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공황기 유명했던 고인물 화가, 그랜트 우드

책짚고 인터넷 헤엄치기 #4

by Dr 뻬드로

이번에 미술에 대해 구글링을 하다가 발견한 웹사이트. 미켈란젤로부터 앤디워홀까지 꿀자료들을 망라하고 있으니 미술 자료의 갑 오브 갑! 위키아트(wikiart.org)



day 339. 아메리칸 고딕 (American Gothic)

도서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수업 365] 중 354쪽.


아메리칸 고딕이라는 작품을 그린 화가

그랜트 우드 (Grant Wood)

1891년 미국 아이오와 출생

American Regionalism 지역주의 화가*

파리 줄리앙 아카데미와 시카고 예술학교에서 공부


시골그림을 무쟈게 많이 그렸네요. 그럼 바로 감상해보시죠.


아메리칸 고딕 (American Gothic) 1930 유화 62.4 x 74.3 cm


이 작품은 남자 농부와 그 노처녀 여동생을 상상해서 그렸다고 합니다. 옷은 빅토리아 시대 (1837-1901)의 스타일로 그렸습니다. 그림이지만, 감광하기에 너무 빛이 부족한 나머지, 셔터스피드를 5분씩 해야 촬영할 수 있었던 장노출 흑백사진처럼 무뚝뚝한 표정이 압권입니다. 60년대에 찍은 우리 부모님 세대의 결혼사진도 보면 굉장히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데 대동소이한듯합니다.

삼지창은 남성성, 악마, 농부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저에겐 그냥 무뚝뚝한 농기구로 다가올 뿐입니다. 아이오와주의 시골에서 태어나 파리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이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뭔가 굉장히 아련한 향수에 젖어 있었음이 느껴지네요.



*Regionalism


미국 지역주의는 미국의 사실주의자(realist; naturalism; realism) 근대예술운동으로 회화, 벽화, 석판화, 삽화를 포함하는데 미국의 중서부와 남부 시골 작은 동네를 주로 묘사했다. 1930년대 대공황시기에 일어나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의 끝까지 있었던 것으로 더이상의 발전 동력을 잃으며 사그라들었다. 가장 융성했을 때는 30년-35년이었는데 대공황시기에 미국 중심 이미지(행복했을 때?)를 추억하고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예술가들과 스타일이 좀 달랐지만 지역주의 화가들은 보통 보수적이고 전통주의 스타일을 고수해서 미국 대중의 갬성에 어필했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 예술이 미국을 뒤덮는 것을 알고 강하게 맞서기 위해서였다.


미국 지역주의는 대공황 기간동안 지역주의화가 삼두(3인방)이라 불리며 존경받던 그랜트 우드, 토마스 하트 벤톤, 존 스튜어트 커리 세 사람 때문에 유명하다. 셋 다 파리에서 공부했지만 미국 고유의 예술을 만들어내기 위해 헌신했다. 대공황기의 문제 해결방법은 미국사람들이 도시중심에서 벗어나 교외로 농업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출처: https://www.wikiart.org/en/artists-by-art-movement/regionalism#!#resultType:masonry 영문번역: 뻬드로)



찾아보니 아래와 같이 많은 그림을, 그것도 사진같이 묘사가 자세하면서도 꿈에서 본 장면 같은 그림이 많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가 자주 환상 속에 보았던 밀밭 같은 아련함이랄까요.

그랜트 우드의 작품들

출처: https://www.wikiart.org/en/grant-wood



오늘 함께 살펴본 것도 작품으로 시작했으나 작가 소개가 되었네요. 미국이 영국에 대한 열등감, 유럽에 대한 숭배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라의 역사가 몇 백년 밖에 안되지만 거대한 연방국을 건설해낸 미국의 정통 법통을 향한 달음박질이 그랜트 우드를 보며 느껴졌습니다. 대한민국은 조선왕조만으로도 5백년(대하드라마로 다룰 만큼)을 구가했으니, 미국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고 수많은 인종, 문화, 종교가 어울려 살아야만 했던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잘나가던 미국의 경제상황이 1929년에 주식시장 떡락으로 1/4의 노동자가 실업했다고 하니 엄청난 경제적 시련이었겠네요. 나중에 제2차세계대전으로 군수물자를 찍어내면서 경제활황을 맞이한 것 같고요.(홍춘욱, 돈의역사 내용 생각남) 전쟁이 나고 경제가 돌아가니 돈이 돌고 일자리가 늘어나서 과거를 회상하는 지역주의 화풍은 인기가 시들해질 수 밖에 없었겠습니다.


국내 정치적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분쟁을 일으킨다든지, 국내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든지. (트럼프, 시진핑, 아베, 문재인, 푸틴, 메르켈, 김정은...... 모두 대단하십니다! 머리가 빠개지겠어요) 국제 정치, 경제라는게 이렇게 쉬운게 아니네요. (추가참조: 아베 https://brunch.co.kr/@azafa/71)


한 사람의 히스토리를 아주 간략히 돌아보니 새삼 그때 그시절이 궁금해집니다. 부모님 세대는 얼마나 배고프고 힘들면서도 서로 정으로 의지하면서 사셨을까 추측도 되고요. 동시에 과거 회상에 젖어 고인물, 썩은물로 될까봐 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과거를 발판삼아 미래를 향해 성실히 나아가야만 하겠죠. 개인도, 공동체도, 학교도, 종교집단도, 국가도.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나중에 늙어 할배가 되면 옛날을 추억하겠죠. "라떼는 말이야. 이러저러한게 좋았었어. 너희들은 모를거다"

keyword
이전 03화순수예술 vs 상업주의. 살바도르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