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의 구의증명

불편함 혹은 숭고함

by Peeping

구의 증명 감상글을 적기에 앞서 이동진 평론가의 그래비티 한줄평이 문득 떠오른다.

어떤 영화는 관람이 아니라 체험된다. 경이롭다.

나에게 구의 증명은 바로 그런 종류의 문학이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나는 구와 담의 내밀한 관찰자가 된다.


나는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작년에 한 번, 올해 한 번.
첫 번째 읽기에서 나는 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을 견디지 못해 억지로, 그리고 빨리 책을 읽어나갔다. 두 번째 읽은 계기는 그 이물감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편함과 불완전함을 다시 체험하고 싶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에는 금기를 깨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숭고함이 있다. 되려 처절함은 아니다. 이 숭고함에 대해서는 후에 기술하겠다. 어떤 문학은 우리 몸을 흔들어놓는다. 머리에서의 이성적 논리가 아니라 생리적인 몸의 감각이 먼저 반응한다. 내게 비로소 구의 증명은 그런 소설이 되었다.


이 작품의 문장들은 담담하다. 형용사와 부사가 거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건조함 덕분에, 나는 책 속에서 전능한 관찰자로 머물지 못한다. 이상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구와 담이라는 두 인물의 가까이에서 숨소리를 지켜보고, 그들의 미세한 떨림을 함께하는 기묘한 밀착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제삼자의 거리를 잃는다. 담이 구를 먹는 장면에서 이성은 멀어지고, 감정만이 남게 되었다.



그 감정은 곧 불쾌함이며 혐오이자 나아가 경외이며 공포이자 숭고함이다. 구가 담의 몸을 먹는 장면을 지나갈 때, 나는 독자가 아니라 목격자가 되어버린 심정이다. 금기가 부서지는 순간, 오히려 순수한 어떤 사랑의 기원 같은 것이 느껴진다.


담과 구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의 세계를 공유해 온 관계이고, 그 고립된 세계는 자라면서 점점 더 완고해져 결국 세상 전체를 밀어내고 두 사람만으로 세계를 구성한다. 문제는 그들이 만들어낸 작은 세계가 너무 좁다는 데 있다. 숨 쉴 틈이 없을 만큼. 외부의 손길을 단호하게 닫아버린 채로, 서로만을 바라보는 일종의 폐쇄된 우주가 만들어진다. 이 관계를 병적이라 말하고, 비윤리적이며 위험한 사랑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실제로 이들의 선택은 ‘사랑’이라는 단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고립과 공포, 저항과 체념, 무력함과 폭주가 뒤섞여 있는 듯 보인다.


숭고함이라 표현했지만 그 숭고함은 행위 자체의 미학이라기보다는, 미적인 충격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담담한 문체 자체도 사건의 윤리적인 충격을 완화한다고도 느껴진다. 다른 리뷰를 보니 식인에 대해서만 이 책을 논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식인 장면은 애도의 구조 안에서 하나의 비극적 상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본 내용의 핵심은 사랑을 잃은 사람이 증명을 어떻게 수행하는가에 있다.


2시간 내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책은 짧고 문체도 간결하다. 글을 통해 새로운 체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여담으로 사랑의 증명의 차원에서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책이 있다. 그것은 알퐁스 도데의 이다. 당연하게도 사랑을 증명하는 방식은 구의증명에서 나타나는 영원함의 열망만이 있지 않다. 별에 나오는 목동은 어깨에 기대어 앉은 아가씨를 통해 찬란한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가.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몇 번이고 나는
이 별 가운데 가장 예쁘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나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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