

“2020 현대문학상(現代文學賞) 수상시집”中

<교양 있는 사람>
“2020 현대문학상(現代文學賞) 수상시집”中

                                              강 일 송

오늘은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현대문학상
2020년 수상작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현대문학상은 <현대문학(現代文學)>에서 1955년에 제정하여 1956년 1회 현대문학상을 시상한 이래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시, 소설, 희곡, 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상한다고 합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학상 중 하나이지요.

오늘 볼 시는 2020년 제 65회 현대문학상 시부문 수상작과 함께 수상시인의 이야기,
그리고 심사위원의 심사평과 제 개인적인 감상 등을 전개해 보려고 합니다.

===================================================================

★ 교양 있는 사람

                                     유 희 경(1980~)

교양 있는 사람은 노크하며 묻는다 똑똑 계십니까 교양 있는 사
람이여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이 없군요 당신을 위해
던져버렸으니까요 그것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반듯
하게 접힌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선한 이마를 훔친다 경치가 훌륭
하군요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다린다 어서 그가 말해주기를
한 층 한 층 올라설 때마다 떠올렸던 영광된 기억과 희망 찬 미래
의 이야기들을 거기서 얻어낸 빛나는 영감들 그리고 그가 낚아챈
상념의 거센 발버둥과 울음소리에 대해서도

몹시 피곤하군요 그는 졸린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그에게 의자
를 가져다주고 그러면 교양 있는 사람은 자리에 앉아 깊은 잠에 빠
지는 것이다 이런 일은 매번 반복되지만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
은 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내가 기다리는 교양 있는 사람이고
언젠가 내가 기다리는 말을 해주리라는 사실을

-----------------------------------------------------------------------------

◎ 현대문학상 심사평 – 문정희 시인

언어의 남용과 타락을 걱정하는 시대, 정직한 언어로 새롭고 개성적이면서도
자기만의 고유한 시공간을 펼쳐 보이는 시인은 누구일까.
올해의 <현대문학상>을 심사하면서 여전히 진지한 탐색한 시어와 밀도를 지닌
후보작들을 만날 수 있어 흐뭇한 온기에 휩싸였다.

수상자를 유희경 시인으로 결정하는 데에는 심사위원들 간의 이의가 없었다.
그는 상실과 소외의 한가운데에서도 고요를 확보하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기대와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기다리는 언어는 과장이나 자기연민이
없었고 타고난 숨결처럼 자연스럽고 잔잔했다. 그 호흡 속으로 시들이
저물녘처럼 스며들었으며 그 리듬은 아프고 아름다웠다.
행과 연을 구분하지 않고 떠난 산책 사이로 흐르는 긴장과 이완 혹은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만드는 구성의 솜씨는 유희경만의 특별함이라고 하겠다.

‘교양 있는 사람은 노크하며 묻는다 똑똑 계십니까 교양 있는 사람이여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이 없군요, 당신을 위해 던져 버렸으니까요’

그의 시는 마치 연극의 장면처럼 펼쳐졌고 또박또박 읊조릴 다음 대사가
기다려지는가 싶다가도 이내 낮은 시공간을 다시 보여주었다.
단조롭고 군더더기 없는 감각이 뜻밖에 시의 새로움과 매력을 일깨웠다.
‘예술은 인간에게는 종교적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가장 멋진
통로’라고 한 페데리코 펠리니의 말을 그에게 축하의 말로 드리고 싶다.

-------------------------------------------------------------------------------

◎ 현대문학상 수상 소감 – 유희경
“우리는 왜 집으로 돌아가는 걸까요”

매일 아침 버스를 탑니다. 버스는 두 개의 터널과 고가도로 하나, 세 곳의
궁(宮) 앞을 지납니다. 그것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걸어서
서점까지 갑니다. 서점을 운영한 지는 3년이 되었습니다. 서점 앞에는
플라타너스 네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종종 변하곤 합니다.

서점의 저녁 창문에는 내가 있습니다. 그곳의 나는 어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때로 물어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곳에 대해서, 그곳의 이곳에
대해서, 묻지 않습니다. 궁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곳도 이곳도 그곳의
이곳도 거기에 있는 나에 대해서도. 그저 있을 뿐이므로.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니까. 그렇습니다로 요약되는 세계.

매일 밤 버스를 탑니다. 버스는 세 개의 궁 앞과 고가도로 하나, 두 개의
터널을 지납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변화하지 않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걸어서 집까지 갑니다. 나는 가끔 알고 싶습니다. 집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시를 쓰는 일은 두 개의 터널과 고가도로 하나 세 곳의 궁을 지나 어디론가
가는 일이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무얼 기다리는지 잊어버리는 일이며
혼자가 되는 일이니 건너편의 나를 우두커니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일이라고
믿습니다. 열두 해 동안 오가며 그렇게 시를 써왔습니다. 도중에 그만둘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싶었던 적은 없습니다.
시를 쓰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저의 자리는 박수를 치는 쪽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에 불만이
없었던 것은, 그래도 시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저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얻은 것들을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현대문학상>의
2020년 시부문 수상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현대문학상은 1956년 1회 수상자를 낸 이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수상자인 유희경(1980~)시인은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2008년 <조선일보>로
등단을 하였으며 시집으로 <오늘 아침 단어>,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등이 있습니다.

먼저 그의 수상작인 시를 본다면, 시의 감상은 미술작품이나 음악 감상과 같이
딱 정해진 정답은 없지요.  그의 시는 우선 행과 연의 구분이 없습니다.
시에서 쓰는 시어는 시인의 의도에 따라 일부러 표준말을 쓰지 않고 사투리를
쓰거나 맞춤법을 어기기도 합니다.  행과 연을 구분하지 않는 것도 시의 맛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지요.

시의 주인공은 교양 있는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고 늘 겸손되이 두 손을 모으고
응대하고 대접합니다.  여기서 교양 있는 사람이란 세상에서 인정을 받고 성공을
한 사람을 말하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는 이미 교양이
있다고 확인된 사람에게서 당신도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를 고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인정 욕구'가 있습니다.
또한 그가 살아온 여정의 영광과 고통, 고초도 함께 듣기를 원합니다.

심사평을 한 문정희(1947~)시인은 이미 여고생때 시집을 내었고, 1969년에 등단,
이후 1975년에 <현대문학상>을 21회로 수상을 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류
시인이지요.  심사평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본다면 심사평이 이렇게 시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기다리는 언어는 과장이나 자기연민이 없었고 타고난 숨결처럼 자연스럽고
잔잔했다. 그 호흡 속으로 시들이 저물녘처럼 스며들었으며 그 리듬은 아프고
아름다웠다."
그또한 40여년 전에 이미 이 상을 받았고 그 긴 세월의 흐름을 느끼고 후배 시인의
성장에 기뻐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수상 시인의 소감인데, 이또한 무척이나 시적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버스를 탑니다. 버스는 두 개의 터널과 고가도로 하나, 세 곳의
궁(宮) 앞을 지납니다. 그것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그의 일터인 "서점"으로 갑니다.  3년 정도 서점을 운영했다고 하지만
경영 능력은 그리 탁월해 보이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는 시를 써온 것도 이처럼 두 개의 터널을 지나고 고가도로 하나, 세 곳의
궁을 지나는 것과 같이 써왔다고 합니다.  그는 늘 박수치는 자리에 있었지만
어느새 박수 받는 자리에 서게 되었고 어색한 자리지만 감사를 표하고 있고
또 여느날처럼 버스를 타고 두 개의 터널과 고가도로 하나, 세 곳의 궁을
지나듯이 그가 좋아하는 시를 쓸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시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시인뿐 아니라
두 개의 터널을 지나고 고가도로 하나, 세 곳의 궁을 지나는 여정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하고 무용을 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열정만큼 인정받고 그들의 열정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세상이
되기를 고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