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생각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돈 벌면서 힐링’이라는 가치 대립적인 목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귀농을 메말라가는 영혼에 물을 주고, 자연과 벗 삼아 욕심 없이 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그럴 때는 귀농인의 역 귀농(도시로 돌아가는) 비율이 30%에 달한다고 친절히 말한다. 이렇듯 귀농은 쉬울지 몰라도, 농업으로 살아남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농촌이라는 유기체를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면 자동차 안에서 서로 운전대를 잡으려 하는 모습과 닮은 것 같다. 운전대를 잡으려 하는 이들은(기존 농부, 귀농인, 정책, 현실 등) '농촌'이라는 한 공간에서 '농업의 부흥'을 향해 달려가지만, 실패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 안타까울 정도다. 도시에서 평생을 보낸 귀농인은 자신만은 아닐 거란 착각을 하고, 기존 농부들은 그런 귀농인들을 '이론만 아는 헛똑똑이들'이라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둘 다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글들을 읽었다면, 귀농은 향기로 가득한 장미보다는 줄기를 따라 맹렬히 돋아난 가시에 더 가깝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귀농은 가시 돋친 장미 위를 걷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이제는 더 나은 생활에 도달했고,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때문에 가는 길이 다소 험하고 고단할지라도, 농업은 분명 매리트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 장점들은 아래와 같다.
귀농 후 자리를 잡게 되면 하는 일 중에 하나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대략 3년 차부터 여유가 생기는데, 이 경우 집을 장만했거나 농지 주변에 농막이 있는 경우다.
농번기라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지만, 농한기나 일이 바쁘지 않을 때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다만 생육 중인 작물이 있다면 농지를 벗어난 먼 거리는 부담스럽다. 그럴 때 주말을 이용해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친구들 입장에서는 교외로 놀러 가서 좋고, 나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좋다. 게다가 펜션비를 아낄 수 있으니 술과 안주의 수준이 올라간다.
친구들을 나의 터전으로 초대한다는 것은 나름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는 것이고, 자연스레 친구들의 공감이나 부러움을 얻는 경우도 많다. 또한 숙취로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집에 오기 위해 운전대를 잡을 필요가 없다.
별것 아닐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간을 통해 귀농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안식년이란 과거 농경사회에서 6년을 일하고 7번째 년은 통째로 쉬는 기간을 뜻한다. 다만 현대에 와서 1년을 쉬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 1년 중 한두 달을 타지에서 보내곤 한다. 한국 문화에서는 낯설 수 있지만, 유대인이 절대 다수인 이스라엘이나 미국 상류층은 안식월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농부도 안식월을 갖는다. 그것도 강제적이다.
현대의 농업은 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ICT 기반인 스마트 팜은 물론이고, 노지 또한 토양에 설치한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관수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후의 영향이 절대적인 것이 농업이다. ‘농사는 하늘이 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태양이 오래 떠 있는 여름에 농작물이 살을 찌우고 땅이 얼어붙는 겨울에는 긴 잠에 들어간다. 그리고 농민의 손도 멈춘다. 강제 안식월이 시작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 영세 농가에서는 부족한 수익을 충당하기 위해 다른 농가에서 일을 한다. 다만 농한기 때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수막(이중 하우스에 물방울을 떨어뜨려 가온하는 형태)과 같은 시설이 받쳐주지 않는 경우, 대부분 농부들은 미뤄둔 일을 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물론 모두에게 안식월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칼은 누가 쥐었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는 말처럼, 누군가는 이 강제 휴가 동안 생산적인 일을 하지만 누군가는 술이나 도박에 빠져 의미 없이 보내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일이 바쁘다 할지라도 평상시에 하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것들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귀농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면 중점적으로 지역민과의 융화 방법에 대해 배우게 된다. 사실 귀농 초기에는 지역민과의 융화가 매우 중요하다. 농사에 대한 지식이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교류와 같이, 지역민과의 융화는 정착에 필요한 중요한 요소임은 틀림이 없다.
이런 반강제적인 교류가 처음에는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 여기에 희망적인 말을 건네자면, 이런 스트레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완화된다. 농사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굳이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관계가 편해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정서적 교감을 나눈 사람이라면 만남을 계속할 것이고, 구태여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과의 교류는 끊어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내가 소유한 농가가 있고 타인의 도움 없이 운영이 가능해진다면 인간관계의 갈등 없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동료와의 갈등으로 직장 생활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꼽는, 농업의 가장 매력인 부분이다.
다만 혼자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시간이, 오긴 오는 것인지 의문이다. 텃밭처럼 규모가 작거나 온 가족이 달라붙어 가족 경영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도시만큼 인간관계가 중요한 곳이 농촌이다.
때문에 귀농이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게 좋은 선택이라는 것에, 개인적인 공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를 언급한 이유는, 정말 많은 사람이 이것을 귀농의 장점을 꼽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직장 생활을 했다면 대부분 오피스(엑셀, PPT, 워드)에 능숙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능력은 이직을 할 때, 포트폴리오에 끼지도 못하는 디폴드(기본) 값이 된다. 하지만 귀농을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예비 귀농자가 의아해하겠지만 오피스 능력은 생각보다 유용하다. 청년 창업농 후계농 지원 사업의 사업 계획서 작성만 해도 그렇다. '한글'이라는 문서 편집 프로그램이 생소하겠지만, 워드에 능숙하다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별도의 판매전략을 작성할 때도 PPT를 사용할 수 있다.
현장에 와보면 느끼겠지만, 대부분 원주민들은 오피스에 익숙지 않다. 가령 농촌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심화 문서작성 교육은, 일반 사무직에서 (빡세게) 두세 달 정도만 근무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수준이다. 또한 농업분야에도 시도해볼 지원 사업들이 많다. 장담컨대 문서 작성 능력은 분명 도움이 된다.
SNS 활용 능력도 우대된다. 도시민이 시골민보다 SNS 활용에 능숙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비교 대상이 농민이라면 수긍할만하다. 특히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은 농산물 판로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영상 편집이 가능하다면,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 인지도 상승 등의 외연 확장도 노려볼 수 있다.
도시에서는 너도나도 할 수 있어 흔해빠진 능력들이, 농민이 되면서 새로운 대접을 입는 경우가 SNS 활용능력이다.
직장인을 상징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출근’이라 생각한다.
회사로 가는 길은 어렵다. 하루 종일 업무에 지친 몸은 피곤을 털어내지 못한 채 졸린 눈을 들쳐 올린다. 매일 지옥철로 대표되는 출근 지옥을 거쳐야만 회사에 도착할 수 있다. 1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짧으면 30분 길면 한 시간 넘게 자동차로 가득한 길에 갇혀버릴 때면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것도 매일.
'때려치고 싶다'
반면 농업은 적어도 시간에 자유롭다. 이는 늦게 일어나서 적당히 일하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시간 운영이 탄력적이라는 의미다. 농사는 직업의 한 종류지만, 엄연히 사업으로 분류된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 농업 또한 일을 일정 선상에 올려놓으면, 그 외 시간은 오롯이 본인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매번 비슷한 미팅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시도 때도 없는 업무 단체 톡에 분노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는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잦은 회식 그리고 야근과 주말 근무는 내가 원치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우리는 충분한 여유 속에서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물론 농업 기술이 늘어나는 만큼 경작 면적을 늘리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농민이 대부분이고, 모든 이가 이런 사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안식월에서 언급했지만,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연습하지 않았다면 직장에 비해 탄력적인 시간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또한 농사도 다른 사업처럼 직장과는 다른 수준의 책임감을 요구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상황까지 오기 위해서는 무수한 시행착오와 내외적 갈등 및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소비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직장인 시절과는 다르게 탄력적으로 시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은 농업의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아래 설명할 ‘모든 것이 내 것이다’와 함께 만족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들도 빼놓을 수 없는 농업의 장점이지만, 농업으로 일정 매출액에 도달한 농부들 대부분이 이것을 가장 큰 장점이라 입 모아 말한다. 바로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나의 노동력과 비용을 투자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나의 소유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은 방만하지 않은 이상 성장한다. 초반에 무수한 실패를 거듭하겠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안정 선상에 오르고,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조언할 정도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 긍정적인 방향을 생각하게 된다.
모든 사업은 위기의 크기만큼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런 측면에서 '농업도 유망하다'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아니다. 분명 힘든 길이 이어지겠지만, 내가 이뤄가는 모든 것들이 결국 모두 내 것이 된다는 의미다.
나의 성과를 직장 상사와 반강제적으로 나눌 필요도 없다. 퇴사를 하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경력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쌓아놓은 매출과 농지와 브랜드는 자산이 된다. 무엇보다 100세 시대임에도 50세 언저리부터 밀려나듯 퇴사해야 하는 직장과 달리, 농사를 통해 얻은 경험으로 은퇴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업으로써의 농업의 큰 장점이다.
농업은 가장 원초적 형태의 사업이다. 씨앗을 뿌려 이를 정성스레 길러 농작물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원초적(근원적) 물건으로써, 우리는 이를 원물이라 칭한다.
판매하고자 하는 제품의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출요인과 마진을 책정해야 한다. 지출요인에는 인건비, 감가상각비, 임대료, 기타 잡비와 원재료 구입비가 있다. 모든 요인들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이제 일 좀 할법한 연차가 쌓이면 직원은 다른 곳으로 떠난다. 물가는 계속 상승하고 임대료도 덩달아 오른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처럼, 수익 빼고 다 오르는 것 같다. 원물도 마찬가지다.
만약 원물의 수급이 수월하다면, 해당 원물을 사용한 가공품이 시중에 많은 경우다. 밀가루나 마요네즈와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다만 해당 품목군은 오랜 시간 동안 유통되어 왔기에 마진 폭이 매우 좁다. 이는 할인의 가능성이 낮다는 뜻으로, 앞으로 원가에서 줄일 비용이 없다는 의미다.
반대로 수급이 어렵다면, 아직 시중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품목일 수 있다. 타인에게 이 예를 들 때 어김없이 말하는 제품이 있는데, 바로 흑우라 알려진 ‘블랙 앵거스’다.
호주는 방대한 목초지를 배경으로 고품질의 소고기를 생산하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소고기 값이 굉장히 저렴한데, 중저가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려면 $10~15(호주 달러 기준, ₩9000~13500 수준) 면 충분하다. 고기 품질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겠으나 호주이기에 가능하다. 한국에서 먹으려면 최소 5배는 줘야 하는 수준이다. 그러던 중 블랙 앵거스를 만났다. 1인분에 $30불 수준이라 큰맘 먹고 주문했으나, 한입 베어 먹는 순간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수입 소고기 음식점을 볼 때마다 ‘블랙 앵거스를 들여오면 맛도 마케팅도 해볼 만할 텐데’란 생각을 자주 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나의 혀를 놀라게 했던 호주산 흑우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시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품목을 원재료로 사용한다면,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공급업체가 많지 않아 할인의 폭을 높일 수 있다. 물론 업체에서 어렵다고 하겠지만, 거래량 및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분명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유통채널이 단조로울 경우, 자칫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경우는 호주산 와인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중국과의 무역 마찰로 2021년 3월 중국 상무부가 호주산 와인에 최대 218%의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만약 본인이 와인을 수입하는 업이나 와인을 이용한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농업이라면 이런 일에서 자유롭다.
원물을 통제한다는 것은 수급과 원재료비 측면에서 안정화가 가능하다. 이보다 더 큰 장점은 이러한 안정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이 창출된다. 안정적인 농산물 수확을 통해 가공품을 만들 수 있고, 재배에 필요한 원천 기술로 재배량을 늘리거나 기술이전을 통해 계약 재배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사업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원재료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어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진정한 지속가능사업의 모델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을 농업이 가진 최대 장점으로 꼽는 이유다.
지금까지 농업의 장점에 대해 언급했다. 누군가는 반문할지 모르겠다. 또는 이런 이야기가 일부 소수 귀농인에게만 해당된다고 의구심을 표할 수도 있다. 역귀농 그리고 자신의 농지에서 생을 마감하는 농부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나 역시 귀농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때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묻고 싶다. 세상 어떤 사업이 리스크도 없고, 명과 암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농업도 그렇다. 성공하기 힘든 분야임이 확실하지만,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철저한 계획과 충분한 자본을 확보하고, 미리 농업을 경험하며 자신에게 맞는 작물과 지역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학습과 시도를 통해 부가가치 수단을 창출해나간다면, 은퇴도 없고 고스란히 자산으로 쌓이며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오랜 고민 끝에 귀농을 선택한 본인의 결정이 잘했음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