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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뻬드로 Sep 29. 2019

글쓰는 것에 대하여

첫 글을 연다

하루에 한 바닥씩 쓴다는 것. 그것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하루에 한 줄씩이라도 쉽지않을 터. 하지만 이것이 내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는데에 사용된단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과 지식들을 글로 남기기 시작하면 그것이 정리되고 체계화된단다. 매일 한 바닥씩 무슨 글이든 채워보기로 한다.


그러고보면 하루를 어떻게 시작해서 살고 잠자리에 들었나 싶다. 일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의 짧은 정리라도 남는다면 나중에 읽다가 꿀잼이겠지? 짧은 생각이나 긴 산문이나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나 그것이 정리되고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은 내 인생에 소중한 재산이 될 것이 틀림없다. 마치 오래된 옛 사진앨범을 들춰보는 것과 같은.


글을 쓸때마다 느끼는 것은 내가 평소에 생각지 않았던 감상에 젖는 것이다. 젖어든다. 빠져든다. 글을 쓴다는 것은 지성의 역할이 큰게 아닌가? 감성이 거드는 것인가? 있는 것을 모양을 갖추어 적어내려가는 것은 그 소스가 필시 정보에 있을터인데, 마음이 출렁거리는 것은 왜 일까? 억지를 써서 감동적인 글을 쓰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개그콘서트 같은 코믹한 글을 쓰고 싶은 것일까?


몇년 전, 손글씨라고 불리는 캘리그라피 쓰기를 배운 적이 있다. 그런 방식의 글쓰기는 무척이나 그림과 닮아서 필체에 마음이 쏟아져 투영되곤 했다. 예쁘고 개성있게 그리고 싶은 마음과 글의 내용이 내 마음을 드러내려고 쏟아져 나오는 것의 경계에서 늘 괴롭고 또 울컥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못생긴 가오나시가 센의 도움으로 뱃속 모든 쓰레기를 배출해내는 것처럼, 내 속도 그런것 같았다. 그렇게 꿈틀거리는 우울감과 싸우면서 캘리그라피 배우기를 마친 후 붓을 든 적이 없다.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월 1권이상 책을 읽다보니 어떤 저자 강연에서는 '야, 저 정도는 나도 조금 정리하고 노력하면 해볼 수 있겠다'는 착각을 한다. 내 책상에는 지금도 여러 책이 쌓여있는데, 한권을 한번에 읽지 않고 조금씩 돌려가며 읽는다. 그러다보니 한 권의 내용이 선형적으로 정리되지 않기도 하고 머릿속에서 뒤섞이기도 한다. 뒤섞는 것이 요즘 대세라 괜찮을 것 같기도하다.


한 단락을 패러그래프를 완료한다는 것이 쉽지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A4 80매 정도면 단행본 책을 한권 낼 분량이라고 하는데, 그 많은 양을 채워낸 수많은 선배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내 마음을 길게 표현해내어도, 이제껏 학교에서 배우거나 책에 읽은 것을 서술하더라도, 엄마의 잔소리나 아빠의 넋두리를 늘어놓더라도 책 한권을 쓰기는 어려울 것만 같다.


손글씨가 좋아보여서 캘리그라피를 시작했다가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애플 펜슬을 들었다가 뜸하고, 어디서나 글을 써보겠다고 아이패드를 켰다가 키감이 만족스런 키보드를 찾지 못했다고 불만가득한 내 마음을 확인하며 이 글을 맺는다.


2019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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