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필요는 쓸모에서 오는가
10월 6일을 기점으로 포스팅을 못했습니다. 그저 제가 게을러서겠죠. 책은 꾸준히 읽었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라슬로의 사탄탱고부터 카프카의 변신, 구병모의 아가미와 파과, 최진영의 구의 증명, 장진영의 치치새가 사는 숲, 임기택의 현상학과 건축이론까지 포스팅이 없던 한 달 동안 7권 정도를 읽었네요. 오늘은 그중 카프카의 변신을 소개할까 합니다. 다음은 최진영의 구의 증명을 리뷰할까 생각합니다.
계기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실존주의 문학의 기원과 그 뿌리를 더듬어보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실존이라는 개념에 끌렸던 저는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의 저작에 많은 관심을 가졌답니다. 특히 프란츠 카프카가 남긴 변신은 흔히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적 작품으로 언급되며, 인간 존재의 불안, 소외, 그리고 부조리를 정교하게 형상화한 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지요.
마침 작년 즈음, 서울에서 열렸던 ‘프란츠 카프카 특별전’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은 기억도 다시 떠올랐습니다. 전시에서는 원고 사본, 일기장, 편지, 스케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 이전에, 시대의 불안을 문자로 꿰뚫은 철학자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글이 짧아서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그럼에도 남길 글들이 꽤 많을 것으로 보이네요.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문학가 중 한 명으로, 인간 존재의 불안, 소외, 권력과 제도에 대한 무력감을 깊이 있게 묘사한 작품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체코 프라하의 독일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카프카는 6남매 중 장남이었으며,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매우 권위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었고, 훗날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Brief an den Vater)라는 미발표 편지에 이 내면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카프카는 프라하 카를-페르디난트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면서도 틈틈이 문학 창작을 계속했는데, 철저한 직업인 정신과 작가로서의 갈등은 그를 더욱 고립되게 했습니다. 그는 평생 여러 여성과 약혼과 파혼을 반복했으며(대표적으로 펠리체 바우어와 두 차례 약혼), 정서적으로 깊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면모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병에 시달렸으며(특히 결핵), 자기혐오와 존재적 불안이 작품에 투영되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변신」, 「심판」, 「성」, 「단식 광대」 등이 있습니다. 생전에는 일부 작품이 문예지에 발표되었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죽기 직전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모든 원고의 파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브로트는 그 유언을 거부하고 작품을 정리해 출간하였고, 이후 카프카는 세계 문학사의 거장으로 재조명되었습니다.
1924년 6월 3일, 오스트리아 빈 근처의 요양원에서 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20세기 중반부터 실존주의 문학, 현대 문명 비판, 심리학적 해석을 통해 그의 작품은 전례 없는 평가를 받으며 “카프카적(Kafkaesque)”이라는 용어까지 탄생시켰습니다.
그의 생애와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는 닮은 점이 꽤 많습니다. 당연히 일생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겠지요. 이건 후반에 정리해 볼까 합니다.
변신의 줄거리는 총 3부로 나뉘며, 이후 칼 브란트가 추가한 그레고르 잠자의 재변신으로 마무리됩니다. 3부 각각의 소제목은 없고 1,2,3으로 진행되니 저도 그 진행을 따르겠습니다.
1.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는 잠자는 불길한 꿈에서 깨어난 뒤, 자신이 끔찍한 벌레 한 마리로 변해 있는 것을 침대 속에서 발견했다.
위의 글은 변신의 첫 문장입니다.
다짜고짜 아무 설명 없이,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가 된 채 침대에서 눈을 뜹니다. 외판원이었던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매일 아침 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삶을 살아왔으나, 이 날은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출근하지 못합니다. 회사에서 그의 결근을 확인하고 지배인이 집에 찾아오지만, 그레고르는 벌레의 몸을 제대로 제어하지도 못해 문을 여는 것조차 어려워합니다. 결국 가족의 도움으로 문이 열리고, 기어 나온 그의 끔찍한 외형을 본 지배인은 경악하여 도망칩니다. 가족들 역시 처음에는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이고, 특히 그의 아버지는 분노에 차서 그레고르를 다시 방 안으로 몰아넣고 문을 잠가버립니다. 그 순간부터 그레고르는 완전히 가족과 단절된 존재가 됩니다.
아버지는 지팡이로 문을 밀어 '쾅'하고 닫았다. 그러자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2.
그가 벌레가 된 이후 초기에는 그레테가 유일하게 그레고르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방을 청소해 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조차도 피로와 혐오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레고르가 머무는 방은 점점 창고처럼 방치되며, 그는 그 속에서 점점 쇠약해지고 존재감이 사라져 갑니다. 더불어 그레고르가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가족은 생계를 위해 각자 일자리를 구하고 살아갑니다. 그동안 일을 하지 않던 아버지는 다시 은행의 문지기로 일하게 되며, 그는 자신의 직무에 강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심지어 집에서도 근무복을 벗지 않고 고집스럽게 착용한 채 생활하며 가장의 역할을 다시금 되찾은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어머니 역시 레이스 제작 일을 하게 되고, 여동생 그레테도 점차 가정의 주도적인 인물로 성장해 갑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레고르의 방은 점점 지저분하고 창고처럼 방치된 공간으로 변해갑니다. 가족은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이후로 방의 상태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고, 그의 존재를 점차 인간이 아닌 짐짝처럼 취급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여동생 그레테는 방이 너무 더럽다며 가구 정리를 통해 공간을 넓혀주려는 명목으로 그레고르의 방에 들어와 청소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청소는 단순한 정리 수준을 넘어서, 그레고르가 익숙하고 애정 어린 공간들을 없애고 정체성을 지워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그레고르는 벽에 걸린 여자 액자 그림을 특히 아꼈습니다. 이 그림은 그가 인간이었을 때의 감정과 기억을 상징하는 마지막 남은 소중한 물건이었기에, 그는 액자가 치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어머니 앞에 벌레의 모습으로 기어나가 그것을 몸으로 덮으며 지키려 합니다. 인간이 아닌 흉측한 벌레로 변한 아들이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고 기절해 버립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분노에 휩싸여 집에 돌아온 후, 아무 말 없이 그레고르를 향해 사과를 던지기 시작합니다. 이 중 하나는 그레고르의 등에 깊숙이 박혀 심각한 부상을 입히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 그레고르는 더욱 위험하고 불결한 존재로 낙인찍히며, 방 안에 철저히 갇힌 채 가족의 일상에서 완전히 배제되기 시작합니다. 가족 간 유일한 연결고리였던 그레테마저 점점 그를 혐오하게 되며, 그레고르는 존재감 없이 점점 쇠약해져 가는 고립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레고르의 등에 박힌 사과는 그 자신도 꺼내지 못했고, 다른 누구도 꺼내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그는 한 달이 넘도록 고생했고, 그의 모습은 훨씬 더 비참하고 징그럽게 변해 버렸다.
이 사과는 그레고르의 죽음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3.
그레고르가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가족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은행의 문지기, 어머니는 레이스 제작, 여동생 그레테는 판매점 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더해 집의 일부 공간을 하숙인에게 임대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가족이 생존을 위해 집 안의 사적 공간마저 내어주는 상황에 몰렸음을 보여줍니다. 집으로 들어온 세 명의 하숙인은 중년의 신사들로, 매우 깐깐하고 예민하며 항상 청결과 예절을 중요시합니다. 가족은 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며, 그레고르가 있는 방은 철저히 격리되고 더 이상 가족 간에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레고르는 가족의 삶에서 완전히 투명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어느 날 저녁, 가족은 하숙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레테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는 그레테의 예술적 재능을 자랑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동시에 하숙인들의 기분을 맞추고 집의 품격을 보여주려는 경제적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하숙인 세 명은 시간이 지나며 연주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그레고르만은 다릅니다. 그는 방 안에서 그레테의 연주 소리를 듣고 감동을 받아, 바이올린 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듣고자 방을 몰래 빠져나옵니다. 바이올린을 켜는 그레테를 바라보다 그레고르는 하숙인들에게 그의 정체를 들키게 됩니다. 하숙인들은 충격을 받으며 격분하고, 곧 하숙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통보합니다. 가족에게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타격이 되는 순간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레테는 그레고르를 집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가족의 태도 역시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며칠 후 그레고르는 죽은 모습으로 할멈에게 발견되어 처분됩니다.
"저어, 옆방에 있는 그것을 치워 버릴 걱정은 조금도 안 하셔도 돼요. 벌써 제가 다 치워버렸으니까요."
그레고르 잠자의 재변신
변신에서 그레고르는 가족에게 철저히 버림받고, 마침내 방 안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가족은 그의 죽음에 안도하며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 소설은 그레고르의 소멸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칼 브란트의 그레고르 잠자의 재변신에서는 이 비극의 끝에 새로운 서사가 덧붙여집니다.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의 외면 속에 방에서 죽은 뒤, 쓰레기와 함께 밖으로 버려진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는 쓰레기장에서 다시 깨어납니다. 이번에는 벌레가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깨어나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자각한다. 기력이 없고 몸은 쇠약하지만, 그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두 발로 일어서고, 쓰레기 더미를 빠져나온다. 이후 그레고르는 조용히 그곳을 떠나며 새로운 삶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레고르는 결국 자기 안에 잠재된 모든 에너지를 끄집어내어, 두 발로 벌떡 일어섰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비현실적인 설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속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숨어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두 가지 핵심 축을 따라 읽을 때 더욱 명료하게 다가온다. 하나는 가치가 사라진 인간이 사회와 가족에게 어떻게 소외되는가에 대한 탐구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라는 체계 안에서 개인은 어떻게 이기적이고 잔인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다.
1. 쓸모가 없어진 그레고르
소설 초반,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는 인물입니다. 그는 외판원으로서 고된 노동을 감내하며 가족을 부양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기차를 타야 하는 현실에 대해 불만을 품으면서도, 정작 벌레로 변한 아침에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회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었습니다. 이는 노동에 내몰린 인간이 자신을 도구로 인식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려냅니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하고,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가족의 태도는 급격히 변하게 됩니다. 처음엔 충격과 연민이 섞여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방에 가둬지고, 말도 통하지 않는 존재로 철저히 분리됩니다. 가족들은 새로운 생계를 위해 각각 직장을 구하고, 그레고르는 점점 더 존재감 없이 쇠약해져 갑니다.
그레고르의 신체적 변신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쉽게 붕괴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인간이 쓸모가 없는 도구로 전락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공동체에서 제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그 공동체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2. 가족이라는 이름의 이기심
변신에서 그레고르의 주변 인물인 가족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의 가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하는 거울 같은 존재들입니다.
아버지는 한때 무력한 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벌레가 된 이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며 자신의 권위를 되찾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들에 대한 연민보다는 불편함과 분노를 우선시하며 지팡이로 그레고르를 몰아내는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아버지의 이러한 태도는 기능을 잃은 존재는 더 이상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냉혹한 판단을 드러냅니다.
어머니는 그레고르에 대한 감정을 끝내 부정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아들을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벌레 같은 모습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로 인식합니다. 방에 들어갔다가 기절하고, 그의 존재에 대해 걱정하고 보고 싶어 하더라도 막상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여동생 그레테에게서 나타납니다. 초반 그녀는 유일하게 그레고르를 챙기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존재였으며, 자신의 돌봄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열의를 보입니다. 이는 자신의 돌봄을 실현한 기회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자기중심적 태도로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태도는 점차 피로로 바뀌고, 결국 노골적인 혐오와 적개심으로 전환됩니다. 소설의 후반부에 그녀는 적극적으로 그를 가족의 구성원에서 공식적으로 배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카프카는 본 작품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1912년 무렵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구 사회는 산업혁명 이후 과학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인간 이성의 힘에 대한 신뢰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물질만능주의의 팽배, 인간 존엄성의 실종, 그리고 정신적 가치의 몰락이라는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던 합리적 이성은 이미 자기 파괴적인 기술문명 속에서 방향을 잃어가고 있었던 시대였죠.
이러한 시대적 불안과 인간 소외의 분위기는 변신의 전반적인 정서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하는 사건은 단순한 비현실적 상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갑작스레 기능을 상실한 존재, 즉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순간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철저히 격리됩니다. 이는 인간을 효율성과 생산성으로만 평가하는 근대 산업사회의 비인간성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존재는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하며,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거추장스러운 짐으로 취급받게 되는 현실. 이 모든 것이 카프카의 시대를 지배하던 실존적 불안과 인간 소외의 핵심을 드러냅니다.
변신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기술과 생산성이 인간의 가치를 정의하려 드는 시대, 그레고르 잠자는 여전히 우리 곁 어딘가에서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의 목소리를 끝내 듣지 못한 가족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변신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아닌 어여쁜 카나리아로 변했다면 가족들은 그를 추방시켰을까, 논외지만 그것도 조금 궁금해졌다.
ps. 최근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주 편하더군요. 그리고 며칠 전에 독서모임을 2번 다녀왔답니다. 다음 책리뷰는 최진영의 구의 증명입니다. 2번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와 느낌이 많이 달라서 작성해볼까 했답니다. 좋은 책이 있거나, 혹은 읽어주길 바라는 책이 있으면 댓글로 추천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