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의 책들

새로운 사랑과 권태의 회귀에 대하여

by Peeping

이번 책 리뷰는 '사강의 책들'이다.

사실 '사강의 책들'이라고 목차를 구성했을 때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마음의 심연만을 읽은 상태였기에 이 두 작품으로 사강의 책들로 묶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슬픔이여 안녕, 한 달 후 일 년 후, 해독일기, 그리고 엎드리는 개를 마저 읽었다. 아직 읽지 않은 그녀의 명작으로 알려진 어떤 미소, 마음의 파수꾼, 신기한 구름, 흐트러진 침대, 핑계 등 많지만 주제넘게도 내가 읽은 책들을 통해 내가 느낀 사강에 대해 짧게 남기고자 한다.


KakaoTalk_20250929_232744085.jpg 어떤 미소, 패배의 신호, 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는 아직 읽지 못하였다. 옆에 위치한 한병철의 책들과 뒤에 위치한 사울 레이터의 사진집도 리뷰하고 싶다.


글의 순서를 미리 알리자면,

첫 번째로 선정한 책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나마 요약한다.

슬픔이여 안녕(1954)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1959) - 한 달 후 일 년 후(1961) - 엎드리는 개(1980) - 해독일기(1964) 순서로 진행한다. 해독일기를 가장 뒤에 놓은 이유는 다른 소설책들과 달리 해독일기는 자조적인 일기의 형식을 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읽은 책 중 마음의 심연을 뺀 이유는 사강의 사후 미집필된 원고를 기반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임을 알린다. 물론 이 책도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사강의 문학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특징들을 내 멋대로 분석한다.

불완전한 사랑과 권태의 미학이라 칭하였다.


사강의 책을 읽은 건 단순히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작년 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처음 접하고 집착적으로 책을 모으기 시작한 뒤, 일종의 의무감에 사로잡혀 계속 읽게 되었다. 그렇게 읽다 보니 부족하나마 그녀의 생애와 생각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느껴졌다. 다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시선과 틀에서 나온 것이므로, 독자도 무작정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한다.


사강의 생애가 궁금하신 분들은 블로거 '힐씨와 밤톨의 즐거운 책 읽기'를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log.naver.com/hillsea92/22269037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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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의 요약


1.1. 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

주인공은 17세 소녀 세실이다. 그녀는 아버지 레이몽과 함께 프랑스 남부 해안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레이몽은 부유하고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가볍고 방탕한 성격을 지닌 중년 남자였다. 그는 언제나 젊은 여성과 짧은 연애를 반복했고, 결코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이번 여름에도 그의 정부 엘자가 동행하고 있었다.


세실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동지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유와 쾌락을 공유하며, 무책임한 행복을 당연시했다. 하지만 이 방탕하고 평화로운 여름은 곧 다른 인물의 등장으로 흔들리게 되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세실이 어릴 적부터 존경해 온 여성 이 별장에 합류한 것이다. 은 세련되고 지적인 여성이었고, 세실에게는 엄격한 어머니 같은 존재였으며, 레이몽에게는 삶의 무게와 변화를 요구하는 연인이었다. 은 곧 엘자를 밀어내고 레이몽과 가까워졌으며,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세실은 처음에는 을 존경했지만, 곧 두려움을 품었다. 자유롭고 쾌락적인 생활을 빼앗기고, 아버지와의 특별한 유대가 무너질 것 같은 불안 때문이었다. 결국 세실은 아버지를 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계략을 꾸몄다. 아버지가 다시 엘자에게 마음을 기울이도록 만들려 한 것이다.


세실은 인근에서 만난 청년 시릴과 손잡고, 아버지가 엘자와 은밀히 재회하는 장면을 이 목격하게끔 의도했다. 계략은 성공했고, 레이몽은 다시 엘자에게 흔들렸으며, 은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충격을 받은 은 절망 속에 차를 몰고 떠났고, 곧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것이 사고였는지 자살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의 죽음 이후, 세실은 자신이 불러온 비극을 깨닫고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본래의 세계로, 즉 권태와 무책임, 아버지와의 방탕한 삶으로 돌아갔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세실은 슬픔을 느끼면서도, 그 슬픔마저 곧 무감각한 권태 속에 흡수된다고 고백했다.


소설의 말미

사랑이 시작될 때면 흔히 그렇듯이 나는 일주일 동안 저돌적으로 그와 자주 데이트를 했다. 태생적으로 고독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버지 역시 상당히 야심만만한 어떤 젊은 여자와 그런 만남을 시작했다. 마치 원래 정해져 있던 것처럼 이전과 같은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안,안! 나는 어둠 속에서 아주 나직하게 아주 오랫동안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이름을 불러 그것을 맞으며 인사를 건넨다. 슬픔이여 안녕. p.1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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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사강의 책들 중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마무리에 속한다.



1.2.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

주인공은 39세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폴(여)이다. 그녀는 십 년 가까이 교제해 온 연인 로제(남)와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로제는 성공한 사업가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으나, 감정적으로는 늘 가볍고 무책임했다. 그는 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젊은 여성들과 가볍게 어울리며 진지한 헌신을 회피했다.


폴은 로제와의 관계가 오래되고 안정적이면서도, 동시에 깊은 권태와 불만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일과 생활에서는 독립적인 여성이었지만,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갈망을 품고 있었다.


이때 그녀의 삶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로제의 친구의 아들이자 25세의 청년 시몽이었다. 시몽은 젊고 진지했으며, 폴에게 뜨겁고 순수한 사랑을 고백했다. 그는 폴에게 진심으로 다가왔고, 나이 차이를 개의치 않았다.


은 처음에는 시몽을 단순히 귀엽고 신선하게 느꼈다. 하지만 시몽의 집요한 고백과 성실함은 곧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폴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설레는 감정과 여성으로서의 매혹을 다시금 경험하게 되었다. 시몽과 함께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고,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현실은 곧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시몽은 젊고 이상적이었지만, 에게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없었다. 또한 은 오랜 시간 함께한 로제를 완전히 떠날 용기를 내지 못했다. 로제는 때때로 무심했지만, 동시에 에게 익숙하고 안락한 존재였다.


결국 시몽과의 관계를 깊게 이어가지 못하고, 다시 로제에게로 돌아갔다. 시몽의 열정은 짧은 불꽃처럼 사라졌고, 폴은 또다시 권태로운 일상으로 귀환했다. 폴은 젊은 사랑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끝내 그것을 붙잡지 못했다.


소설은 폴의 내적 갈등과 선택을 통해, 사랑이 구원이 아니라 잠시의 도피일 뿐임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삶에는 여전히 권태가 자리 잡고 있었고, 새로운 사랑조차 그것을 완전히 지워내지 못했다.


소설의 말미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p.158


마지막 문장을 읽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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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한 달 후 일 년 후 (Dans un mois, dans un an)

이 소설은 파리의 예술가·지식인 사회에 속한 아홉 명의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중심으로 한다.


주요 축은 베르나르, 그의 아내 니콜, 그리고 베르나르가 사랑하게 되는 조제이다. 니콜은 충실하지만 평범한 아내였고, 베르나르는 그런 생활에 권태를 느끼며 조제에게 끌렸다. 조제는 독립적이고 매혹적이었으나, 그녀 또한 베르나르에게 전적으로 마음을 주지는 않았다. 베르나르니콜을 떠나지 못하면서도 조제와의 사랑을 포기하지 못해, 세 인물은 긴장 속에서 흔들렸다.


또 다른 축은 알랭과 그의 아내 파니, 그리고 자유롭고 도발적인 여성 베아트리체이다. 알랭은 파니와의 결혼에 권태를 느끼고 베아트리체를 사랑했으나, 그녀는 그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며 끊임없이 흔들었다. 베아트리체를 짝사랑하는 에두아르는 끝내 상처받고 만다. 여기에 조제를 사랑하는 동갑내기 자크, 베아트리체를 정부로 두려는 줄리오 같은 인물들이 얽히며, 관계는 더욱 복잡해졌다.


인물들의 만남과 이별, 질투와 불안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사랑은 등장했으나 곧 권태와 갈등으로 무너졌다. 니콜은 병으로 쇠약해졌고, 조제는 결국 베르나르를 온전히 차지하지 못했다. 알랭파니의 결혼도 권태로 남았으며, 베아트리체에두아르의 관계 역시 좌절로 끝났다.


결국 소설의 결말은 해결이나 구원 없이, 권태의 순환으로 돌아갔다.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지만, 그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베르나르조제니콜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여전히 흔들렸고, 조제는 그 관계 속에서 고통받았다. 제목 그대로, "한 달 후, 일 년 후"에도 모든 것은 다시 반복될 뿐"이라는 무력감이 마지막에 드러났다.


소설의 말미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에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나도 알아요"

"조제, 이건 말이 안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 p.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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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엎드리는 개

주인공 게레는 20대 후반의 젊은 회계사이다. 그는 공장 회계 부서에서 일했지만, 삶에 대한 열정이나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겼고, 수입은 낮고 생활은 무기력했다. 그의 하루는 늘 같았고, 매일 같은 길로 퇴근하며 곁을 따라오는 길 잃은 개와 함께하는 순간이 삶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어느 날, 게레는 골목에서 보석이 든 가방을 발견했다. 그것은 훔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우연한 발견이었지만, 그는 곧바로 그것을 숨기기로 했다. 그러나 이 보석은 단순한 분실물이 아니라 도난 사건의 흔적이었고, 더 나아가 살인 사건과도 연결된 물건이었다. 이때부터 게레는 원치 않게도 범죄와 오해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게레가 사는 하숙집의 주인 마리아는 과거 범죄 조직, 마르세유의 갱단과 얽혀 있던 이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게레가 보석 가방을 손에 넣는 장면을 목격했고, 그 순간부터 게레를 보석 절도범 혹은 살인 사건의 연루자로 오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평범하면서도 내면의 어둠을 지닌 게레에게 이상한 매혹을 느끼게 되었다.


이 오해와 매혹은 두 사람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게레마리아는 단순한 하숙인과 주인의 관계를 넘어, 애인·동맹 같은 모호한 관계로 얽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언제나 불안정했다. 나이 차이, 사회적 시선, 그리고 마담 비롱의 어두운 과거는 두 사람 사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편, 게레는 젊은 연인 니콜과도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니콜은 활기차고 매혹적이었지만 가벼운 성격 때문에 게레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게레마리아니콜 사이에서 갈등하며, 애정과 욕망, 책임과 무력감 속에서 흔들렸다. 여기에 또 다른 남성 질베르가 개입했다. 질베르게레보다 사회적으로 자신감 있고 능숙한 인물이었으며, 니콜과도 관계를 맺고, 마리아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존재는 게레의 무력함과 소심함을 더욱 부각시켰다.

상황은 점차 악화되었다. 마리아의 과거와 연결된 인물들, 즉 갱단 중개인이나 보석 거래자들이 나타나면서, 보석을 둘러싼 긴장은 폭력으로 비화되었다. 게레는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결국 질베르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게 되었다.


소설의 말미에서, 게레는 피를 흘린 채 병원으로 이송된다. 그는 마리아에게 떠나지 말아 달라 애원했고, 그녀는 끝내 홀로 남겨졌다. 그리고 게레를 따라다니던 개는 무심히 주인을 쫓다가 다른 길로 가버린다.


소설의 말미

구급차가 쏜살같이 떠났다. 사이렌 소리가 의미 없이 울려퍼졌다. 차를 쫓아 달리던 개가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마 가지 않아 멈춰섰다. 길 한가운데에서, 시내 쪽을 바라보다 마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가만히 서 있었다.···개는 망설였다. 다시 길과 마리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일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볍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p.2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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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해독일기

해독일기는 사강 자신의 삶과 병상 체험을 담은 자전적 일기이다. 그녀는 알코올과 진통제, 마약성 약물에 오래 의존해 왔고, 결국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원·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이 책은 그 시기에 쓴 기록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사강은 병상에서 매일 자신이 겪는 신체적 고통, 약물의 금단 증세, 심리적 불안을 적어 내려갔다. 그녀는 자신을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들, 요양원에 함께 머무는 다른 환자들, 그리고 병실의 지루하고 반복적인 하루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자조적으로 기록했다.


이 책은 사강의 책들에서 빼려고 했으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있어서 넣게 되었다.


내 전문 분야는 '그는 잔에 커피를 부었다. 커피에 우유를 넣고 설탕을 넣고, 어쩌고저쩌고'인 것 같다. 서글픈 일상, 프레베르, 뷔페, 소중하디 소중한 이 시대? 사르트르, 아무도 착하거나 악하지 않다. 하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지루함, 날개 아래로 고개를 감춘 아름다운 사랑, 그것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나? 왜 알려고 하나 등등.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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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문장에서, 인간적인 사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천재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그녀가 가진 고민들이 자조적인 문장으로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에게 사랑은 언제나 눈부시게 다가왔다가, 곧 권태와 공허로 사라지는 덧없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완전할 수 없고, 인간은 그것을 완전하게 할 힘을 갖지 못한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그것을 알려고 할 때마다, 혹은 그것을 붙잡으려 할 때마다 인간은 오히려 실패한다. 사랑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사랑을 망가뜨린다. 사랑을 해석하려는 욕망은 결국 사랑의 본질을 파괴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구절, “아무도 착하거나 악하지 않다. 하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는 사르트르적 색채를 강하게 풍긴다. 인간은 선악으로 나눌 수 없는 모호한 존재이며, 그 모호함 속에서 사랑 역시 흔들리고 깨진다. 사랑이 실패하는 것은 누군가 악해서도, 누군가 선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랑은 늘 완전하지 못한 채 끝나버린다.


3. 불완전한 사랑과 권태의 문학

프랑수아즈 사강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에서 사랑과 권태라는 주제를 반복적으로 탐색한 작가로 기억된다. 그녀의 작품들은 언제나 열정과 무기력 사이의 줄다리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사랑이 기적적 구원이나 완전한 일치가 되지 못함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앞서 소개한 <슬픔이여 안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한 달 후 일 년 후>, <엎드리는 개>는 서로 다른 시기와 인물 설정 아래에서도 그 동일한 구조를 변주하고 있다.


슬픔이여 안녕에서

세실은 여름 별장에서 청년 시릴과의 연애를 경험하고, 아버지 레이몽은 안과 진지한 사랑을 시작한다. 그러나 세실은 자유롭고 방종한 삶을 잃을까 두려워, 아버지와 안의 사랑을 파괴하는 계략을 꾸민다. 사랑은 권태 앞에서 유지되지 못하고, 안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사강의 데뷔작은 이미 사랑과 권태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사랑은 개인을 구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권태와 불안의 위협 앞에서 취약하다. 특히 그들은 다시 또 다른 새로운 사랑으로 회귀하게 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폴은 오래된 연인 로제와 권태로운 관계에 있다. 그때 젊은 청년 시몽이 등장해, 그녀에게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시몽과의 사랑은 찬란하지만 지속되지 않는다. 폴은 결국 익숙하지만 지루한 로제에게 돌아간다. 사랑의 불꽃은 권태라는 벽 앞에서 꺼지고 만다. 이 작품은 사랑이 권태를 극복할 수 없다는 운명론적 시선을 보여준다. 폴은 열정과 안정 사이에서 방황하지만, 결국 선택은 다시 권태(익숙함) 속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한 달 후 일 년 후에서

베르나르–니콜–조제의 삼각관계, 알랭–파니–베아트리체–에두아르의 얽힘, 자크와 줄리오의 주변적 개입 등 다양한 사랑의 조합이 파리 예술가 공동체 속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모든 관계는 권태와 불안정에 빠진다. 니콜은 병으로 쇠약해지고, 조제는 베르나르를 완전히 얻지 못하며, 알랭과 베아트리체는 갈등만 반복한다. 한 달 후든 일 년 후든, 모든 것은 제자리다. 즉 사강은 개인의 사랑이 아니라 집단 전체의 초상을 통해, 사랑이 결국 불완전함의 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보편적 진실을 드러낸다.


엎드리는 개

게레는 하숙집 주인 마리아에게 끌리고, 젊은 니콜과의 관계도 이어가려 한다. 그러나 그는 소극적이고 무력하며, 질베르 같은 경쟁자와 비교될 때 더욱 초라해진다. 보석 가방의 발견과 살인 사건은 삶을 바꾸는 계기처럼 보였지만, 결국 게레는 무력하게 상처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간다. 사랑과 관계는 모두 공허로 끝난다. 게레는 결국 어느 것 하나 해내지 못한 채 “엎드린 개”처럼 무력하게 남는다.


▶ 엎드리는 개에 조금 보태자면 나는 이 소설의 말미를 인상 깊게 읽었다. 게레를 따라다니던 개가 마지막에는 마리아와 게레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고 가볍게 자리를 뜬다는 것이다. 원문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Le chien hésita, regarda de nouveau la route, de nouveau vers elle, et tout à coup se mit à trotter dans une troisième direction. (개는 망설였다. 다시 길과 마리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일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볍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et tout à coup se mit à trotter라는 구절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가볍게 자리를 떠나는 장면을 뜻한다. 나는 이것을 게레와 마리아의 상황이 어느 순간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은 채 끝나 버렸음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개가 게레 자신을 은유해, 끝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흩어지는 그의 삶을 비추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을, 그저 모든 일이 허망하게 마무리되었음을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했다.


엎드리는 개에 대해서는 남기고 싶은 리뷰가 많아서 다음에 따로 다룰까 싶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특히 특히 소유와 독점의 욕망이 허기로 남고, 운명적 사랑 뒤 어설픈 현실이 강하게 드러난다. 인물들은 새로운 사랑을 통해 허기와 결핍을 채우려 하지만, 그 사랑은 종종 변주는 있겠지만 소유/독점 욕망으로 치닫고 다시 일상의 권태나 무력한 현실로 회귀한다. 즉 그녀의 작품에서 운명적 사랑이라는 낭만적 기대는 현실적 조건에 의해 금세 깨지게 된다. 하지만 해독일기에서 그녀가 밝혔 듯 그것이 사랑의 진정한 본질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강은 문학사적으로 낭만주의가 반복해 온 운명적 사랑의 모티프를 주로 인용하지 이 모티프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곧바로 현실의 무게로 무너뜨린다. 그 결과, 사강의 소설에서 ‘운명적 사랑’은 더 이상 숭고하거나 구원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어설프고 불완전하며, 곧 권태 앞에서 힘을 잃는 덧없는 환상이다.


사강 문학의 또 다른 특이점은 사건의 힘을 중화한다는 점이다. 보석의 발견, 새로운 사랑, 관계의 파탄 같은 사건들이 소설의 중심에 놓이지만, 그것들은 결코 서사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 이러한 구조는 독자에게 불안과 허무를 남긴다. 보통 소설에서 사건은 인물의 성장을 이끌거나, 운명을 바꾸는 전환점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사강에게 사건은 권태의 반복을 재확인하는 장치일 뿐이다. 사건은 아무 일도 바꾸지 못한다.


사강의 문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린 권태와 사랑의 구조는 단지 특정 시대의 부르주아 청춘들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욕망과 결핍을 어떻게 반복하는가라는 보편적 문제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관계,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사건이 우리 삶을 바꿔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종종 그 모든 것은 공허로 되돌아간다. 사강은 이미 반세기 전에 이 순환을 문학적으로 증언한 셈이다.



사강은 우리나라에서도 의미하는 바가 깊다. 한국의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은 전혜린 작가가 1956년 번역한《어떤 미소》에서 시작한다. 그녀의 번역은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강을 처음으로 접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전혜린의 명성과 맞물려 '사강의 애독자층'이 생겨났다. 그 이후 사강은 '문학소녀' 정서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으며, 젊은 세대들은 그 감수성을 공유하면서 사강의 문장을 베껴 쓰거나, 친구에게 권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강의 작품들은 중고등학생, 대학생 독서 동아리 중심으로 퍼지면서, 문화 지형 속에서 ‘감성·사랑·도시적 세련됨’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최근 들어 사강의 유작이나 미출간 원고가 새로이 번역되어 출간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커지기 시작한 듯하다.


마지막으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마약 소지의 혐의로 법정에 들어섰던 사강이 남긴 말이다. 사강의 이 말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강하게 결부되는 말이기도 하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개인적인 소신으로, 내가 공동체에서, 혹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어떠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보충하기 위해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을 리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괜히 다시 펼쳤다가 내 무지함을 다시금 깨달을까 봐 그만두었다.


목차를 따라가 보자면 다음 리뷰할 책은 희정의 일할 자격이다. 거기에 더해 시간이 된다면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뒷자리도 함께 다루겠다.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지만 부디 다음 책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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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마무리하려던 글이 11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정말 마지막으로, 오늘 리뷰한 글들 중 추천 순은 다음과 같다.


엎드리는 개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마음의 심연 - 해독일기 - 슬픔이여 안녕 - 한 달 후 일 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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