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 뻬드로 Feb 24. 2020

고갱은 고흐랑 너무 달라(같은 고씨도 아님)

책짚고 인터넷 헤엄치기 #15

위 그림은 그림그리고 있는 고흐를 고갱이 그려준 것이라고 합니다.



1876년  Bouquet of Peonies on a Musical Score

day 255 폴 고갱

도서 [1 1페이지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수업 365]  266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랑스 파리 - 페루 리마 -프랑스 브르타뉴 - 파리 - 루앙 - 덴마크 코펜하겐 - 파나마 - 마르티니크섬 - 타히티섬 - 마르케사스섬


시그널 음악 휘파람이 들리는 듯 합니다.

이 모든 동선이 55년의 고갱의 삶에 나타납니다.


고갱은 1848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정치적 망명으로 처가가 있는 페루의 수도 리마로 이사합니다. 거기서 몇 년을 보냈습니다. 상인의 배를 탔다가 파리의 증권 중개인(애널리스트?)로 일합니다. 급여를 받게 되고 자연히 한 곳에 정착했을테니 돈이 생겨서겠죠? 그림 수집을 시작합니다.


그림을 단순히 수집하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1876년에는 작품을 출품하고요. 1879년에는 인상주의 화가가 됩니다. 31세 때였네요. 비교적 늦게서야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1882년 주식시장이 붕괴해서 증권 중개인으로서의 일자리를 잃었고 캔버스 제조사 영업사원으로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건너갑니다. 그 때부터 그림에 올인했습니다. 그림 그릴 수 있는 합법적인 핑계를 얻은 것 같아요.

Four Breton Women 1886


그놈의 성격, 역마살


천성이 진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내심이 없었다고 하죠. 그렇게도 옮겨다녔고, 진득하게 붙어있지를 못했네요. 유년시절에 페루까지 다녀온 탓인가요? 아주 바쁘게 돌아다녔습니다. 2년 동안 루앙, 코펜하겐, 중앙 아메리카의 파나마, 마르티니크까지 돌고 다시 브르타뉴로 왔으니 얼마나 많은 거리를 항해했을까요? 오늘 비행기표를 검색해봐도 쉽게 짜여지지 않는 여행일정입니다. 유럽에서 중미까지라니!! (파리-코펜하겐. 차량으로 1200km가 확인되네요) 1888년 브르타뉴에 와서 그린 그림입니다.


설교 후의 환영 (The Vision after the Sermon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새로운 것, 더 새로운 것, 더 더 새로운 것


진정한 크로스 컬처 미술가였던 것 같습니다. 일본식 판화도 좋아했고 중세 스테인드글라스타도 좋아했는데, 히티의 조각품을 찾아 나섰던 것까지 보면 그렇습니다. 평생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맨 것인지, 한곳에 있지를 못하고 여행다니는게 체질이라서 다니다보니 새로운 것 발견잼을 느낀 것인지 선후를 알 수는 없습니다. 마치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 몇 년 취직해서 일하고 퇴직금까지 받아서 1년씩 여행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원래 고흐랑 안맞다


고흐가 자기가 있던 아를로 고갱을 초대했고 예술가의 마을을 세우자고 제안하지만 의견 충돌로 심하게 다투고 헤어집니다. 그 이후에도 고갱은 타히티까지 멀리멀리 자유로운 영혼을 바람에 내어맡기는 듯했죠. 고흐는 그 사이에 자살기도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고요. 고흐가 그런 고갱에게 정착을 요구하다니, 유목민에게 농지를 줄테니 정착하고 절대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제안은, 어디 숨막혀서 살 수 있었을까요?

Night café, Arles 1888 아를의 카페



1893년 노아 노아 Noa Noa Suite: Delightful Land
Tehamana has many parents (The Ancestors of Tehamana)


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에 실패


워낙에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서인가요? 파리에 다시 돌아와서 작품을 발표하지만 냉랭합니다. "너희들 타히티 가봤어? 안가봤으면 말을 하지 말어!"라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작품이 너무 익숙하면 또 식상합니다만, 생소해도 너무 생소하니, 친구들과도 소원해지고 작품도 인정도 못받고. 1895년 모두 처분하고 남태평양으로 이주합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를 그린 후 자살을 기도했었고 1904년에 사망했습니다.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1897



아무것도 모를 때엔 고흐는 너무 유명한데 고갱은 누구야? 아류인가? 형님인가? 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제 두 화가를 살펴보고 나니 서로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한 곳에 진득허니 있질 못해서 공부는 언제 하냐고 늘 잔소리를 들었던 사람으로서 고갱이 너무나 이해가 됩니다. 그림을 늦깎기로 입문해 그리기 시작했던 고갱, 엄청난 작품의 수량과 퀄리티를 보면 그도 그림 천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고갱이 오늘날에도 다니기 쉽지않은 그 먼곳, 엄청난 동선들을 항공편으로 다녔다면 엄청난 마일리지를 모았을 것 같은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며 고갱 공부를 마칩니다.


참고) wikiart.org

작가의 이전글 고맙다 마눌님! 암을 이겨내고 함께 있어줘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