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 뻬드로 Jan 22. 2020

TV를 거실에서 치우지 맙시다

거실로 모여 TV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가족이 된다면

    바보상자라고 불렀다. 텔레비전을. 나는 많은 공부를 TV로 했는데 말이다. 


    흑백 TV시절 미드 경찰특공대를 보면서 미국의 모습을 엿보았다. 초1 때 14인치 삼성 브라운관 컬러 텔레비전이 집에 들어온 후엔 전격제트작전, 브이(V)를 보며 스릴을 느꼈다. 컬러TV수상기가 아주 많이 보급되었고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듯, mbc대하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에서 다룬 임진왜란은 스케일이 어마어마 했고, 이순신의 충성심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악함이, 일종의 역사의식이랄까 내 마음에 각인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참 많은 TV프로그램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 ebs명의로 장모님과 아내가 겪는 질환에 대해 힌트를 얻었고 kbs 생로병사의 비밀로 중년남성의 운동의 필요성을 뽐뿌 받았다. tvn 응답하라1988로 어릴적 추억을 떠올리며 가족의 소중함, 쌩판 모르는 동네사람들도 함께 커뮤니티의 동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tvn 아는 와이프로 아내를 좀더 애틋하게 아끼게 되었고, kbs 고백부부 "나도 장모님 보고 싶어" 손호준의 대사에 무뚝뚝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데에 서툴었던 사위의 감정이 이입되어 함께 울었다. 


    아내의 조부모님을 전혀 뵌 적이 없으나 mbc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네집(이순재, 최민수...)과 똑같았다는 얘기는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가 없는게 아닐까. jtbc 차이나는 도올로 중국의 근현대사를 훑고 sbs 토크가 하고 싶어서를 보며 짜릿한 지식의 충격을 겪는다. 쌉니다 천리마마트,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통해서 비현실적이나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대리만족도 느낀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콘서트 7080, 유희열의 스케치북, 너의 목소리가 보여와 같은 음악프로그램은 정말 주옥같이 내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낸다.


    이 모든 TV프로그램은 되도록이면 거실에 있는 TV로 시청하려고 한다. 가족이 함께 TV를 시청하면서 같은 장소, 같은 순간에 같은 지식과 같은 경험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에서 짤영상으로 시청할 수도 있겠지. 쏟아지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콘텐츠가 난무하지만,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가족 간에 미디어 소비경험을 공유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각자 방에 문닫고 들어가서 소통이 없어지는 것 보단.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소비하고 소통한다면 아예 안보고 사는 것보다 더 낫지 않을까. 그래서 내 생각은 "이번에 거실에서 TV를 치웠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사람들과 다르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는 '자전거'라는 자유를 선물해 주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