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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훈 Mar 24. 2022

정말 이걸로 청년 농부가 늘어날 거라 생각하는가

청년 후계농 제도의 장단점 - 1부

와전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 본래의 뜻이나 내용을 잘못되게 바꾸어 전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살다 보면 와전된 상황을 목격하곤 한다.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고민 끝에 건넨 한마디에 친구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가 하면, 정중하게 건넨 호의가 주제도 모르고 부린 추태로 와전되기도 한다. 가장 일반전인 와전의 사례는, 하지도 않았음에도 마치 내가 한 말인양 포장되어 순식간에 사람들 안으로 들어간 경우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들에게도 와전된 사례가 존재한다.


1. 빵이 없다면 케이크를 먹게 하라 -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 왕비이자 남편인 루이 16세와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야 말로 와전이라는 단어에 딱 들어맞는 사례다. 그녀가 왕비로 재위하던 18세기 말 프랑스는 기득권과의 갈등이 만연했지만 여러 개혁이 진행되면서 민중의 권리가 신장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분노가 서서히 들끓고 있었는데, 줄어들지 않는 빈부격차 때문이었다.

위키피디아

정확하게는 당시 프랑스 경제가 서서히 침몰되고 있었으며, 여기에 더해 1789년 발생한 대흉작으로 인해 밀 수확량이 급감했고, 이것이 국민 정서에 불씨를 당긴꼴이 됐다. 굶주림에 지친 민중은 ‘우리에게 빵을 달라’라고 외쳤고, 이를 전해 들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주세요’라고 했다는 말이 퍼지면서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왕과 왕비 모두 광장의 단두대 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사실 간단한 전후 사정만 따져본다면 왕비가 그런 말을 할만한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그 내용의 출처로 여러 설이 존재한다.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이 루소가 출간한 <고백록>에서 어린 공주가 그런 말을 했다고 적힌 것이 와전됐다는 주장이다. 우선 고백록이 집필된 시기를 1770년 이전으로 보는데, 그 기간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에 오기 전이나 최소 루이 16세와 혼담이 오기 전의 시점이기에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어린 소녀라 할지라도 한 나라의 왕비로서, 분노한 시민들이 궁을 향해 들이치는 마당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다.


때문에 왕권의 무능력과 부패를 부각해 그들의 혁명을 정당화하려는 혁명 지도부 또는 후세의 호사가들에 의해 퍼진 낭설이라는 주장이 매우 신빙성 있어 보인다.


2. 악법도 법이다 – 소크라테스


와전으로 치면 소크라테스만큼 억울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법적 정당성에 대해 집착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대목은 플라톤이 쓴 크리톤의 한 구절이다.


‘조국이 무언가를 겪어 내라고 지시하면 두들겨 맞는 것이든 투옥되는 것이든 잠자코 겪어 내야 한다는 것, 조국이 당신을 전쟁터로 이끌어 당신이 부상을 당하거나 죽게 되더라도 이행해야 한다는 것, 정의로운 것이란 그와 같다는 것을 알지 못했단 말이오?’ – 크리톤
위키피디아

이 문구만 본다면, 조국이 내린 부당한 처사라 할지라도 응당 받아 들어야 한다고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소크라테스의 ‘국가라 할지라도 부당한 법적 명령에는 따르지 않겠다'는 견지는 여러 저서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와전된 것일까?


이 표현이 처음 나오게 된 계기는 일본 경성제대 교수인 오다카 도모오가 집필한 <법철학>에서 언급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받아들인 이유였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이유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많은 이가 읽은 ‘로마인 이야기_시오노 나나미’에서도 언급되면서, 사람들은 마치 사실인양 믿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많은 1900년대 한국 법학자들이 무분별하게 옮겨 나르면서, 비판적 사고 없이 소크라테스의 의중이 와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와전된 사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놓거나 ‘그것이 진실이 아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체 후세대들이 맹목적으로 믿게 만들기도 한다. 현재 청년 창업농(이상 청창농) 제도가 조금씩 그러한 모습을 띄고 있다.


청창농 제도는 무엇인가?


청창농이라는 약어는 그대로지만 연도에 따라 조금씩 세부 이름이 변화해왔다. 제도 도입 시기인 2018년에는 청년창업농, 그 이후부터는 청년창업형 후계농 경영인 – 청년창업형 후계농, 현재는 청년후계농이란 이름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이름에 변화에 따른 숨겨진 정부의 자세는 조금 뒤에 다뤄보기로 하고, 우선 청창농이란 제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농림축산 식품부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청창농의 목적은 ‘영농 초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창업농에게는 영농정착 지원금을 지급하고, 이를 통해 젊고 유능한 인재의 농업 분야 진출을 촉진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여, 농가 경영주의 고령화 추세 완화 등 농업 인력구조를 개선’이다.


청년이라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지원 조건은 사업 시행 연도 기준 만 18세~39세까지다. 영농 경력은 3년 이하여야 하고 아직 영농을 시작하지 않은 경우 독립경영 예정자로 구분된다. 영농경력은 농업경영체에 등록한 일자를 기준으로 한다.


해당 사업은 1년에 한 번 시행되며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1월 중하순에 공고되며 1~2달의 선발과정을 거친 후 3월 말~4월 초중순에 발표가 난다. 1차 서류 평가, 2차 면접을 통해 최종 선발되며 사업계획서 비중이 상당히 크다. (사업계획서 작성에 관한 내용은 이후 챕터 참고)


청창농 제도의 혜택은 우선 바우처 지원이다. 독립경영 1년 차는 월 100만 원, 2년 차 월 90만 원, 3년 차 월 80만 원을 지급하는데, 처음 소득을 올리기 힘든 초보 농부에게는 단비와 다름없다. 두 번째는 3억의 융자가 가능하다. 특히 농신보(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 보증에 의해 95%까지 보증하며, 5년 거치 후 10년간 상환할 수 있다. 그 외 농지은행 비축 농지 임차-매입 시 우선순위 부여, 영농 기술 및 교육-컨설팅 지원 등이 있다.


진입장벽을 낮추기만 한 정부의 실책


본인은 21년 청년창업농 선정자이며, 동년 우수사례에 선정되어 책자에 인쇄되었다. 운이 좋았다고 겸손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치열이 망가지는 스트레스와 노동을 견디며 얻어낸 결실이었다. 이처럼 귀농은 쉽지 않았지만 청창농 제도가 없었다면,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로 이뤄지기 힘들었거나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은 제도임이 분명하다.


1. 농신보 보증의 무용(無用)


청창농 제도를 이용하고자 하는 대상은 40세 미만, 즉 만 39세 이하다. 누군가는 사업적으로 성공했거나 집안의 지원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직장생활 10년 안팎의 경력이 주를 이룬다. 이 말은, 재산이 많은 경우라야 수도권 20평대의 전세금 정도인 것이다.

게다가 청창농에 지원하는 시점은 본인이 농업에 잘 맞는지 알아가는 도중이 많다. 이미 귀농을 시작했거나 다른 이의 농가에서 농사를 배우고 있는 경우다. 즉 직장을 그만둔 상태이기 때문에 담보가 없다. 이런 부분을 지원하기 위해 거의 무담보에 가까운, 다시 말해 농신보에서 95%나 되는 담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문제는 청창농에 선정된 이후에 발생한다. 융자금 전액이 대출되지 않는 것이다. 정확히는 농신보가 말하는 95%가 전부 반영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융자금이 집행되는 과정은 대출 공문 발행(지자체 및 농신보)되면 대출이 실행(농협) 된다. 하지만 정작 농협으로 대출 심사가 들어가면, 개인 신용 등급에 따라 융자액이 차감된다. ‘청창농 융자금은 농협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매매비용 100%가 나올 거라고 믿는 상황에서 계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억이 오가는 계약에서 융자금이 부족하게 실행될 경우, 그 부족분을 구하지 못해 계약금을 날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해당 문제에 대해 기존 청창농 선정자들이 지속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각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이해 못 할 정책들도 청창농 선정자들을 분노케 한다. 특히 지상권에 대한 보증기간이다. 쉽게 말해 땅을 제외한 건물 등(농민의 경우 대게 시설 하우스를 칭함)에 대한 권리를 지상권이라 하는데, 농지 임대시 농지은행에서는 장기간의 지상권을 설정한 문서 제출을 요구한다. 말 그대로 땅주인에게 ‘하우스를 임의 철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받아오라는 말인데, 그 기간이 10년 이상인 경우가 많아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라는 비웃음을 받고 있다.


2. 3억으로는 어림도 없다


청창농 선정자에게 제공하는 융자제도의 큰 장점은 3억이라는 큰돈을 농신보가 대신 담보하고, 5년 거치 후 10년간 값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것들이 점점 과거형이 되어 가고 있다. 3억이라는 큰돈은 더 이상 거대하지 않고, 10년이라는 상환기간이 농업 특성상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예산군의 경우 답(논)의 경우 9~15만 원까지 형성되어 있다. 이는 저렴하다면 저렴하고 비싸다면 비쌀 수 있는데, 평균적으로는 저렴한 편에 속한다. 반면 딸기의 성지로 불리는 논산은 평당 15, 밀양은 평당 20, 경기도권은 그 이상이 일반적인 호가다.

만약 본인이 예산군이나 논산으로 귀농했다면 3억 융자금의 절반 정도로 농지 1200평 정도를 구매하고, 남은 자금으로 시설을 올리면 된다. 하지만 밀양이나 경기도로 귀농했다면 1200평에 2억 4천만 원을 사용해야 한다. 이 정도 규모로는 2인 가족 생활비는 어찌 마련할 수 있어도, 저축이나 시설 투자는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때문에 3억이라는 금액이 큰돈임은 분명 하나, 귀농을 위한 필요자금으로는 매우 크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상환기간 또한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몇 차례 언급했듯이 스스로 자립 가능할 정도의 기술을 확보하는 데는 3~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이를 감안하여 5년의 거치기간을 두고, 이후 10년간 원금상환을 하도록 제도를 만들었는데, 현실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만약 3억을 투자해 1200평의 농지를 구매하여 하우스를 설치했다고 가정하겠다. 이 경우 처음 5년간 이자 0.9%(고정금리의 경우 2%이며, 변동으로 설정할 경우 1% 내외의 금리 적용이 일반적이다)에 해당하는 270만 원을 매년 납부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원금 상환 기간이 도래한 6년 차부터다. 이때부터 원금이 포함된 3270만 원을 매년 납부해야 하는데, 매년 이 금액을 값을 수 있을 농작물이 과연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다.


물론 정부에서 농업을 한다는 이유로 큰돈을 빌려줬으니 이를 갚아야 할 책임은 채무자에게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청창농 선정자들이 그 빚을 갚는데 허덕이거나 다른 대출로 돌려 막는다. 일부는 제시된 기간 안에 채무를 변제하지만, 대다수가 변제하기 벅차 한다면 해당 기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3. 농업의 태생적 한계


간혹 이런 질문을 받는다. ‘농촌을 살릴 방법은 없는 겁니까?’. 나는 단언한다, 없다고.


이처럼 농촌은 소멸해가고 있다. 그와 발맞춰 대한민국 농업도 그 명맥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농촌이 소멸해가는 이유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사람이 없는 이유는 마땅한 경제활동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농촌을 지탱하는 농업은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외면받는다. 돈이 안 되는 이유는 농업활동에 수반되는 요인들, 인건비, 자재비, 땅값, 비료 및 농약비 등 모든 요인들은 상승하는데 농산물 가격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이 그대로인 큰 이유 중 하나는,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 일부 수량은 정부에서 매입하지만 매입분이 미미하거나 가격이 낮다. 반대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비축량을 풀거나 긴급으로 해외에서 수입한다. 정부에서는 세금 면제나 직불금과 같은 지원금으로 손실분을 보정해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농산물은 국민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국가에서 통제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손실을 보전할 기회를 빼앗은 대가로 제시한 지원책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 사실 ‘농민에게만 지원이 과도하다’는 일부 국민의 말처럼, 농민들 또한 그런 보호책을 원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농업에 투입되는 모든 것들이 자유 경쟁이니, 차라리 농산물 유통도 자유롭게 해달라고 주장하는 농민들도 많다. 하지만 이럴 경우 FTA 등, 농산물 수입 전면 자유화와 맞닿아 있는 부분으로 후폭풍이 엄청나다. 이 내용은 뒤에서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이처럼 농업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 때문에 대다수의 농민들이 농기구를 이용해 겸업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지만 농사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하기란 체력적으로 어렵다. 때문에 부족한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농한기 때 주변 농가나,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한다. 하지만 청년창업농은 이러한 농외 수익을 3개월로 한정시켰다. 농업의 태생적 한계를 충분히 고려한 정책이라 보기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농사 베테랑들도 농외 수익 없이 버티기 힘든 이곳에서, 햇병아리 청창농들이 3개월의 농외 수익으로 잘 헤쳐나갈지 불안함만 감돌뿐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그에 합당한 대우가 따르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청창농에 선발되기 위해서는 잘 짜인 사업계획서와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게 매년 1800명 정도가 청창농에 선정된다. 농림부에서는 각 지자체별로 2~10명 정도만 선발되는 정예 인원으로, 다양한 제도적 지원과 관리가 있을 거라 장담한다. 하지만 월 100만 원씩 지급되는 바우처 사업을 제외하고는, 일반 귀농인들과의 차별화된 혜택을 느끼기 어렵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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