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력을 이용하라
‘쳐 맞기 전에는 다들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살아있는 복싱 전설인 마이크 타이슨이 했던 말로, 나름의 철저한 준비를 한다 할지라도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내가 생각하기에 농업의 현실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라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귀농 당시에 좀 더 보완했으면 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 그때 그 상황에서는 최선이나 다름없었다. 철저하게 준비했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했으며, 시간이 걸릴 수는 있어도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농업을 포함한 모든 산업은 실패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그 변동성은 예측조차 불가능하다. 만약 실패라도 하게 되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농업을 다른 사업과 견주어보면, 인공적인 변수 외에 자연적인 변수가 존재하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우선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인해 발생한 인공 변수 중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이 인구 소멸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인건비 및 비료 등의 비용 상승과 같은 경영비 증가다. 앞서 수차례 말했듯이 이 부분에 대한 본인만의 대안이 없다면, 귀농은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자연적인 변수다. 이 또한 앞서 말한 대로 기상 이변으로 인해 농업이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십 년부터 경고했던 지구 온난화는 이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태풍’을 수시로 몰고 온다. 농민이 아니라면, 태풍에 의한 시설물 파괴 또는 물에 잠기거나 피해를 입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심각한 피해가 맞지만, 정작 태풍이 올라온다는 사실 만으로도 농작물 가격은 폭락한다.
본래 기존의 태풍은 장마기간과 추석 전에 발생했다. 하지만 2020년을 기점으로 태풍의 빈도가 잦아들었고 22년에는 9월 중순에도 태풍이 발생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태풍의 세기도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2년 추석 직전 발생한 태풍 ‘힌남노’는 남부지방에 측정 불가한 피해를 남겼다. 그렇다면 시설하우스가 파괴된 것도 홍수에 잠긴 것도 아닌데, 태풍이 오면 농산물 가격은 폭락하는 것일까?
태풍이 관측되면 이로 인한 손해를 피하기 위해 농민들은 출하를 앞당긴다. 이때 출하까지 7~10일 정도 남은 작물도 앞당겨 출하한다. 하우스마저 뽑힐 정도의 태풍이면 농작물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에, 어느 정도 손해를 보더라도 출하를 감행하는 것이다. 패닉에 빠진 농민들이 앞다퉈 출하를 했던 22년, 추석을 앞둔 농산물의 가격은 어떻게 되었을까?
전년 동월 기준 쪽파 10kg의 평균 경매 가격은 6만 원대였다. 우리 농가에서 받은 경매가는 25000~30000원. 전년 대비 1000만 원 중반의 손해를 입었다. 원인은 패닉 출하로 인해 물량이 집중되면서 명절에 필요한 수량을 넘었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근무한 경매사의 말을 빌리자면, ‘대목(명절)에 물건이 남아도는 건 평생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니 그 사태의 심각성이 무서울 정도였다.
또한 이런식으로 특정일에 출하가 강제되면, 무엇보다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어쩔 수 없이 수확을 위해, 차로 한 시간 이동해서 인당 1~2만 원을 더 주고서야 겨우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경매값 급락으로 수익이 줄어들었는데, 인건비는 기존보다 더 지출해야 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마지막 가을 태풍이라 믿었던 힌남노에 이어, 9월 17일 초강력 태풍 ‘난마돌’이 북상했다. 작물 생육 상황이나 농가가 세운 전략에 따른 출하가 아니라, 태풍에 의해 출하일이 정해지는 상황이 빈번해지면 고스란히 농가 수익 악화로 연결될 것이다.
농업은 가장 고도화된 창업의 형태다. 농사만 잘 지어서는 절대 생존할 수 없다. 판로 확보도 중요하다. 특히 농산물은 시세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짧은 시간 안에 판매하지 못하면 적자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니 마케팅을 농부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농부는 생산-유통-판매-마케팅을 모두 할 줄 알아야, 적어도 부를 이루거나 ‘귀농 성공 사례’라고 불릴 수 있다. 하지만 농업으로 성공하기란 너무 어렵고, 기반이 마련되기까지는 3~5년이 걸린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농업은 변수가 많다. 때문에 농업 경력이 낮을수록 수익을 다변화하는 것이, 어쩌면 농업에서 살아남는 방법일 수 있다. 물론 농업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일하는 형태로의 취직은 어렵다. 농번기가 되면 하루 2~3시간의 아르바이트도 불가능하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있는 곳이 농촌이라는 것이다. 주위로 눈을 돌리면 농촌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한다던가, 기술 또는 농기계 작업을 대행할 수 있고, 그동안 축적된 경험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올릴 수도 있다. 다만 청년 후계농에 선정되었다면 농외 활동이 3개월까지만 가능하니 이점 참고 바란다.
내 경우 1년 내내 쪽파만 기르지만(윤작을 위해 1회 다른 작물 생산) 대부분 농민은 3~4가지의 작물을 기른다. 때문에 여러 작물에 대해 얕던 깊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특정 작물에 노동력이 필요한 경우 팀을 꾸려 작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수박 순을 잡거나 뒤집는 일이다. 수박이 잘 성장하도록 정기적으로 땅에 닿아 있는 부분을 돌려 햇빛을 쬐게 하고, 불필요한 순은 잡아줘야 한다. 다만 수박이 생장하는 시기는 한 여름으로, 대낮에는 작업이 불가하다. 이 경우 해가 지는 5~8시 사이에 작업이 이뤄지며, 대부분 팀을 꾸려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작업을 대행하며 하우스 한 동당 비용이 책정된다. 일이 끝난 오후에 하는 일이니 본업에는 큰 지장이 없다.
비닐하우스 관련 일도 있다. 농촌에 겨울이 돌아오면 농부들은 다음 농사를 위해 재정비에 들어간다. 노후화된 비닐은 새것으로 교체하고, 하우스를 보수하거나 새로 짓는 농가가 많아진다. 비닐 및 하우스 파이프 교체는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대부분 겨울철에 이뤄지므로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인력을 구하는 루트는 대부분 소개로 이뤄지므로, 관심이 있다면 평상시 관련 업종 사람들과 안면을 터두는 것이 좋다. 농작물이 자라지 않는 겨울에 일을 하기에 본인 농업에 지장이 없고, 충분히 기술이 쌓인다면 팀을 꾸려 사업으로 확장시킬 수도 있다.
본인이 기르는 작물의 파종이 모종으로 진행된다면 직접 키워 판매할 수도 있다. 고추, 멜론을 비롯한 많은 작물들이 씨앗을 직접 파종하는 직파보다는,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일정기간 모종으로 생장시킨 뒤 본 밭에 아주심기 한다. 문제는 모종값이 무시하기에는 비중이 꽤 크다. 때문에 농가에서는 모종값을 절약하기 위해 직접 기르는데,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실패할 경우 시간과 비용을 모두 날릴 수 있는 만큼 관련 지식이 필수다.
많은 농가에서 자신이 심을 요량으로 모종을 키우고 심고 남은 모종을 지인에게 판매하는데, 특정 농가에서는 판매할 목적으로 기르기도 한다. 그만큼 단기간에 돈이 된다는 뜻이다. 다만 모종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육묘업에 등록해야 한다는 점 잊어서는 안 되겠다.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