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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May 30. 2020

<습정, 習靜>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습정, 習靜>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해 헌 (海 軒)

오늘은 정신없이 자기들의 주장과 새로운 뉴스들이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
침묵과 고요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고요함의 중요성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는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정민(1961~)교수로 한양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지식경영에서 한국학 속의 그림까지 전방위로
연구하고 있으며, 그동안 <일침>, <조심>, <석복>, <마음을 비우는 지혜> 등등 많은
책이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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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정신정, 沈靜神定 - 차분히 내려놓고 가라앉혀라

침정(沈靜) 즉 고요함에 잠기는 것은 입 다물고 침묵한다는 말이 아니다. 뜻을
깊이 머금어 자태가 한가롭고 단정한 것이야말로 참된 고요함이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침정함에 방해받지 않는 것은 신정(神定) 곧 정신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침정은 신정에서 나온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 번잡한 사무를 보고 말을
많이 해도 일체의 일렁임이 없다.
가만히 내려놓고 차분히 가라앉히는 것이 먼저다.
고요함은 산속에 있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있다.

★ 심유이병, 心有二病 - 공부는 달아난 마음을 되찾는 일

바른 몸가짐은 바른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이 비뚤어진 상태에서 몸가짐이 바로
될 리가 없다. 다산은 <대학공의>에서 ‘몸을 닦는 것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달렸다.’라고 하였고, 마음에는 두 가지 병이 있는데, 하나는 마음이 있는 데서
오는 병이고, 하나는 마음이 없는 데서 오는 병이라 하였다.
즉, 마음은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마음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을 지니느냐가 더 문제다.
맹자는 “사람이 닭이나 개가 달아나면 찾을 줄 알면서, 마음은 놓치고도 찾을
줄을 모른다. 공부란 별 것이 아니다. 달아난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마음이 주인 노릇을 못하면 몸은 그대로 허깨비가 된다.

★ 후적박발, 厚積薄發 - 두텁게 쌓아 얇게 펴라

이 말은 소동파가 벗 장호를 전송하며 쓴 <가설송장호>란 글에 처음 나온다.
소동파는 떠나서 배움에 힘쓸진저, 널리 보고 핵심을 간추려 취하고 두텁게
쌓아 얇게 펴라고 하였다. 폭넓게 보고 그 가운데 엑기스만을 취해 간직하고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아껴서 꺼내 써라는 말이다.
그래야 수용이 무한하고 응대가 자유로워진다. 가난한 집 농사짓듯 하는
공부는 당장에 써먹기 바빠 쌓일 여유가 없다. 허둥지둥 허겁지겁 분답스럽기
만 하다.

★ 세척진장, 洗滌塵腸 - 위로와 기쁨이 되는 풍경

내가 다산초당의 달밤을 오래 마음에 품게 된 것은 다산이 친필로 남긴 글을
읽고 나서다.
“나는 9월 12일 다산의 동암에 있었다. 우러러 하늘을 보니 아득히 툭 트였고,
조각달만 외로이 맑았다. 남은 별을 여덟아홉을 넘지 않고, 뜨락은 물속에서
물풀이 춤추는 듯하였다. 옷을 입고 일어나 동자에게 퉁소를 불게 하자 그 소리가
구름 끝까지 울려 퍼졌다. 이때에는 티끌세상의 찌든 내장이 말끔하게 씻겨나가
인간 세상의 풍경이 아니었다.”
다산이 적막한 귀양지의 삶을 형형한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이따금
우연히 맞닥뜨린 이 같은 순간이 주는 위로 때문이었을 게다.
누구에게든 다산초당이 있다. 먹고사느라 바빠 등 떠밀려 허겁지겁 살아온
세월 속에서,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떠올리면 기쁨이 되는 풍경들이 있다.
나의 다산초당은 어디인가?

★ 거년차일, 去年此日 - 눈앞의 오늘에 충실하자

벗들이 어울려 놀며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 벌주를 마시기로 했다. 한 사람이
물었다. “지난해 오늘(거년차일)은 어떤 물건인가?” “지난해는 기유(己酉)년이었고
오늘은 21일이니, 식초(醋)일세.” 그는 벌주를 면했다.
청나라 유수의 <고잉>에 나오는 말이다. 일종의 파자 놀이다.

글을 읽다가 문득 지난해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일기를 보니 여전히 논문을 들고 씨름 중이었다.
금년에는 작년이 그립고, 내년이면 금년이 그리울 것이다. 아련한 풍경은 언제나
지난해 오늘 속에만 있다. 눈앞의 오늘을 아름답게 살아야 지난해 오늘을 그립게
호명할 수 있다. 세월의 풍경 속에 자꾸 지난해 오늘만 돌아보다 정작
금년의 오늘을 놓치게 될까 봐 마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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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전인문학자인 정민 교수의 새로운 책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번잡하고 바쁘며 늘 뉴스의 홍수 속에서 사는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고, 마음의 고요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가르침을 주고 있네요.

먼저 나온 글은, 침정신정이었는데 무조건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차분하게 하면 고요함이 따라 온다는 말이었고, 이는 바쁜 회사 생활이나
사회 생활 속에서도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뒤에 나오는 맹자의 말에서도 마음이 주인 노릇 못하면 몸은 허깨비가 되고
공부란 다름이 아니라 달아난 마음을 찾는 일이라고 하니, 마음이 얼마나 중요
한지 다시 깨닫게 됩니다.
불교에서도 일체유심조 라고 하여,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고
하였지요.

다음 나온 글은 후적박발이었습니다. 이는 넓게 두텁게 공부를 하고 이를 펼칠
때는 조금씩 내어놓으라는 지혜의 말이었습니다.  제대로 쌓이기도 전에 이를
마구 내놓으면 숙성된 지식이 아니고 얕은 지식으로 금방 밑천을 드러내지요.
후적박발이 되어야 수용이 무한하고 응대가 자유로워진다는 말은 지혜롭기
그지 없습니다.

다음은 저자가 늘 중요시하는 인물인 다산 정약용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그는 전라 강진에 귀양을 가서 지냈는데 다산초당을 짓고 10여년 간 지내며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였다고 하지요. 다산이 힘든 귀양 시절을 견뎌낸 것은
순간순간 위로가 되는 자연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맑은 밤하늘에 조각달이 걸리고 바람이 살랑거리며 불고 뜨락의 물은 물풀이
흔들리며 고요함을 자랑하고 있는 풍경이 눈 앞에 있습니다.
저자는 누구나 자신만의 다산초당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누구에게는 자기의
조그만 다락방이, 누구에게는 자기의 서재가, 누구에게는 자신의 산책길이
기쁨과 위로가 되는 공간이 될 수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현재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글을 보았습니다. 금년에는 작년이 그립고
내년에는 금년이 그리울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살짝 과거를 미화하는 성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나간 날은 늘 아쉽고 그립기 마련입니다.
늘, 지금, Now,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에 깨어 있어야만 인생 전체가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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