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전> 세상 가장 따뜻한 사전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
강 일 송
오늘은 우리 시대의 뛰어난 카피라이터이자 작가인 정철 대표의 새로운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정철 작가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지금은 정철카피 대표,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초빙교수로 있습니다.
저서로는 <내 머리 사용법>, <불법사전>, <인생의 목적어>, <머리를 9하라>,
<한 글자>, <카피책>, <틈만 나면 딴 생각> 등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없는 새롭게 자기 방식으로 규정한 수많은 일상 단어를 모아놓은
책인데 그중 추려서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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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다 –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안달하는 것이 삶
일정 기간 소유권을 부여받다. 그러나 그 일정기간이 지나면 소유를 주장할 수
없다. 주장을 하려면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을 열 수 없으니까.
땅에 묻히니까. 결국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안달하는 것이 삶.
★ 나그네
나, 그네 타고 삐걱거리며 저 하늘 뭉게구름 노닥거리는 것도 보고 먼 산
진달래 하품하는 것도 보고 발밑 돌멩이 토라진 모습도 구경하면서 헐렁하게
느슨하게 시시하게 살 테니 내게 세상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을 설명하려 하지
마세요, 라는 긴 문장의 맨 앞 세 글자.
★ 대화
눈빛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 표정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 손을 잡는 것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 가슴을 껴안는 것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
썩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입을 사용할 수도 있다.
★ 딸
그냥 예쁘다. 이래서 예쁘고 저래서 예쁜 게 아니라 그냥 예쁘다.
딸이 왜 예쁜지 모르는 사람은 설명해줘도 모를 것이고, 왜 예쁜지 아는
사람에겐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그냥 예쁘다.
어쩌면 세상 설명의 절반은 말의 낭비.
★ 독서
나는 책을 읽고 책은 나를 읽고, 책과 내가 마주보고 서로를 읽는 것이 독서.
나도 그렇지만 책도 맨날 똑같은 나를 읽으면 재미없겠지.
싫증나겠지.
책에게 늘 새로운 나를 보여주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독서다.
★ 말
잘하면 좋은 것. 그러나 못해도 되는 것. 말을 잘 못한다면 누구보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면 된다. 말은 이렇게 쉽게 했지만
실은 잘 듣는 게 훨씬 더 어렵다.
★ 맛집
귀의 일. 맛이 혀의 일이라면 맛집도 혀의 일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집을 찾는다. 분명 귀의 일이다.
귀는 단맛과 쓴맛을 구별하는 능력이 없다.
★ 백화점
시계, 반지, 핸드백을 판다. 거울, 비누, 샴푸를 판다. 냉면, 쫄면, 회덮밥을
판다. 없어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건 다 판다.
그런데 사랑은 팔지 않는다. 배려, 긍정, 감사, 믿음도 팔지 않는다.
없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건 하나도 팔지 않는다.
★ 보험
모험.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미래를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약관에 맡기는 모험.
★ 봄
겨울이 갔다는 신호. 여름이 온다는 신호. 추위가 더위로 바뀐다는 신호.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뀔 때 아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노란불 같은 것. 봄날은 짧다. 봄날은 간다.
★ 사과
나무에서 떨어져 아래를 향한다. 용서를 비는 사과도 먹는 사과처럼
아래를 향해야 한다. 눈도 고개도 허리도, 입에서 나오는 말도 모두
아래를 향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무릎까지 아래를 향해야 한다.
뉴턴은 아래를 향하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그대 앞에 선 그 사람도 아래를 향하는 그대의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릴 것이다.
질량이 있는 두 물체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그 따뜻한 법칙이 그 사람과
그대 사이에도 적용될 것이다.
★ 사랑
같이 있어주는 것. 같이 걸어주는 것.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
같이 울어주는 것. 같이 웃어주는 것.
이 모든 문장에서 ‘주다’라는 개념을 빼면 사랑.
사랑은 같이 있는 것. 같이 걷는 것. 같이 비를 맞는 것.
같이 우는 것. 같이 웃는 것.
★ 생명
딱 세 문장. 태어난다. 성장한다. 사망한다.
모든 생명은 이 세 문장을 살다 간다. 첫 문장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마지막 문장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성장. 오늘도 할 수 있는 일이 성장.
성공이 아니라 성장.
★ 소리
바람 부는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 뱃고동 치는 소리.
새 우는 소리. 벌레 우는 소리. 창문에 비 부딪히는 소리.
눈 쌓이는 소리. 눈 녹는 소리. 소리는 충분하다.
그대와 내가 더 보태지 않아도 된다.
★ 쇼핑
상품의 위치 이동. 예전엔 상품을 만나러 사람이 갔는데 이젠 사람을
만나러 상품이 온다. 사람은 더 게을러졌고 상품은 더 부지런해졌다.
사람은 이제 두 다리의 새로운 용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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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철 카피라이터의 촌철살인의 글들을 함께 보았습니다.
역시 정철 작가의 생각의 반전, 날카로움, 번뜩임, 비틀어 보기 등등 다양한
생각의 도구를 이용한 우리 단어들의 새로운 정의를 보니 저자의 말처럼
일상의 단어들도 "사람"의 냄새, 성분들이 다 들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안달하는 것이 삶이고,
뭉게구름이 노닥거리고 진달래가 하품하고 돌멩이가 토라지는 것을 보고
느릿하고 시시하게 시간을 보내는 이가 나그네였습니다.
대화라는 것은 입 말고 눈빛, 표정, 손 잡는 것만으로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었고
사랑은 그냥 같이 있어주고 같이 웃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이었습니다.
맛집은 혀의 일이 아니라 귀의 일이었고
쇼핑은 상품의 위치 이동인데 이제는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 찾아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백화점은 그럭저럭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것만 팔고 진짜 필요한 것은
팔지 않는 곳이었네요.
보험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미래를, 아무도 모르는 약관에 의지한 모험이고,
사과는 먹는 사과든 말하는 사과든 아래로 향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만유인력의
법칙이 따뜻한 법칙임은 오늘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질량이 있는 두 물체가
서로를 당기는 법칙 말이지요.
다음에 한번 더 이책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오늘도 가질 수 없는 것에 너무 안달하지 않고, 파란 하늘도 한번 쳐다보고
지나가는 발치에 있는 작은 꽃도 한번 들여다보는 여유의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