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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뻬드로 Jan 19. 2020

돈까스는 원래 고급진 음식이었다

칼로 써는 돈까스 예찬

    한때 아주 유행하던 일식돈까스집이 하나 둘 없어지고서는 이렇다할 돈까스집이 없었는데 얼마전 남산돈까스의 체인점이 집근처에 열었다. 모둠메뉴라 등심돈까스, 생선까스, 햄버그스테이크를 한번에 먹었는데, 늘 그 맛은 변함이 없어서 좋다. (많이 비싸진 건 흠이다)


    고기가 두툼한 일식 동카츠, 히레카츠와 달리 한국식 돈까스는 고기가 얇고 넓은게 특징이다. 미소된장국을 주는 대신에 우동국물 같은 맑은 국을 준다. 함께 먹는 소스도 깨를 뿌린 새콤이보다는 하이라이스에 가깝고 튀긴 그것에 끼얹은. 찍먹이 아니라 부먹인 것이지. 달콤하고 구수한 맛은 추억을 돋게 한다. 전채로 내어오는 크림스프는 후추를 살짝 뿌린 후 숟가락을 몸 바깥쪽으로 떠내면서 후루룩 소리나지 않게 먹어야한다고 배웠다. 이 모든 것은 먹을 때마다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아, 귀여운 깍두기, 노란 단무지, 마요네즈 버무린 마카로니도 꼭 있어야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돈까스는 고급지게 칼로 써는 음식이다.

    (일식돈까스는 이미 썰어져서 가지런히 접시에 나오지만) 포크로 쿡 찍어서 못 도망가게 붙잡아놓고 칼로 썰어야 제 맛이지. 그래서 친구들끼리 "칼 좀 썰러 갈까" 하는 말을 자주 했었다.


    내 인생의 첫 돈까스는 부모님과 외식을 처음한 날에 먹은 것이었다. 어느 겨울 저녁 온 식구가 특별히 외식을 하러 갔었다. 간 곳은 대구 서문시장 근처 대로변에 '반줄식당'이라고, 경양식집이었다. 레스토랑이라 불렸다. 엄마는 "웨이터!"라고 소리내어 불렀고 나비넥타이에 조끼를 입은 남자가 왔다. 가죽커버로 된 메뉴판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그날이 기념할만 했으므로 오래된 사진첩에 그 사진이 있다. 고급이었다. 넥타이 정장을 하고 가야할 것만 같은 곳. 그때 국민학교 3학년이었고 88올림픽 이전이다. 지금 추억해보면 우아하게 외식을 가는  자가용 승용차는 없었기에 당연히 버스를 타고 갔었다. 다섯 식구가.


    두번째 추억하는 돈까스는 고등학교 때다. 친한 친구가 학교는 대충 다니고 알바해서 우리를 자주 먹여살렸다. 동네에 있던 '달라스'라는 조금 널찍한 분식집인데, 인테리어도 고급은 아니나 환풍기 주변이 시커먼 그런 저렴이 식당도 아닌 중간정도 깔끔한 식당이었다. 좀 언밸런스했던 건 흰 머리가 성성한 50대 아줌마가 주인이었다. 당시엔 떡볶이를 필수메뉴로 먹지는 않았지만, 지금 추억해보면 떡볶이 라볶이도 잘 했다. 처음 돈까스를 먹었보았던 때와는 7년이 더 흘렀으니 돈까스가 분식집 레벨에서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축산 정육 산업이 활발해졌나보다. 


칼 좀 썰러 갈까?

    어른이 되고 나서는 가끔 호텔에서 하는 결혼식을 참석해 '칼로 써는' 고기를 먹곤 한다. 호주산 쇠고기나 노르웨이산 연어를 구운 것이지. 인당 5만원이 넘는 그 식사도 '대접'받는 느낌이라 좋다. 하지만 평일 저녁 지친 퇴근 길에 배가 심하게 고파 집까지는 못갈 것 같은 때, 돼지등심을 두들겨 얇게 펴고 튀김옷을 입혀 빵가루에 굴린 후 뜨거운 기름에 튀겨낸 바삭한 돈까스를 먹으며 입천장 까지는 게 더 좋다. 바삭해서? 튀겨서? 고기라서? 이유는 모르겠고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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