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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훈 Mar 15. 2022

귀농한다면, 이것만은 피하라

가장 중요하지만, 간과하는 이 것

귀농 1~2년 차 일과


계획했던 사업을 진행하면서 점차 육체적 보다는 정신적 노동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일이란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고 고정 인력이 생기거나 농기구를 구매하면서, 같은 일이라 해도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수월해짐을 느끼게 된다. 나 또한 그렇다.


매출 및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생산 수단을 계속 확보하면서 점차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이제는 컴퓨터 앞에서 거래처와 통화하거나 미팅하는 시간이, 쪽파를 돌보고 가공하는 일보다 많아졌다. 여전히 체력적으로 고단한 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렇다한들 귀농 1~2년 차의 그것에 비할바는 못된다.

뉴스토마토


청년 창업농에 선정되던 당시, 적당한 매물이 나오지 않아 한참이 지난 후에 농지를 매입할 수 있었다. 매입한 하우스에는 한창 자라고 있던 멜론이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해당 물건을 인수했고, 졸지에 생에 첫 농지에서 한 번도 한적 없는 그리고 더 이상 계획에 없는 과일을 길러야 했다. 이 부분에서 나의 시행착오 투성이던 1~2년 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성수기


성수기 한창 바쁠 때는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일했다. 한여름에는 하우스 온도가 50도를 훌쩍 넘어가기 때문에, 다른 농부들처럼 낮과 밤이 바뀐 삶을 살아야 했다. 정성을 들인 만큼 멜론은 커갔지만, 그럼에도 힘든 것들이 있었다. 낮은 효율성과 선명히 보일 정도로 소진되는 체력 그리고 고독감이었다.


한번 수세가 잡힌 멜론은 하루가 멀다 하며 커가고, 인간은 그 옆에서 과실에 도움되지 않는 순은 자랄 때마다 제거해야 한다. 멜론을 고정한 매듭이 잘못되지 않았나 매번 섬세히 봐줘야 하고, 잎마름 또는 흰가루병과 같은 병해충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정기적으로 방제해야 했다. 한동에 1000주, 6동에 심어진 6000주의 멜론을 매일 돌보는 유일하며 중대한 일과였다.


그 와중에 일터에 나설 때마다 똑같은 고민을 했었다.

‘사람 한 명만 살까?’


하지만 언제나 비닐하우스에 입장하는 이는 나 혼자였다. 사실 농사일에는 많은 인력이 매일 필요하지 않다. 대신 파종 및 수확 그리고 순을 잡는 것과 같이, 특정 시기에 반드시 해줘야 하는 작업은 혼자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반드시 인력을 구해야 한다. 그와 달리 매일 하는 작업들(앞에서 말한 관리의 측면의 노동)은 혼자 할 수 있다. 아니 혼자 해야 한다는 편이 정확하다.

조선일보


이곳 충남 예산군 기준, 인력소를 통한 남성의 하루 인건비는 14만 원이다. 성수기 여부 그리고 해당 작업의 능숙도에 따라 다르지만, 느끼기에는 그다지 비용의 차이는 없다.


즉 하루만 사람을 사도, 14만 원이 사라진다. 때문에 비용이 치환되는 출하작업이나 반드시 그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인력을 고용하는 것을 주저한다. 경영비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 농부들은 가능한 본인의 노동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이처럼 인력을 고용하지 않는 것은 비용적인 부분이 가장 크지만, 단지 돈 때문에 두세 명의 일을 혼자 하는 무모한 농부는 없다. 문제는 어찌어찌하면 혼자서도 할만한 일들이다. 가령 차광막을 치고 걷고, 하우스를 점검하는 일 따위가 있다. 그럼에도 타인의 손이 필요한 이유는, 관리측면의 농업은 대개 2인 1조 또는 1.5명이 필요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하우스 뒤편 측창 구동기가 작동이 되지 않는다면, 그걸 고치고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100m 하우스를 최소 두 번은 전속력으로 달려야 한다(구동기 컨트롤 박스는 99.999% 입구에 위치한다). 그밖에 곁에서 잡아만 주면 쉽게 끝날수 있는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홀로 끙끙 헤매다 보면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하는 허무함에 잡아먹힐 수도 있다. 이처럼 극악의 효율성이 혼자 하는 농사다.


또한 체력의 소진이 급격해진다.


여전히 노동과 운동을 같은 선상에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노동은 일의 효율을 추구하다 보니 잘못된 자세로 동작을 반복한다. 몸을 무리하게 굽히고 쪼그리다 보면 관절과 인대 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장시간 휴식 없이 일하다 보니 몸에 병이 쌓이는 것이다.

동아일보


반대로 운동은 근육을 키우기 위한 정확한 자세로 관절 및 인대 등의 개입을 배제한다.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하고, 무엇보다 충분한 휴식을 갖는다. 물론 노동 자체가 칼로리를 소모시키지만, 운동과는 절대 같을 수는 없다. 농업 또한, 주로 쭈그려서, 한 방향을 오래 주시하고, 근골격에 무리를 주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작업을 하다 보면 ‘이것까지만 끝내자’하는 생각에 노동시간이 길어질 때가 잦다. 왜냐하면 다루는 대상이 생물이기 때문이다. 식물은 환경에 민감하며, 그것이 적절히 제어되지 않았을 때 심각한 경제적 타격으로 돌아오게 된다.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그 시기에 마쳐야 하는 일은, 엄동설한 꼭두새벽에 머리에 랜턴을 달아서라도 끝내야 한다.


이 때문에 농촌에는 특이한 문화도 있다. 바로 ‘농촌 타임 Country time’이다. 과거 코리안 타임이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약속에 자주 늦는 한국인을 보고 주한 미국이 ‘한국인은 약속시간에 늦게 도착한다’라고 말했던 것에 기원한다. 농촌에 살다 보면 농부들이 의도치 않게 약속시간에 늦곤 하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그를 두고 ‘개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농부의 일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용무가 급한 전화를 할 경우, 일 때문에 휴대폰을 신경 쓰지 못하는 상대방을 위해 받을 때까지 끊지 않기도 한다. 또한 확정된 일정이라도 확인 전화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령 농업기술센터에서 주관하는 교육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직원들은 당사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하느라 일정을 깜빡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인의 체력이 아닌 작물의 생육에 맞춘 일과를 수행하다 보면, 약속에 늦는 것은 고사하고 부쩍 고갈된 체력을 마주하게 된다. 그 와중에 아찔한 실수로 다치기라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여름 멜론 순작업(양분 소진을 막기 위해 불필요한 잎사귀를 떼는 작업)을 하다가 어지러움이 느껴져서 급히 밖으로 나가려던 중이었다. 비틀거리며 나가는데, 눈앞에 팽팽이 묶인 줄을 발견했지만 차마 피하지 못했다. 안경 코가 부러질 정도로 세게 부딪혔고, 만약 안경이 없었다면 그 속도로 동공에 큰 상처가 났을 수도 있는 아찔한 경험이었다.


때문에 소진되는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틈틈이 운동으로 체력을 길러줘야 하지만, 씻고 나면 곯아떨어지는 마당에,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Jbpresscenter.com


 비수기


성수기가 육체의 소진 시기라면, 비수기는 ‘정신 소진의 시기’라 말할 수 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비수기는 최저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는 시기로 11월 말에서 2월 말, 늦게는 3월 중순까지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농촌은 표면적으로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지역에서 계속 살아왔다면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겠지만, 본인이 귀농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심연에 잠긴 것과 같은 고독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참고로 부모님은 고향에서 평생을 사셨다. 어느 날 귀농을 계획한다 말했을 때, 두 분은 상당한 충격을 받으셨다. 세계를 누볐고 책을 쓰고 강연하는 아들이 시골로 내려온다는 것이, 타인에게 실패자로 보일 거라 생각하신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극구 반대하셨고, 어머니는 상당기간 동안 나와 말도 섞지 않으셨다. 그 당시 나 또한 가족의 지지가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귀농에서 내가 한 결정 중 잘한 것을 꼽으라면, 작물을 쪽파로 결정한 것과 집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향임에도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들 모두 떠난 농촌에 어둠이 깔리는 밤이 오면, 얼굴 보며 대화할 친구 한 명 없다는 것이 감정을 좀먹기 시작했다. 성수기에는 몸이 고단해 잠들기 바빴지만, 냉기가 깔린 긴 밤 내내 오만가지 생각에 잠기다 보면 외로움을 넘어 우울이 찾아온다.


분명 가족이 있었기에 안정적이었다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식을 염려할까 봐 할 수 없는 말들, 또래와 비슷한 주제로 나눌 수 있는 대화가, 감성이 솟구치는 날에는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렇게 하루하루 빈 술병이 늘어갔고, 남는 건 체중과 우울이었다. 그럼에도 가족이 있었기에 그 긴 농한기를 견딜 수 있었다.

세계일보


혼자는 안된다.


지금까지 귀농 후 성수기와 비수기의 일과를 언급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혼자 귀농하지 마라’다. 물론 혈혈단신으로 귀농하여 목적을 이루고 경제적 윤택함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강조하지만, 이 경우는 박수받아 마땅하며, 절대 그의 웃음 뒤에 켜켜이 쌓인 노고와 외로움의 시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반면 대다수의 1인 귀농자들은 내가 겪은 과정을 답습한다. 그저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내 경우를 빗대어, 단도직입적으로 혼자 귀농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1. 비경제성 & 비효율성


귀농 후 약 5년이 지나면 본인이 가고자 하는 농업의 형태가 갖추어진다. 대농을 원하면 농지를 늘리고 농기계를 장만한다. 다른 농민은 마케팅을 접목하여 직거래를 통해 고단가에 판매하는가 하면, 중간 매매인에게 전량 넘겨 곧바로 후작을 준비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도 노동력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기계가 발달했다 해도, 여전히 섬세한 작업은 인간의 손을 필요로 한다.

농민신문


그런데 언급한 대로 대부분 관리의 영역에서는, 2명이 하기에는 애매하고 1명이 하기에는 벅찬 일들이 대다수다. 멀칭 비닐을 잡아주면 30분이면 끝날 일을, 혼자서 3시간을 끙끙되야 끝낼 수 있다. 이 일을 하자고 사람을 쓰자니 애매하다. 참고로 반나절 인건비는 하루 인건비의 50%가 아닌 70~80% 수준이다.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에서라도 혼자 귀농은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부부가 하는 귀농이다.


2. 정서적 안정


한 번은 술에 취해 스페인에서 살고 있는 친구에게 외롭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그러자 친구는 ‘그래도 말까지 안 통하는 외국보다 낫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그렇지 않다. 말이 통해도 말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만약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 귀농했다면,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아프리카에 혼자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주변 귀농한 사람들과 유대를 쌓으면 좋겠지만, 그들 또한 일하느라 바쁘기에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만남을 갖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왔을 때 공간을 채운 온기가 없다면, 고독이라는 냉기에 둘러 쌓이게 된다.


뉴스를 보며 의견 차이로 다툴지라도 생각을 나누고, 사소한 일과를 나눌 수 있는 상대의 유무는, 어쩌면 농업 기술과 자본에 견줄 만큼 귀농에 중요한 조건이라 확신한다.

함양군


3. 안전적 측면


8월 어느 날 아침부터 많은 비가 오고 있었다. 배수로 확인차 시설 하우스를 돌아보던 중 약간의 경사에 넘어져 버렸다. 비가 오면 반드시 장화를 신어야 하는데, 잠시 상황만 살펴보겠다는 안일함이 화를 키운 것이다. 공중에 붕 뜬 몸은 등 쪽으로 바닥에 고꾸라졌고, 순간적 충격에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몸의 오른쪽 절반은 빗물이 흐르는 배수로에 잠겨있었다.


그 사이 차량이 두대가 지나갔지만, 주차해둔 차에 가려진, 배수로에 반쯤 누워있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1~2분쯤 지나서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몸의 반은 흙 범벅이었고, 오른팔과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왼손으로 기어를 넣고 운전했다.


집에 들어와 씻으려고 옷을 벗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평상시에는 이 근처에 올 일이 없는 사람인데, 농장에 차가 주차된 것을 보고 전화했다고 했다. 만약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 전화가 나를 살렸을 것이다.


대부분의 농지는 번화가와 동떨어져있다. 작물에 따라 다르지만,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있어, 농지 입구에 수일간 차량이 서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 쉽다. 문제는 농사 현장에는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이 주변에 아는 사람이 몇 없는 귀농인일 경우, 하우스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구조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여성의 경우 성희롱에 노출될 수 있다. 농촌 또한 여성에게 성희롱을 했을 경우 그 대가는 도시와 같다. 좁디좁은 지역사회에서 매장될 수도 있기에, 오히려 여성 희롱에 관해서는 시골이 더 엄격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곳에 연고가 없는 여성의 경우다.


농업으로 고군분투하는 여성에게 정상적인 호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속된 말로 찝쩍거리는 경우가 있고, 이런 경우 대부분 홀로 귀농한 경우다.

중앙일보


귀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본인에게 ‘귀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줄지 궁금하다. 내 경우 ‘나와 가족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금전’과 ‘쪽파를 이용한 여러 가공품 개발’이었다. 세부적인 이유야 각기 다르겠지만, 결국 돈 벌고 잘 살기 위해 귀농을 선택한다.


귀농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요인들이 있다. 의지와 농업 지식, 자금, 적절한 작물 선택과 마케팅 능력 등 너무 다양해 언급하지 못할 정도다. 이제 이것들 중에서 본인이 원하는 귀농의 모습과 부합하는 능력을 기르면 된다. 귀농을 결정했다면 뒤돌아 보지 말고 그것만 바라보고 달려야 한다.


때문에 혼자 하는 귀농은 너무 위험하다. 성공적인 귀농을 위해서는 효율적으로 일하고 인건비를 줄이고 서로의 안전을 확인해야 하는데, 나 홀로 귀농은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지만, 혼자 하는 귀농이 실패한다는 뜻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나 또한 ‘나 홀로 귀농’이었고, 운 좋게 생활 영역이 가족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거처를 삼았다면 지금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걸렸거나, 아예 이 근처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함께하는 누군가는 귀농 성공의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때문에 가능한 2인 이상 귀농하길 바라며, 어쩔 수 없이 귀농하게 된다면 주변 귀농인과의 관계에 힘쓰길 추천한다. 혹시 귀농인이 많이 없다면, 옆 농가 또는 작목반, 4H 등 농업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다. 물론 농촌이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주제넘은 간섭이나 텃세 등을 겪을지 모르겠지만, ‘귀농 성공’이란 목표를 생각한다면 간섭이나 텃세 정도는 수용할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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